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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갈수록 메말라 가는 지구, 인공비가 적셔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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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미세먼지, 대형 산불로 인공비 존재감 커져

47년 전 국내에서 첫 실험, 하지만 아직도 ‘초기 연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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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레인 메이커(rain maker)’는 행운을 가져다 줬지만, 현대의 레인 메이커는 비를 내리게 한다”

‘레인 메이커’는 조직이나 무리에 이익, 행운을 가져다 주는 사람을 뜻한다. 과거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내던 미국 인디언 주술사를 가리키는 말에서 비롯했는데 오늘날은 ‘행운을 가져다 주는 사람’이라는 비유적 의미 대신 ‘비를 만드는 자’ 라는 글자 그대로의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바로 인공비 때문이다.

오늘날 인공비 연구가 새삼 부각되는 데는 지구 온난화 등 기후 변화가 재해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도 연관된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9월 시작된 호주 산불이 5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이유도 지구 온난화 등 기후변화 영향을 받아 기온 상승과 강우량 감소로 건조한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22일 발간한 ‘호주 산불 피해의 경제적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호주의 연평균 기온은 1.52도로 1910년 연평균 기온 0.51도에 비해 약 2도 상승했고, 연평균 강우량은 1902년 호주 기상청 관측 이래 가장 적은 277.63㎜를 기록했다.

미세 먼지, 대형 산불 등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기후 위기’ 상황에서 무작정 하늘의 신만 쳐다 보며 비를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느냐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인공비의 존재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공비는 마른 하늘에서 비 내리게 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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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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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비는 구름이 비를 쉽게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비가 내리기 위해서는 구름이 필요한데 아주 작은 물방울로 이루어진 구름에 요오드화은을 뿌려서 구름 속 물방울 크기를 키우는 것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구름이 인위적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지 마른 하늘에서 비를 만들어 내는 건 아니다. 인공 비를 정확한 기상표현으로는 ‘인공 증우’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오드화은을 이용하면 비나 눈의 양을 늘릴 수 있다. 구름의 강수입자를 ‘빙정핵’이라고 하는데 구름에 요오드화은을 집어 넣으면 구름 내 수증기나 물방울이 이 요오드화은을 빙정핵으로 착각하고 달라붙게 된다. 빙정핵이 커지고 무거워지면 눈 입자가 돼 지상으로 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입자가 녹으면 비가 되고, 녹지 않으면 눈의 형태로 내리게 된다.

국내에서 인공비 실험을 처음 실시한 건 당시 동국대 교수였던 양인기 박사로 알려져 있다. 양 박사는 1963년 11월 북한산성에서 요오드화은을 태워 연기를 올리는 방법으로 실험을 실시했다. 해당 실험이 눈이나 비를 내리게 했다는 결과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학계는 실험 자체에 의미를 뒀다.

◇인공비가 미세먼지 해결책 될 수 있을까

인공비에 관심이 높은 나라는 뭐니뭐니해도 중국이 꼽힌다. 1970년대부터 인공강우를 연구한 중국은 2007년 랴오닝 성 대가뭄 때 두 차례에 걸쳐 인공강우용 로켓 2,100여발을 발사해 8억톤 이상 비를 내리게 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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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에 덮힌 중국 베이징 자금성.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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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가뭄 해결을 위해 고안된 인공비는 오늘날 미세먼지 저감 조치를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대표 사례가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 당시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당시 인공비를 동원해 미세먼지를 걷어 내는 실험을 했다. 하지만 미세먼지가 얼마나 제거됐는지에 대한 분석은 명확하지 않다. 인공비가 미세먼지를 없애는 대책이 될 수 있다는데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지난해 1월 서해상 인공비 실험 계획을 발표한 주상원 국립기상과학원장은 “국내에서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할 때는 주로 고기압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인공비에 적합한 기상조건이 아니다”라며 “인공비는 고농도 미세먼지 저감의 주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인공비 연구는 아직도 초기 단계

지난해 우리나라는 중국 정부와 공동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기 위한 인공비 실험을 추진했지만 중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당시 중국 기상청은 해상 실험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효과 검증에도 한계가 있다는 이유를 들며 실험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정부는 자체적으로 지난해 1월 25일 서해상에서 인공비 실험을 실시했지만, 그 해 다음달 실패한 것으로 최종 결론 내렸다.

기상청은 현재 국내 인공비 연구 수준에 대해 ‘기초연구단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뭄 해소나 수자원 확보 등 실용화를 위한 인공비 연구는 계속 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2020년 현재도 인공비 연구는 진행 중이다.

박민정 기자 mjm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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