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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우리의 만남은 이토록 어려웠던가…1만㎞ 이은 ‘장기기증’의 인연 [김기자와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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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유나양 신장기증으로 새 삶 찾은 킴벌리씨 / 수술 4년 만에 한국행 / 기증자 가족과의 소중했던 동행 / 기증자·수혜자 가족 만남 활성화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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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벌리씨(사진 가운데)와 故 김유나양 부모의 제주도 해변에서의 즐거웠던 한 때. 킴벌리의 어머니 로레나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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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 to meet you(만나서 반갑습니다).”

지난 24일 오전 11시30분쯤,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한 킴벌리(24)씨와 그의 어머니 로레나씨는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기자의 인사에 밝게 미소지으며 이같이 답했다. 이날 오전 제주국제공항을 떠나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김대호 로스앤젤레스지부 본부장과 함께 김포에 도착한 두 사람은 오후 2시30분으로 예정된 LA행 비행기 탑승을 위해 곧바로 인천공항으로 떠나는 인솔차량에 올랐다. 앞서 킴벌리씨 모녀는 장기기증운동본부 초청으로 18일 미국 텍사스를 떠나 1만㎞ 하늘길을 통해 우리나라에 왔으며, 신장 기증자 故 김유나양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에 머물렀다.

2세 때부터 소아 당뇨로 투병해왔던 킴벌리씨는 18세 무렵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이 모두 망가져 혈액 투석기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연명해 오다, 2016년 유나양의 장기를 이식받아 새 삶을 찾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결혼해 가정도 꾸렸다. 당시 미국 유학 중이던 유나양은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뒤, 킴벌리씨를 포함한 여섯 환자에게 신장과 각막 등을 기증하고 세상과 작별했다.

킴벌리씨 모녀의 한국행은 장기 기증자 가족과 수혜자 가족의 사상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이 쏠렸다. 현재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은 금전 등이 오갈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인해 기증자와 수혜자가 서로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양측이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을 수도 없다. 하지만 이번 만남은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이뤄진 장기기증이라 성사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관련 기관 도움으로 기증인 가족과 수혜자 가족이 연락할 수 있으며, 양 측이 동의하면 직접 만날 수도 있다. 이는 미국 CNN 등 외신들이 과거 수차례 조명해온 사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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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라파의 집’ 정원에서 故 김유나양을 기리며 열린 동백나무 식수행사에서 유나양의 부모와 킴벌리씨 등이 표지석에 묶인 리본을 함께 풀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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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양 가족 만난 뒤 터진 울음…‘기증자·수혜자 가족’ 만남 금지에 안타까움만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는 40여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킴벌리씨는 “처음에는 (여러모로) 긴장되고 걱정스러웠지만, 유나양의 가족을 만나 정말 감사했다”며 “(짧은 일정이지만)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고마워했다. 그는 “유나양의 가족을 만났을 때 울었다”며 “(유나양의) 어머니께서 딸의 신장을 잘 간직하며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달라고 말씀하셔서 감격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과 다르게 이제는 (유나양의 부모와) 가족이 된 것 같다”고 이번 만남의 의미를 강조했다.

킴벌리씨는 “미국에서는 장기이식 관련 기관을 통하면 양쪽이 서로 연락할 수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 기증자 가족과 수혜자 가족의 만남이 여러 이유에서 법으로 금지된 점을 안타까워했다. 이와 관련해 김 본부장은 “미국은 단체 차원에서 기증자 가족과 수혜자의 모임을 개최한다”며 “기증자 가족이 수혜자를 보면 가족의 소중한 장기로 누군가 살아간다는 것을 계속 기억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로레나씨는 같은 ‘엄마’로서 유나양의 어머니를 봤을 때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지도 않고 직접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유나양 어머니의) 눈만 보고서도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서로가 서로에게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첫 만남의 감정을 되새겼다.

킴벌리씨는 “신장이식 덕분에 당뇨도 없어지고, 정상적으로 내 몸도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며 “아주 건강하게 지낸다”고 기뻐했다. 그는 “장기기증 운동이 더욱 활발해져서 (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새 삶을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특히 장기기증운동본부가 2007년 8월 제주도에 문을 연 만성신부전증 환자를 위한 ‘라파의 집’은 그에게 큰 감동을 줬다고 한다. 킴벌리씨는 “환자들이 (제주도에 와서) 투석도 하고 관광도 할 수 있는 걸 보고, 미국에는 그런 시설이 없어서 신기하고 놀라웠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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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벌리(24·사진 오른쪽)씨와 그의 어머니 로레나씨가 24일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기 전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킴벌리씨는 당뇨 등을 앓던 2016년 故 김유나양의 신장기증으로 새 삶을 찾았다. 인천공항=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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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그립고 또 대견했던 순간…‘수혜자’ 못 만난 답답함 사라져

이날 통화한 유나양 어머니의 목소리에서는 딸을 향한 그리움과 킴벌리씨 모녀에 대한 고마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유나양의 어머니는 “처음 킴벌리씨를 봤을 때 딸이 그리우면서도 우리 딸이 좋은 일 했구나 생각했다”며 “킴벌리씨를 보고 울지 말아야 한다며 참다 보니 속으로 더 울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의 제주도 동행은 ‘라파의 집’ 동백나무 식수 행사와 유나양이 생전에 좋아하던 곳을 다녀오는 일정 등으로 이뤄졌다. 유나양 어머니는 “딸이 자주 갔던 실내 박물관에도 다녀오고, 단골로 종종 가던 음식점에서 같이 밥도 먹었다”며 “원래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지만, 딸이 사진 찍는 것도 좋아했고 킴벌리씨도 (딸과) 또래다 보니 같이 이곳저곳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고 그동안의 일들을 떠올렸다.

유나양의 어머니는 내심 마음 한 구석이 답답했다고 한다. 누군가 이식수술로 딸의 장기를 받았지만, 실제로 수혜자가 어떻게 사는지 알 방법이 없어서다. 눈으로 볼 수 없어 쌓여가던 그리움과 답답함은 다행히 이번 만남을 계기로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그는 “(킴벌리씨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장기기증이) 참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직접 (수혜자를) 보니 안심도 되고 우리 가족에게 많은 위로도 됐다”고 고마워했다. 아울러 “(기증자와 수혜자 가족 만남을) 긍정적으로 보고 관련 기관을 통한다면, 앞으로도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향후 다른 기증자 가족들의 그리움 해소책이 마련되기를 바랐다.

한편, 킴벌리씨 모녀는 기증자와 수혜자 가족 만남 관련 제도가 바뀌도록 힘을 보태겠다며 유나양 부모에게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앞으로 페이스북에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큰 힘이 될 예정이다.

인천공항=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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