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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마트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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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차일드 인 타임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한겨레출판·1만4800원

이언 매큐언의 소설 <차일드 인 타임>은 주인공 스티븐이 마트에서 세 살짜리 외동딸 케이트를 잃어버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동문학 작가인 스티븐과 그의 아내인 바이올린 연주자 줄리의 삶은 딸의 실종 이후 바닥에서부터 흔들린다. 부부는 하나뿐인 자식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 때문에 서로를 잃을 위기에 놓인다. 상실의 슬픔은 그들을 결속시키는 대신 고립시키고 분열시킨다. “그들의 슬픔은 개별적이고 배타적이고 소통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부부는 결국 별거를 택한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은 스티븐의 첫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 흥행에 성공시킨 출판업자 찰스 다크와 부인인 물리학자 셀마의 이야기다. 출판업자로 승승장구하던 찰스는 정치에 입문해 여당인 보수당의 차세대 지도자로 기대를 모으다가 돌연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열두 살 연상인 부인과 함께 시골에 칩거한다. 부부가 지내는 시골 집으로 찾아간 스티븐이 확인한 것은 “사업가이고 정치인이었던 한 남자가 이제 사춘기 전 아동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모습이었다. 찰스의 이런 퇴행은 ‘시간 속의 아이’라는 뜻을 지닌 이 소설 제목과도 연결되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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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목 및 주제와 관련해 이 소설에서 가장 놀랍고 신비로운 장면은 따로 있다. 별거 중인 줄리가 지내는 집을 찾아가던 길에 스티븐은 어느 주점의 창을 통해 실내의 젊은 남녀를 엿보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라고 확신하는 젊은 여자”와 역시 젊은 아버지임에 틀림이 없을 남자였다. 소설 전반부에 등장한 이 이야기와 관련해 소설 뒷부분에서 스티븐의 늙은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창문에 웬 얼굴이 보였어. 어떤 아이의 얼굴이 둥실 떠 있는 것처럼. 주점 안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더라. 어쩐지 애원하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얼굴이 어찌나 하얗던지 백지장 같더구나. (…) 그냥 알았어, 내가 보고 있는 게 내 아이라는 걸. 이렇게 말해도 될까 모르겠다만, 난 널 보고 있었던 거야.”

아직 결혼 전인데다 남자는 전쟁통에 군 복무 중이었기에 두 사람은 뱃속 아이를 낳을지 말지를 고민 중이었고 그 뱃속 아이가 바로 스티븐이었다는 것. 이 장면은 소설 말미에서 스티븐과 줄리에게 찾아온 “새로운 아이”의 출현과 포개지면서 감동과 전율을 선사한다. 매큐언의 1987년작으로 휫브레드상을 받은 이 소설은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 영화 <차일드 인 타임>의 원작이기도 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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