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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ESC] 씨름 팬티 하얀 옆선의 비밀을 아시나요? ‘씨름 기술’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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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씨름협회 사무처장 ‘털보 장사’ 이승삼

그가 알려주는 기술 씨름의 각가지 묘미

과거 체급별 상금 7천만원 차이 나기도

<씨름의 희열>은 2022년까지 방송 예정


‘얼굴도 얼굴인데 몸이 진짜 힘 잘 쓰는 몸이라 멋있네.’ 90㎏ 이하 경량급 씨름의 최강자를 가리는 <한국방송>(K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씨름의 희열>에 시청자가 남긴 댓글이다. 뒷덜미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승모근의 가파른 각도에 시선을 빼앗긴다. 기술을 건 다리의 근육이 팽팽하게 솟을 때마다 탄성이 터진다. 이제 씨름의 매력을 알았으니, 좀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108가지 씨름 기술을 55수로 정리한 씨름기술용어집을 펼쳤다. ‘왼 다리를 상대의 오른 다리에 어쩌고 오른 다리를 상대의 왼 다리에 어쩌고….’ 읽다가 조용히 책을 덮었다. 씨름을 글로 배우는 것은 무리다. 씨름 선수들이 펼치는 온갖 기술과 전략을 ‘씨름하는 몸’을 통해 이해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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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대한씨름협회를 방문했다. <씨름의 희열>에서 격돌하고 있는 태백급과 금강급 최강자 16명의 전신사진을 인쇄해서 말이다. 그곳에서 현역시절 씨름 스타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등과 함께 80년대 씨름을 이끈 ‘털보 장사’ 이승삼 대한씨름협회 사무처장을 만났다. 자신보다 체격이 큰 선수를 360도로 호쾌하게 넘겨버린 그의 별명은 ‘뒤집기의 달인’. 경남대학교와 마산시체육회 씨름팀 감독을 맡았던 그는 요즘 <씨름의 희열> 심판위원장으로 비디오 판독 때마다 마이크를 잡는다.

―씨름은 선수의 힘이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라고 여겼는데, 경량급은 기술의 박진감이 대단하다.

“한때 몸무게 190㎏ 이상인 선수들의 힘 씨름이 판을 주도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기술 없는 씨름을 누가 보려고 하겠나. 재미가 없다. 그래서 기술 씨름으로 돌아가기 위한 체중 상한제를 2009년께 도입했다. 현재 백두급은 140㎏ 이하, 한라급은 105㎏ 이하, 금강급은 90㎏ 이하, 태백급은 80㎏ 이하로 정했다. 앞으로 5~10㎏ 더 줄일 계획이다. 관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프로스포츠다. 과거 미디어와 대중이 주목한 건 한라급이나 백두급이었다. 상금도 1억원 내외였고 중계방송도 했다. 하지만 이 체급 아래인 금강급, 태백급은 상금조차 3천만원 남짓이었다. 중계방송은 고사하고 대회 촬영 영상도 남아있는 게 없다. 하지만 이젠 달라지는 분위기다. 앞으로 이들이 스타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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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명의 전신사진을 보면 차이가 보인다. 태백급 손희찬 선수는 승모근이 돋보인다. 씨름 기술과 관련이 있나?

“손 선수는 키가 175㎝로 씨름 선수치곤 크지 않다. 그래서 주로 상대의 아래를 파고드는 밑씨름을 한다. 파고들려면 중심을 낮추고 상대를 당길 수 있는 운동을 해야 한다. 광배근, 삼각근, 이두박근, 대흉근이 발달하게 된다. 아무래도 상대를 들어 올리는 들씨름을 하는 선수보다 경기 시간이 길다. 이 때문에 씨름을 통해 강화되는 근육이 더 많다.”

―상체가 발달한 선수들 보면 ‘저 선수는 파고드는 씨름을 하겠다. 상대보다 낮은 위치에서 손이 좀 더 자유로울 테니 손기술을 잘 쓰겠다’라고 이해해도 되나?

“그렇다. 금강급 김기수 선수는 상체가 엄청나게 발달했다. 어깨가 넓고 상체가 긴 체형이다. 손희찬과 김기수가 잘 쓰는 손기술로 앞무릎치기가 있다. 키가 크지 않고 상체가 발달하면 보통 밑씨름을 하는데, 예외도 있다. 태백급 윤필재 선수다. 168㎝로 출전 선수 중 최단신인데, 들배지기를 잘 구사한다. 단신을 힘으로 커버한다. 금강급과 비교해도 힘이 밀리지 않는다.”

들배지기는 상대편의 샅바를 잡고 자신의 배 높이까지 들어 올린 뒤 몸을 살짝 돌리면서 상대편을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들씨름의 대표적인 기술이다.

―윤필재 선수는 운동선수로서 왼쪽 팔과 허벅지가 돋보이더라. 씨름 역사에 없던 스타일의 선수라는 평가던데.

“상대를 당길 수 있는 근육이 발달했다. 이두근이 훌륭하고 하체 힘도 좋다. 윤필재가 들배지기를 하면 상대는 안 들리려고 몸을 낮춘다. 그렇게 하면 중심이 지면 쪽으로 내려간다. 이때 윤 선수는 다리로 빗장걸이를 하면서 상대 중심을 무너뜨린다. 두 가지 공격이 다 가능하니까 상대방이 많이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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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배지기는 장신이 유리하지 않나?

“장신 선수는 들배지기, 덧걸이, 밀어치기를 주로 구사한다. 187㎝ 금강급 최장신 황재원 선수는 대표적인 힘 씨름 기술인 밀어치기를 잘한다. 상체가 길고 하체가 짧은 편이면 수비형 씨름을 하는데, 주로 파고들거나 장기전으로 간다. 반면 다리가 길고 키가 큰 선수들은 공격형 씨름을 하는 편이다. 체형에 따라 씨름 스타일이 달라진다.”

덧걸이는 상대방의 다리·허리 샅바를 당기면서 상대방의 왼쪽 다리의 무릎을 자기의 오른쪽 다리로 걸어 상대방의 상체를 젖혀 넘어뜨리는 기술이다. 밀어치기는 말 그대로 상대를 밀어서 모래판에 눕히는 기술을 말한다.

―금강급 최강자로 꼽히는 임태혁 선수가 장신이고 상체에 견줘 허벅지가 발달한 타입이다.

“엄청난 공격형 선수다. 순발력과 재치도 탁월하다. 몸을 기술에 활용하는 걸 보면 씨름 천재다.”

―상대 선수에게 밀려 거의 넘어갈 거 같은 선수가 땅에 엉덩이가 닿기 직전까지 버텼다가 뒤집는 경기는 흥미진진했다.

“그런 유연성이 있어야 대선수가 된다. 1회 천하장사 때 이만기 선수가 모래판에 닿기 바로 직전에 그런 식으로 몸을 틀어서 승패를 뒤집었다. 들배지기 할 때 태백급 황찬섭 선수의 허리가 휘어지는 모양새를 보면, 그의 유연성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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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씨름 팬의 눈에 기술은 그저 신비롭다. 금강급 최정만 선수의 잡채기는 ‘수면제 잡채기’라는 별칭이 있더라.

“축구의 드리블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페인트 모션’으로 내 진행을 막는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려서 따돌리는 거다. 잡채기도 상대방의 힘과 힘의 방향을 이용하는 기술이다. 상대를 밀면 상대는 밀리지 않으려고 버티는데 그때 상대의 상체를 제압하면서 넘기는 일종의 회전운동이다. 중심을 무너뜨릴 때는 어떤 식이든 회전운동이 필요하다. 씨름의 꽃으로 불리는 화려한 뒤집기 기술도 같은 원리다. 상대의 밑으로 파고들면 상대가 누르는 힘을 가하는데, 그때 빠지면서 한 바퀴를 돌려버리는 거다.”

―다른 신체 부위의 움직임에 견줘 발목이 날렵한 것 같다. 경기력과 관련 있나?

“준마는 발목이 가늘다는 말이 있다. 발목이 가늘면 순발력이 뛰어나다. 강호동 선수가 원래 태권도를 했다. 스카우트했는데 처음엔 발목이 두꺼워 안 되겠다고 말이 나왔다. 보니까 통뼈더라. 힘을 좀 쓰겠다 싶었고, 태권도를 해서 발놀림이 빠르고 유연성이 좋았다.”

―<씨름의 희열>은 씨름 기술을 배우는 데 좋은 교재더라. 한 시즌으로 끝나기엔 아쉽다.

“2022년 12월31일까지 대한씨름협회와 <한국방송>(KBS) 간에 방송 계약이 되어있다. 인기가 영 없으면 모를까, <씨름의 희열>은 계속 방송된다고 보면 된다. 다른 체급 선수들 경기나 여자 씨름 경기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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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 중 씨름 팬티가 궁금하다. 방송을 보니 선수 이름이 엉덩이 부분에 적혀있다. 민속씨름 경기에서는 하얀 옆선에 있더라. 규정이 따로 있나?

“씨름 팬티의 하얀 옆선은 멋으로 넣은 선이 아니다. 샅바를 잡는 기준선이다. 이전 10㎝에서 15㎝로 늘면서 선수들은 샅바를 넉넉하게 잡고 더 공격적인 기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 민속씨름에선 때로 엉덩이 부분은 지역 특산물 광고판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여쭙겠다. 현역시절에는 수염이 더 풍성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맨살을 맞대는 씨름에서 방해되지 않았나?

“오히려 바짝 깎아서 억센 수염이 올라오면 상대에게 상처가 생긴다. 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수염이나 손톱, 발톱을 안 자르는 편이다. 힘쓰는 종목은 보통 손톱을 바짝 자르지 않는다. 바닥에 있는 샅바를 건너가는 것도 꺼린다. 미역국이나 바나나를 먹지 않는다. 다 징크스다.”

―윤필재 선수가 경기 중에 바나나를 먹던데! 역시 씨름 역사에 없던 선수답다.

유선주 객원기자 oozwi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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