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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이슈 불붙는 OTT 시장

안방 1열 알고리즘…기자들의 OTT 몰아보기 추천 리스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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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OTT 서비스 알고리즘 추천에 도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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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니까 설레는 일을 떠올려본다. 세뱃돈, 떡국, 할머니 품… 많고 많은데 ‘설 특집 TV 편성표’를 빼놓을 수 없다. 신문에 실린 편성표 오리던 순간은, 2020년 설에 이르러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시리즈 목록을 훑는 것으로 바뀌어 있다. “그런데 OTT? 그걸 많이 봐?” <한겨레21> 뉴스룸 누군가 묻는다. TV 없이, OTT만으로 콘텐츠 욕구를 채우는 어느 기자는 당황하고 만다.

OTT. 유튜브 같은 광고 기반 무료 동영상 플랫폼부터 넷플릭스 같은 유료 구독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범주가 넓은데, 국민 42.7%가 이용한다(2018년 기준, 방송통신위원회). 물론 돈 내고 보는 구독 서비스만 한정하면 아직 이용률은 낮다. 다만 시장이 빨리 커간다. 2016년 나온 ‘왓챠플레이’와 ‘넷플릭스’에 이어, 지난해 ‘웨이브’가 출시됐고, 올해는 CJ E&M과 JTBC가 함께 구독 방식의 OTT를 내놓을 계획이다. TV와 연결해서, 혹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OTT 콘텐츠를 몰입해서, 몰아보는 이가 늘어간다. 세계 각지에서 돈 쏟아 만든, 과거와 현재 콘텐츠를, 다음날 출근 걱정만 없다면, 제한 없이 볼 수 있다는 건, 치명적이고 매력적이다.

자, 이제는 선택의 문제다. 무엇을 볼 것인가? 각 OTT는 알고리즘을 활용한 ‘최첨단 취향저격’을 자랑거리로 내세운다. <한겨레21> 기자들이 알고리즘 추천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주관적이고, 좀 엉성하지만 권하는 진정성만큼은 알고리즘에 비할 바 아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실리콘밸리> 왓챠플레이

혁신의 속살

2014년


정보기술(IT)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업계를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혁신’이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혁신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혁신기업이 시장을 혁신하고 혁신적인 사회를 만든다’와 같은 말이다. 스타트업들은 (이윤 추구를 위한) 자신의 기술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2014년부터 미국 케이블방송 에서 방영됐고, 한국에서는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는 <실리콘밸리>는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데이터 압축에 관한 ‘혁신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이 회사는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실패를 거듭한다. 실패의 대부분은 개발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회사 멤버들의 ‘기행’에서 기인하거나 그 회사(더 엄밀하게는 기술)를 이용해 대박을 치려는 대기업과 벤처캐피털(VC) 때문이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현실 세계의 구글쯤으로 묘사되는 ‘훌리’라는 회사다. 이 회사 창업자인 개빈 벨슨은 ‘혁신의 신’처럼 추앙받지만 스타트업의 기술을 빼앗기 위해 노골적으로 덤벼들고, 자신의 실패 책임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고, 주주들을 속인다.

이른바 ‘타다’ 논란을 통해 우리 사회에선 ‘무엇이 혁신이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스타트업을 육성해야 혁신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도 많다. ‘고증이 잘된’ 이 드라마를 보면 혁신을 말하는 이들의 속살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역시 “실리콘밸리를 이해하려면 이 드라마를 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미국에선 현재 시즌6이 방영 중이다. 왓챠플레이에는 시즌4까지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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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전력투구: 왕젠민 이야기> 넷플릭스

“다시 공을 던지고 싶어요”

2018년


<왕젠민 이야기>는 스포츠 속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찾다가 우연히 만났다. 대만 출신 메이저리거 왕젠민은 ‘한때’ 이름을 날린 선수였다. 명문 구단 뉴욕 양키스 선발투수로 2006년과 2007년 연이어 19승을 올렸다. 우리로 치면 ‘대만의 박찬호, 류현진’으로 대만에서 ‘국민 영웅’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다큐는 전성기의 왕젠민이 아니라 2008년 발바닥 부상 뒤 찾아온 슬럼프로 추락을 거듭하다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재기를 노리는 2015년의 왕젠민을 비춘다. 과거 타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싱커볼은 이제 치기 쉬운 ‘배팅볼’로 전락했다. 부상과 재활에 신음하며 일그러지는 표정이 화면에 종종 스쳐 간다. 아내와 동료들은 그에 대한 기대를 조심스레 접는다.

그럼에도 그는 “어느 팀이든 저를 부르면 경기에 바로 뛸 수 있게 준비한다”며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매일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노력에 대한 보상일까. 그는 2016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다시 올라 괜찮은 성적을 냈다(다큐는 여기서 끝난다). 그리고 다시 부상. 선수생활을 이어가려 했지만 결국 은퇴를 택했다. 담담한 시선으로 왕젠민을 비추다보니 1시간30여 분의 러닝타임은 사실 심심한 편이다. 그래도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마음이 먹먹했던 건, 최정상에서 추락했음에도 다시 공을 던지겠다며 준비에 나서는 왕젠민의 얼굴 표정 때문이었다. 도전이나 열정 같은 흔한 말로 포장할 수 없는 표정.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로 좌절할 때가 있다. 주변의 기대가 클수록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왜 이리 힘들지?’ 그럴 때마다 왕젠민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공을 던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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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넷플릭스

덧없음에서 시작된 열광

2018년


오쇼 바그완 라즈니시. 우리나라에는 류시화 시인의 번역으로 책이 여러 권이 소개됐으며 많은 이에게 읽혔다. 우리에게 ‘명상가’와 ‘에세이스트’쯤으로 비치는 오쇼 라즈니시에 대한 열광은 영미권에서는 좀더 ‘와일드’(격정적)했다. “당신은 제정신으로 살고 있는가”라고 현대인에게 묻고 자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지만 추종자들은 그를 컬트적으로 추앙했다. 이 ‘평등사회’를 지향한 공동체에는 지식인들이 주로 참여했다. 영향력이 커지자 이 종교단체를 경계하는 인도 당국을 피해 오쇼는 미국 오리건주 앤털로프에 ‘해방구’ 라즈니시 푸람을 연다. 공동체는 다시 한번 원주민들과 미국 언론의 경계 대상이 된다.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Wild Wild Country)는 이 공동체의 앤털로프에서의 흥망성쇠를 다룬다. 6부작 다큐멘터리는 주민이 40명밖에 안 되는 동네에 나타난 주황색 옷을 입은 추종자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인터뷰에서 시작한다. 내레이션(해설) 없이 자료 화면과 인터뷰만으로 다큐멘터리를 완성한다. 제작진의 관점이 투영된 것은 영상과 기막히게 조응하거나 아이러니를 이루는 음악이다. 공동체는 모순덩어리였다. 열광은 덧없음에서 시작됐다. 공동소유를 외쳤지만 원주민과의 사이에는 공고한 울타리를 쳤으며, 정신적 희열을 추구하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체제를 방패 삼았다. 다큐멘터리는 종교를 넘어서, 공동체와 우상 숭배, 인간의 탐욕에 생각거리를 던진다. 모든 꿈꾸는 자들이여, 이 허무를 볼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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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 정의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마인드 헌터> 시즌2 넷플릭스

2019년



한때, 프로파일러를 동경했다. 2016년 tvN 드라마 <시그널>을 보고 나서 장기 미제 전담팀 프로파일러 ‘박해영’(이제훈 역)에게 매료된 직후였다. 원래 프로파일러 표창원의 <한국의 연쇄살인>을 비롯한 범죄심리 분석 책을 좋아하고, 영화나 드라마도 범죄수사물을 챙겨보는 터라, 사건의 정황과 단서를 분석해 범죄의 윤곽을 그리고, 용의자 범위를 좁히는 범죄심리 분석관의 직업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더 겁도 많아졌지만.

범죄심리에 호기심 있는 이들에게 넷플릭스 드라마 <마인드 헌터> 시즌1과 시즌2는 교과서와도 같다.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 무차별 잔혹 범죄가 급증한 1970년대, 기존 수사 방식으로는 범인 검거에 한계를 느낀 FBI(연방수사국) 행동과학부 요원들이 완전히 새로운 수사 방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그렸다. 거대한 변화는 ‘사람들을 많이 죽인 사람들을 교도소에 가서 만나볼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됐다(우연히 시작되는 기자들의 취재 과정과도 비슷하다). 두 요원이 교도소에서 잔혹한 범죄자들을 인터뷰하며 ‘연쇄살인’이라는 정의를 만들어내고, 연쇄살인범의 성장 배경과 특징을 규정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왜 사이코패스 성향의 연쇄살인범은 하나같이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 동물을 학대한 경험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지 등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이 담겨 있다. 완벽주의자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원조 프로파일러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범죄 프로파일링 프로그램의 탄생 과정을 조율했으니, 당시 실존했던 연쇄살인범과 배우의 싱크로율마저 놀랍다. 미국 아카데미로 간 봉준호 감독이 ‘2019년 최고의 영화’ 중 유일한 드라마로 <마인드 헌터> 시즌2를 뽑았으니, 무슨 말을 더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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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나거나 반성하거나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넷플릭스

2019년


드라마를 보는 동안 당신은 ‘믿을 수 없는’ 전개에 화나거나, 아니면 스스로를 반성하게 될지 모른다. 사소한 모순에 집작해 피해자의 자작극을 의심했다면 후자일 테다.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Unbelievable)는 에피소드 8편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진술 번복으로 되레 허위 신고로 기소당했다가 다시 피해자로 인정받는 과정을 그렸다. 젠더 기사를 쓰면서 만난 이 드라마는 지난해 여름 휴가지에서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미국 워싱턴주 린우드에 사는 18살 여성 마리는 어느 날 새벽 복면을 쓴 괴한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범행을 입증할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마리는 진술하고, 진술하고, 또 진술한다. 마리의 사건을 맡은 두 남성 형사는 사건을 좇는 대신 마리의 과거를 추적하고, 진술에 모순이 있다며 마리를 추궁한다. 결국 마리는 피해는 없었다고 번복한다. 마리는 직장과 청소년센터 등에서 거짓말쟁이로 내몰림을 당한다.

사건은 몇 년 뒤 뜻밖의 장소에서 해결된다. 콜로라도주의 캐런 듀발 형사는 물증이 없는 성폭력 사건을 맡게 되고, 유사한 사건이 인근 웨스트민스터에서도 발생한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레이스 라스무센 형사와 함께 연쇄강간범을 추적한다. 이 두 여성 형사가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은 앞서 마리를 추궁하던 남성 형사들과 크게 달라 흥미롭다.

이 드라마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언론인 T. 크리스천 밀러와 켄 암스트롱이 해당 사건을 취재해 완성한 르포르타주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가 원작이다. 이 기사는 2016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국내에도 발간된 동명의 저서에서 저자들은 “강간 피해자가 자주 마주치는 의심의 역사를 따라가보고 싶었고 형사들을 잘못된 수사로 빠지게 하는 편견과 가정에 대해서도 탐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마리는 린우드시와 담당 수사관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15만달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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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 아파트의 우아한 일상> 왓챠플레이

도망쳐서 되겠니?

2017년


“사람은 역시 힘들어” 생각한 날, 집 현관 들어서는 일을 ‘숨는 거다’ 생각하면 마음 놓였다. 그런 날에는 이런 애니메이션이 제격이다. <나츠메 우인장> <3월의 라이온> <4월은 너의 거짓말> <바라카몬> 등등. 이야기야 제각각인데, 분위기나 구성이 대체로 비슷하다. 외톨이 소년이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또는 요괴)을 만난다. (의외로) 사연 있고 따뜻한 이들과 친구가 된다. 마음은 풀어지고, 일상에서도 조금씩 친구가 생긴다. 분위기는 끝내 잔잔하다. 이런 애니메이션을 ‘힐링물’ ‘치유계’라 부른다고 했다. 장르를 부르는 명칭까지 있다니! 이런 게 필요한 사람 참 많구나, 싶었다. 그렇게 지난해 마지막으로 본 힐링물이 <요괴 아파트의 우아한 일상>이다.

외톨이 소년이 우연히 요괴(귀신) 주민이 우글우글한 하숙집에 살게 된다. 무척 착한 요괴들과 정을 느끼며 스스로 고립시킨 자신의 지난 생활을 되짚는 것까지는 여느 힐링물과 다르지 않다. 눈에 짚이는 것은 주인공 주변 사람들이다. 홀로 이어폰을 낀 채 함께 있는 6개월 내내 말 한마디 섞지 않으려던 선배는, 용기 내서 큰 목소리로 다가가는 주인공에게 “내 세계에 끼어들지 마” 소리친다. 이후 극적인 화해가 있지도 않다. 그렇게 주인공 시야에서 선배는 사라진다. 계속 그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사람한테서 도망치고 싶어서 틀어놨는데 “그래서 되겠니?” 아프게 묻는 것 같다. ‘더는 숨지 말고 현실에서 사람이랑 부딪혀야겠다’고 혼자, 텔레비전 앞에서 다짐하는 스스로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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