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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시승기] 제네시스 GV80, 다시 사용설명서를 펼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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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강희수 기자] 난생 처음 자동차를 소유하게 된 때가 생각난다. 운전석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던 각종 버튼들, 자동차 특유의 냄새, 기계를 움직이는 실감이 진하게 전해졌던 수동 변속기…. 모든 것이 신비하기만 했다. 그리고 글러브박스 안에서 꺼내 들었던 사용설명서. ‘너’를 통해 내 차를 모두 알겠다는 심산으로 밤새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탔던 중고차 보다 훨씬 뛰어난 기능의 새 차를 사고 있지만 그 때의 설렘은 다시 찾기 어렵다. 첫 차 이후의 자동차는 굳이 사용설명서를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능은 지난 수십 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번째 SUV, ‘GV80’은 다시 사용설명서를 꺼내 들게 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상식의 범주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기술이 적용됐거나, 아니면 직관적이기 않기 때문이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혁신(innovation)’과 ‘직관적’이라는 단어를 경험했다. 전화 통화를 하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던 ‘휴대 전화기’가 무선 인터넷 접속으로 정보전달의 터미널이 되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지켜봤다. ‘혁신’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실감났다.

그런데 그렇게 엄청난 변혁이 일어났지만, 사용자들은 놀라기는 했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혁신’과 함께 따라온 ‘직관적 사용법’ 덕분이었다. ‘직관적이다’는 말은 나이 든 어른보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더 잘 사용한다는 말로 설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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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GV80’이 자랑한 혁신적인 기능이 두 가지 있다. 고속도로 주행 보조 II(HDA II)와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이다.

고속도로 주행 보조 II(HDA II)는 방향지시등 스위치 조작만으로 스티어링 휠을 제어해 차로 변경을 도와주는 기능이다. 반자율주행에 한 발 더 다가간 첨단 기술이다. 20km/h 이하의 정체 상황에서도 근거리로 끼어드는 차량에 대응한다고도 했다.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은 길 안내 시 실제 주행영상 위에 가상의 주행 안내선을 입혀 운전자의 도로 인지를 돕는 기술이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전방 300미터’가 어느 지점인 지 헷갈렸던 경험은 누구나 있다. 증강현실은 그 같은 혼란을 크게 줄여줄 수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두 혁신적인 기술은 GV80을 시승하는 과정에서 체험할 수 없었다. 수 차례 시도해 봤지만 혁신 기능이 어떻게 작동하는 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방향지시등 만으로 차선을 자동변경하는 기능은 수입 브랜드의 글로벌 시승행사에서 이미 경험한 바 있기 때문에 대단히 혁신적인 것은 아니다.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은 생소하기는 하지만 ‘증강현실’ 자체는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이미 상식에 가깝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사용법이 직관적이지 못하다는 얘기다. 아니면 기술이 아직 설익은 거다. 방향지시등으로 차선을 자동변경하는 기능은 작동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다. 고속도로 또는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차선 변경이 가능한 점선 구간이어야 하며, 진행방향의 차선에는 운행하는 차량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방향지시등도 일반적인 방향 전환 때와는 다르게 조작해야 한다.

증강현실 내비게이션은 굳이 실행 버튼을 따로 둘 필요도 없는 기능이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체험이 원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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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번째 SUV’이자 ‘플래그십 SUV’인 GV80은 이름 앞에 붙은 거창한 수식어들이 ‘손쉬운 칭찬’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기대감 없이 봤다면 칭찬받아 마땅한 요소들에 감탄사 보다는 의문부호가 자꾸 따라 붙는다.

직렬 6기통 3.0 디젤 엔진은 유연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다. 전장 4,945mm의 체구에도 날렵한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최고출력 278마력, 최대토크 60kg.m의 파워가 묵직함이 덜하다 느껴질 정도로 움직임이 가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원망도 나온다. ‘왜 또 디젤인가’라는 푸념이다. 디젤엔진을 전면에 내세워 한국 자동차 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던 독일 3사도 요즘은 가솔린 엔진을 먼저 들여온다. 디젤 엔진은 파생 모델로 한 템포 늦춰 들여온다.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여서다.

기본가 6,580만 원에 각종 옵션을 모두 선택하면 2,390만 원이 더 들어가 풀옵션 차값만 8,970만 원에 이르는 게 GV80이다. 이 만한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구매자라면 ‘대기 환경’이라는 사회적 책임도 생각하는 이들이다.

실내 정숙성은 고급스러웠다. 차음재 이상의 기술이 들어간 효과가 있었다.

제네시스는 GV80에는 주행 중 발생하는 노면소음을 인위적으로 느끼지 못하게 해 주는 ‘능동형 노면소음 저감기술(RANC: Road-noise Active Noise Control)’이 들어가 있다. 노면소음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0.002초만에 반대 위상의 음파를 발생시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불규칙한 노면 소음을 상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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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세계적인 음향기기 브랜드 하만의 기술력이 동원됐다. 현대자동차와 하만이 공동 개발한 세계 최초의 기술이다. 노면에 의해 발생된 타이어의 진동이 서스펜션과 바디를 통해 실내로 전달되면 4개의 가속도계와 실내에 장착된 8개의 마이크가 제어기로 이를 송신한다. 제어기에서는 곧바로 반대 위상의 제어음을 생성, 스피커로 출력해 상쇄시키는 방식이다.

차가 조용하면 사운드 시스템도 덩달이 신이 난다. 160만 원짜리 렉시콘 사운드 패키지를 선택사양으로 추가할 수 있다. 곳곳에 배치 된 18개의 스피커가 입체감 있는 음향을 만들어 낸다는 렉시콘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이다. 전방의 센터 어레이 스피커와 러기지 트림 상단부의 서라운드 스피커가 사운드 스테이지를 향상시키고 앞좌석 아래 바닥에 둥그렇게 자리잡은 서브 우퍼는 다이내믹하면서도 깨끗한 베이스를 선사한다. 렉시콘의 ‘퀀텀로직 서라운드(QuantumLogic Surround, QLS)’는 모든 음악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소리를 최소 단위로 분석하고 재해석한 후 입체음향으로 재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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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디자인은 잘 정돈돼 있다.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럽다. 백미는 2-포크 스티어링이다. 3-포크가 대부분이지만 GV80은 과감하게 기둥 하나를 없애버렸다. 외관에서 강조한 ‘두 줄(투 라인)’ 짜리 쿼드램프 디자인 시그널이 차량 내부까지 이어진 느낌이다. 스티어링을 돌릴 때 기능적으로 더 뛰어난 작용을 하지는 않는 듯하다. 다만 시각적으로는 다른 디자인 요소들과 빼어나게 조화를 이룬다.

GV80의 ‘혁신’ 요소는 차량 자체보다 ‘서비스’에서 찾을 수 있다. 차가 하나의 포털이 되고 이 포털을 중심으로 각종 파생 서비스가 이뤄지는 시도가 초보적이지만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용카드를 꺼내지 않고도 차 안에서 각종 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제네시스 카페이(Carpay, In-Car Payment)’가 있다. 아직은 서비스를 바로 이용할 곳이 많지 않겠지만 미래 자동차의 지향점인 ‘연결성’의 좋은 본보기가 될 듯하다. 주유소나 주차장 대금 결제 시 내비게이션 화면에서 바로 정산이 가능하게 된다.

차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스마트폰으로 차 주변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도 있다. 이는 ‘기능’이면서 ‘서비스’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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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고장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기사가 현장에 출동하지 않고 전문 상담사가 원격으로 진단해 주는 서비스도 있다. ‘원격진단 기반 상담 서비스’는 차량 데이터를 분석해 차량의 문제를 먼저 진단하고, 꼭 필요한 조치를 내려 준다.

발레 파킹이나 대리 운전 이용 시 인포테인먼트 화면에 사용자의 개인 정보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발레 모드’도 눈길을 끈다. 개인 정보가 중요시 되는 요즘 상황을 잘 반영한 기능이다.

자동차는 빠르게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제네시스’처럼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브랜드라면 한 발 더 미래에 가까이 가 있다. 우리는 이미 자동차 문화의 대 변혁기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지도 모른다. 시승기가 점점 차량 사용설명서에 가까워 지고 있음을 느낀다. 운전 경력 30년이 되는 사람도 사용설명서를 다시 펼치게 될 공산이 점점 커지고 있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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