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장혜수의 카운터어택] 아빠 찬스, 아빠 해저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장혜수 스포츠팀장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축구대회 당시 차범근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한 포털사이트에 칼럼을 연재했다. 한 번은 아들 차두리 얘기를 썼는데, 인상적이었다. 차 전 감독은 독일의 한 축구잡지가 차두리 몸에 센서를 부착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칼럼을 옮기면 이렇다.

“인터뷰를 마치고 심리학자가 결과를 분석했다. (…) 아주 부정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버지 얘기를 할 때였다고 했다. 모든 기능이 흥분되고 정상이 아니었다고. (…) 독일에서 두리를 상담하는 심리치료사는 두리에게 자주 조언한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라고. ‘아버지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모든 일의 가장 앞에 두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 본인에게는 짐이라고, 벗어나야 삶이 가벼워진다고.” 차 전 감독은 관련 에피소드도 하나 소개했다. “고등학교 시절, 합숙소 친구들이 팀을 이탈했는데 두리만 ‘나는 아빠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숙소에 남았던 기억이 난다. 두리에게 아빠는 자랑이기도 했지만, 자유롭게 훨훨 날지 못하게 하는 족쇄이기도 했다.”

차범근-두리 부자 말고도 부자 운동선수가 많다. 야구의 이종범-정후 부자, 농구의 허재-웅·훈 부자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프로야구 두산의 통합우승에 힘을 모은 박철우-세혁 부자도 있다. 아버지가 스타 선수는 아니었지만, 손웅정-흥민 부자도 있다. (여기에 거론하지 못한 부자 선수에게 미안하다. 전적으로 좁은 지면 탓이다.)

중앙일보

차두리가 지난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국가대표 은퇴식중 꽃다발을 전하는 아버지(차범근)와 포웅을 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상은 부자 운동선수 중 아들 얘기를 할 때 꼭 아버지를 거론한다. 아버지 때문에 스포트라이트가 좀 더 쏠리는 측면이 있다. 세상은 이들을 ‘아빠 찬스’의 수혜자로 본다. 그러나 아들은 그런 시선이 못마땅하다. 자신을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누군가의 아들로 보는 것, 더 나아가 아들이 현재의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게 아버지 후광이라고 하는 것 등등. 대놓고 불만을 토로하지도 못한다. 아버지가 이들에게는 ‘찬스’가 아닌 ‘해저드’ 같다. 어쩌면 그런 속앓이가 차두리의 신체 측정 때의 반응처럼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한다.

한 번 따져보자. 아들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어도, 체격이나 운동 능력에서 아버지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았어도, 시설·장비에 대한 접근성이 그만큼 좋지 않았어도,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서 받은 관심과 기회가 아니었어도, 지금 그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모든 아들이 아버지처럼 성공하는 건 아니어도, 성공한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흔적이 있다. 아버지를 ‘해저드’로 여겼던 아들 대부분이 나이가 들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때가 되면 아버지가 자신에게 ‘찬스’였음을 고백한다.

최근 세상이 ‘아빠 찬스’의 수혜자라고 생각하는 한 국회의원 예비후보가 이를 극구 부인한다. 스스로 지금 자리에 왔고, 앞으로 갈 길도 아버지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내심으로는 ‘아빠 해저드’에 빠진 피해자라고 여기는 것도 같다. 오늘부터 설 연휴다. 내일 아버지에게 세배를 드릴 텐데, 마주 앉거든 꼭 짚어보기 바란다. 인생에 단 한 번의 ‘아빠 찬스’도 없었는지 말이다. 딱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아빠 찬스 수혜자”라고 말하는 게 옳다.

장혜수 스포츠팀장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