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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검찰, ‘정운호 게이트 수사기밀 유출’ 혐의 판사들에 실형 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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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렬 부장판사에 징역 2년

성창호, 조의연 부장판사에 각 징역 1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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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 비리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정운호 게이트 수사 관련 정보를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성창호·조의연·신광렬 부장판사에 검찰이 실형을 구형했다.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 심리로 열린 성 부장판사 등의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신광렬 부장판사에 징역 2년, 성창호, 조의연 부장판사에 각 징역 1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영장재판을 수사기밀을 빼돌리는 루트로 전락시켰다. 국민의 중대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수사기밀로 취급하게 된 정보를 악용해 헌법이 부여한 중대하고 신성한 직무의 본질을 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20년 이상 법관으로 근무한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죄가 됨을 알고 있으면서도 책임 미루기에 급급하다. 수사기밀을 법원행정처에 송부한 신광렬 피고인은 말할 것도 없고, 성창호·조의연 피고인의 죄책도 결코 가볍지 않다”고 했다. 검찰은 “엄중한 사법적 단죄를 통해 더는 재판이 사법행정권자 마음대로 사용되는 도구가 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구형 의견을 마무리 지었다.

성 부장판사 등은 2016년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로 법관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이를 축소·은폐하기 위해 검찰 수사기록을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를 받는다. 검찰은 신광렬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가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검찰 수사 관련 대응책 마련’을 지시받았고, 성창호·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에 그 지시를 그대로 전달했다고 본다. 이에 따라 2016년 5~9월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확보한 검찰의 수사보고서 등이 10차례에 걸쳐 법원행정처로 전달됐다.

성 부장판사 등은 혐의 전부를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범죄 사실을 증명할 증거도 없고, 법리상으로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영장전담 부장판사나 형사수석부장판사 모두 범행을 공모한 사실 자체가 없고, 이를 뒷받침할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또한 법관의 비위 사항을 파악해 법원 내부에 공유한 것은 법리상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법원 내 정보 공유로 인해 검찰의 수사 기능이 저해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성창호 부장판사는 이날 최후진술을 통해 기소 1년여 만에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는 “20년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한 인간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당혹스럽고 참담한 순간”이었다고 지난 검찰 수사 과정을 회고했다. 그는 “검찰의 사법부 수사가 진행되던 중 제가 영장 판사로 근무한 것과 관련해 마치 부정한 업무처리가 있었던 것처럼 언론보도가 나오더니, 곧바로 검찰에서 참고인 조사를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5개월 이상 어떤 연락도 받지 못하고 있다가 지난해 2월 중순경 갑자기 피의자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검찰은 갑자기 저와 조의연 부장판사를 기소했고, 그때부터 검찰 발표 내용을 토대로 부정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언론보도가 쏟아졌다”고 말했다.

성 부장판사는 검찰의 공소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검사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저를 비롯한 영장 판사들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부여된 재판 업무를 수행한 게 아니라 재판을 빙자해 부정한 행위를 저지른 것이고, 이런 검찰의 논리는 저 개인으로서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나아가 법관과 재판을 이토록 왜곡해 공격할 수 있는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법관은 자신이 한 재판에 대해 혹시라도 나중에 범죄 행위로 추궁당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건 이후 저에 대한 근거 없는 추측성 보도가 나오고, 여러 언론사로부터 문의도 받았지만 형사사건은 법정의 충실한 심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는 게 법관으로서의 소신이었다. 이 사건의 실체가 무엇이고, 저에 대한 기소가 합당한지 재판부에 현명한 판단을 간청드린다”고 발언을 맺었다.

신광렬 부장판사는 법관 비위 사항을 파악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것은 정당한 사법행정권 행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가 법관 비위 사항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것은 사법부에 대한 신뢰 확보를 위한 것으로, 사법행정 담당자로서 직무상 마땅한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앞으로 수사기관이 정상적인 사법행정에 대해서 본건과 같이 수사하고 기소한다면 행정조직도 예기치 못한 형사처벌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의연 부장판사는 검찰의 수사 및 기소가 부당한 검찰권 행사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조 부장판사는 “성창호 부장판사와 함께 기소됐을 때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넘어 이게 과연 적정한 검찰권 행사인지 심히 의문이 들었다. 법관으로서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었고, 불과 이곳 502호 법정에서 형사재판을 진행하고 있던 탓인지 피고인석에 선 제가 지금도 낯설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진실은 길을 잃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 법정에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을 맺었다.

성 부장판사 등 1심 선고는 다음 달 13일 열린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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