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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입안에서 사르르… 황가오리 애간장 녹이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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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미식기행 - 고흥·목포·보성·순천 / 푸아그라 만큼 부드러운 황가오리 애 / 홍어 애 마니아라면 해볼만한 맛의 도전 / 황가오리와 함께 나오는 금풍선어 / 노릇노릇 바삭해 아이들에겐 최고 / 이 계절 또 하나의 별미는 삼치회 / 부드러운 식감에 고소한 풍미 최고 / 여기가 바로 맛의 본고장

목포 5味로 만족해불믄, 벌교 꼬막이 섭하제∼ / 민어·낙지·홍어·갈치·병어… 회·탕탕이·찜으로 조리법도 다양 / 겨울철 살이 통통하게 오른 꼬막정식… 최근 생산량 줄어 아쉬워

요즘 밥맛이 꿀맛이다. 목포 여행길에 들른 식당에서 맛을 보고 반해 사온 갈치창젓 덕분이다. 제주 갈치만큼 유명한 목포 갈치의 내장으로 만들었다. 한 숟가락 떠서 갓 지은 밥에 쓱쓱 비며 먹는데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짭조름한 남해 바다가 입속 가득히 밀려오기에 밥 한 공기를 단숨에 비운다. 진정한 밥도둑이다. 추운 겨울은 여행지를 찾기 쉽지 않다. 하지만 전라남도는 기온이 영하로 잘 떨어지지 않아 다닐 만하다. 더구나 우리나라 대표 미식들이 몰려 있어 생선이 맛있어지는 겨울이면 미식가들의 천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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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항구 도시 목포는 미식의 고장이기도 하다. 삼학도 공원을 마주보는 목포종합시장에 들어서면 말린 조기, 박대, 서대, 먹갈치, 옥돔과 제대로 삭힌 홍어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입에서 살살 녹는 고흥 삼치

삼치는 꽁치, 고등어와 함께 집에서 많이 구워 먹는 등 푸른 생선이다. DHA가 풍부해 태아의 두뇌 발달을 돕고 치매예방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식탁에 자주 오른다. 특히 삼치는 10월부터 살이 올라 요즘이 가장 맛있을 때다. 맛이 부드럽고 영양성분은 많은데 지방함량이 높지만 불포화지방산이라 동맥경화, 뇌졸중, 심장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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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황가오리회


삼치의 고장 전라남도 고흥의 나로도항으로 떠난다. 그런데 미식가들은 이곳에서 구이 대신 삼치회를 즐긴다고 한다. 삼치를 회로 먹다니!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미식의 세계다. 나로도에서 삼치회 좀 한다는 다도해회관을 찾았다. 한 접시 가득 담겨 나오는데 군데군데 도는 붉은빛이 대방어와 비슷하다. 맛은 완전히 다르다. 기름지고 찰진 대방어와는 달리 한 점 입에 넣자 씹을 것도 없이 눈 녹듯 사르르 사라진다. 아주 신기한 경험이다.

예로부터 나로도 삼치를 최고로 쳤다고 한다. 청정해역인 거문도와 나로도 근해가 어장인데 입안에서 부드럽게 살살 녹는 맛이 다른 삼치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옛날 방식인 채낚기어업으로 삼치를 잡으며 10월∼2월이 제철이라 요즘 나로도 수협 위판장은 갓 잡아 올린 삼치를 사려는 이들로 늘 붐빈다. 삼치회를 맛나게 먹는 방법이 있다. 김에 싸서 초고추장, 고추냉이, 무순을 곁들이면 담백한 삼치의 맛이 잘 살아난다.

고흥군은 2020년을 ‘고흥방문의 해’로 정하고 여행자 유치를 위해 나로도항 인근에 삼치로 만든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삼치요리거리를 조성했다. 다도해회관을 비롯해 서울식당, 대동식당, 남도맛집, 순천식당, 진미회관, 진보횟집 등에서 삼치고추장조림, 삼치찜, 고흥유자삼치구이 등 삼치로 만든 새로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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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삼치회


고흥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숨은 미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황가오리회다. 수소문 끝에 현지인들에게 인기있는 도라지식당을 찾아갔다. 마치 마블링이 잘된 꽃등심을 보는 듯하다.

실제 기름장에 찍어 한 입 넣으니 쫄깃쫄깃한 식감이 육회나 다름없다. 사실 황가오리를 주문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황가오리 애를 먹기 위해서다. 홍어 애 마니아라면 꼭 도전해야 한다. 비린내는 전혀 없고 아주 고소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운다. 프랑스 최고급 푸아그라도 울고 갈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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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금풍선어


황가오리는 여름이 제철로 알려졌지만 고흥 앞바다에서는 사계절 황가오리가 그물에 걸려 올라온단다. 노릇노릇 구어 나오는 고소한 금풍선어는 이곳 술꾼들이 꼽는 최고의 안주. 술이 쉬지 않고 쭉쭉 들어가니 경계해야 한다.

회무침으로 주로 먹는 서대회를 고흥에서는 구이로 먹는다. 백상회관에서 서대회구이를 맛볼 수 있는데 맛있는 생감자를 씹는 맛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린 우거짓국을 꼭 곁들여 먹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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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명인집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우럭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맑은 국물에 말린 우럭을 넣어 만든 우렁강국은 담백하면서도 시원해 술꾼들의 숙취를 달래준다.


#미식의 절정 목포 흑산도 홍어와 낙지

홍어.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음식이다. 하지만 식도락가라면 홍어는 남도 미식여행의 ‘끝판왕’이다. 입천장이 벗겨질 정도로 제대로 삭힌 홍어를 먹어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미식가라고 말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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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락 홍어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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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도 공원을 마주보는 목포종합시장


삼학도 공원을 마주한 목포종합수산시장에 들어서니 쿰쿰한 특유의 홍어 냄새가 코를 찌른다. 흑산도산과 칠레산을 박스째 팔고 있는데 2일 삭힌 것에서 5일 삭힌 것까지 ‘난이도’가 다양하니 수준에 맞게 고르면 된다. 즉석에서 썰어서 맛을 볼 수 있는데 인근 무안, 영암, 해남 등지에서 홍어를 사러 이곳으로 몰린다. 1908년 동명동 어시장으로 시작했으니 목포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시장이다. 홍어 외에도 말린 박대, 서대와 조기, 먹갈치 등 다양한 생선이 손님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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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낙지 탕탕이


홍어와 함께 목포를 대표하는 미식은 세발낙지. 낙지탕탕이로 소문난 명인집으로 향한다. 1979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식당에 들어서니 처마 밑에 주렁주렁 생선을 달아 말리는 중이다. 한국인들이 광어와 함께 가장 많이 즐기는 우럭이다. 저 맛있는 횟감을 왜 말리고 있을까. 메뉴를 보니 알겠다. 우렁강국. 맑은 국물에 바짝 말린 우럭을 넣는데 시원하면서도 깊고 그윽하다. 전날 마신 술 때문인지 그릇째 들어 들이켜게 된다. 낙지탕탕이가 독특하다. 질 좋은 육회 위에 낙지가 얹어 나오는데 아직도 요란하게 꿈틀댄다. 육지 고기의 으뜸과 바다 고기가 만나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보양식이다. 전복을 넣은 낙지탕탕이도 있다니 탕탕이의 변주곡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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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먹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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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회


목포 사람들만 아는 맛이 하나 더 있다. 꽃게 김치. 오미락에서는 포기김치로 나오는데 손으로 쪽쪽 찢어먹는다. 평소 알고 있던 김치의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는 맛이다. 날 꽃게 살로 속을 만들어 담갔는데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위에 얹어 먹으니 미각세포를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는 감칠맛이 일품이다. ‘목포의 5미’ 민어, 낙지, 홍어, 갈치, 병어를 모두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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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보리굴비


목포 미식여행의 ‘화룡점정’은 목포음식 명인으로 선정된 장연자(57) 대표가 운영하는 수담에서 찍는다. 장 대표는 2009년 굴비정식으로 명인으로 선정됐다. 추자도 인근에서 잡은 조기를 쓰는데 살이 두툼하고 간이 적당해 역시 밥도둑이다. 막걸리 한 통도 금세 비워진다. 그런데 반찬으로 나온 젓갈이 자꾸 손이 가게 만든다. 바로 갈치창젓이다. 간이 적당하고 거슬리지 않는 비린내가 식욕을 마구 부르니 입맛 떨어진 여행자들은 꼭 드시길.

#겨울철 벌교 꼬막이 점점 맛있어진다

여자만을 끼고 있는 순천, 고흥, 보성은 꼬막의 보고다. 이곳에서는 제사상에 꼬막이 없으면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다. 심지어 꼬막을 잘 삶는 며느릿감을 찾아 모셨을 정도로 꼬막은 이 지역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던 음식이다. 꼬막의 대명사는 보성군 벌교. 포구에 조폭들이 몰리던 시절, 낙안읍성 곡창지대에서 곡식을 뜯어가고 돈도 뺏어갔지만 꼬막만은 절대 건드리지 못하게 할 정도로 벌교 사람들에게 꼬막은 목숨과도 같았다. 그러니 벌교 가서 꼬막정식을 먹지 않았다면 벌교를 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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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정도가 꼬막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으로 구분하는데 예전에서는 가장 맛있는 자연산 참꼬막으로만 꼬막정식을 차렸다. 하지만 갯벌이 점점 사라져 꼬막의 서식지가 줄면서 생산량이 급감, 값이 비싸져 이제 벌교에서도 찾기 힘들단다.

요즘은 가격이 절반인 새꼬막과 피꼬막을 섞어서 꼬막정식을 꾸린다. 참꼬막이 풍부하던 시절, 새꼬막은 ‘똥꼬막’이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이 따라다녔다. 참꼬막에 비해 제사상에도 못 오를 정도로 맛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꼬막의 타우린 성분은 참꼬막의 두 배일 정도로 영양이 풍부하다니 이제 선입견은 버리자.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에서 주인공 정하섭의 본가이자 술도가로 묘사됐던 정도가에서 1만8000원짜리 꼬막정식을 주문하면 통꼬막, 양념꼬막, 꼬막무침을 모두 맛볼 수 있다.

순천을 상징하는 음식은 짱뚱어탕. 순천만습지 갈대밭을 거닐다 보면 흔하게 만나는 짱뚱어는 눈이 툭 튀어나오고 몸길이는 18㎝ 정도의 바닷물고기다. 대대선창집에서 구수한 우거지를 가득 넣고 끓인 짱뚱어탕 한 그릇을 비우면 여행의 피로는 저 멀리 달아난다. 닭다리 백숙까지 딸려 나오니 다시 길을 나설 힘까지 덤으로 얻는다.

고흥·목포·보성·순천=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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