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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경신의 주인공은 선수 아닌 첨단 수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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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약물의 유혹, 도핑의 과학]

21화 기술 도핑 ② 수영복의 진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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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17일 정오경 베이징 올림픽의 모든 관심은 남자 4X100미터 혼영(배영-평영-접영-자유형) 계주 결승전이 펼쳐지는 수영 경기장으로 쏠렸다. 이미 일곱 개의 금메달을 거머쥔 마이클 펠프스(Michael Phelps)가 이 종목마저 우승하면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7관왕에 오른 마크 스피츠(Mark Spitz)를 뛰어넘어 8관왕이라는 전입미답의 경지에 오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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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금메달로의 길은 쉽지 않았다. 미국 대표팀은 배영에서 간발의 차이로 가장 먼저 들어왔지만 평영에서 일본에 선두를 내줬다. 평영 100미터, 200미터에서 2관왕에 오른 기타지마 고스케의 역영(力泳)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 주자로 나선 펠프스가 경기를 다시 뒤집었다. 주종목인 접영에서 100미터를 50초15로 끊으며 마지막 자유형 주자에게 선두 자리를 건네주었다. 미국팀은 3분29초34의 세계 기록을 작성하며 우승했고, 펠프스는 여덟 번째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당시 펠프스는 200미터 자유형 경기에서 박태환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나란히 1위와 2위를 기록한 바 있었다. 박태환이 이 종목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한 아시아 선수일 정도로 호성적이었지만, 우리 국민은 그래도 아쉬웠다. 박태환도 펠프스처럼 전신 수영복을 입었으면 어땠을까라는 말도 많이 나왔다. 그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수영에서 진정한 스타는 사실 수영복 회사 스피도(speedo)가 선보인 ‘레이저 레이서(LZR racer)'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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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이 된 수영 선수

"물에 닿는 순간 마치 로켓이 된 것 같아요."[1]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스피도는 4년 뒤 올림픽을 목표로 새로운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아테네에서 선보인 ‘2세대 패스트스킨(Fastskin FSII)'의 재질은 나일론과 테플론(Teflon; 안정성이 뛰어난 화학 물질로 프라이팬 코팅이나 고어텍스로 사용됨)으로 코팅한 스판덱스로 이뤄져 있었다. 소수성(疏水性; 물꺼림성)이 높은 섬유를 사용해 수영복에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가도록 했지만 문제는 솔기였다. 천이 짜인 형태에 따라 물방울이 불규칙하게 튀면서 고질적으로 헤엄을 방해하는 항력(抗力; 물체가 유체 내에서 운동할 때 받는 저항력)이 발생했다.

2006년 1월 스피도의 차세대 수영복 제작을 진두지휘하던 연구소 ‘아쿠아랩(Aqualab)'은 호주스포츠협회(AIS)에서 여러 분야의 전문가를 소집한 회의를 열었다. 스포츠 과학자, 생체 역학 전문가, 공학자들의 틈바구니 속에 특이하게 미국항공우주국(NASA) 소속의 공학자 스티브 윌킨슨(Steve Wilkinson)도 있었다. 로켓과 수영복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길래 미국항공우주국까지 나섰던 것일까?

윌킨슨은 로켓의 표면에 흐르는 공기가 마찰을 일으키며 속력에 영향을 주는 경계층(boundary layer)을 오랫동안 연구한 전문가였다. 그에게 부여된 과제는 수영복의 항력을 줄이는 재질과 솔기 형태를 찾는 것이었다. 작은 풍동(風洞)에서 60여 개의 후보 재료를 실험한 결과 테플론을 폴리우레탄(polyurethane)으로 대신하면 항력이 더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솔기의 경우에는 초음파 접합(sonic welding) 기술을 사용해 각 부위를 마치 금속 조각처럼 연결하는 방법이 효과적이었다.

2008년 2월 스피도는 레이저 레이서를 공개했다. 마이클 펠프스를 포함한 미국의 수영 선수 일곱 명이 어깨부터 발목까지 덮는 까만 수영복을 입고 ‘슈퍼 히어로'같은 자세를 취했다. 새 수영복은 선수들을 영웅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꺼림성이 높은 재질은 물을 튀겨낼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부력(浮力; 뜨는 힘)을 제공했고, 디자인은 몸 전체를 압박해 선수의 체형을 물에서 좀 더 역동적(hydrodynamic)인 형태로 바꿔 항력을 떨어뜨렸다. 자체 연구 결과에서는 이전 세대 수영복보다 항력이 24% 감소하고, 헤엄의 효율성이 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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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레이저 레이서는 수영복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을 다시 일으켰다. 이탈리아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인 알베르토 카스타그네티(Alberto Castagnetti)는 우려의 목소리를 크게 낸 사람 중 하나였다.

"수영은 항상 (선수들의)능력에 기반을 두어 왔다. 이제 다른 요인이 생겼다. 이건 기술 도핑(technological doping)과 같다. 스포츠 정신이 사라졌다."[3]

스피도의 경쟁사들도 명백히 규정을 무시했는데도 국제수영연맹(FINA)이 레이저 레이서를 승인했다며 볼멘소리를 늘어 놓았다.

"규칙을 존중하지 않으면 혁신자(innovator)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윤리는 어디 간 걸까?"[4]

같은해 4월 연맹은 논란을 뒤로 하고 레이저 레이서를 최종 승인했다. 수영 선수들은 앞다퉈 첨단 수영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가대표 선발전은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선수들의 3분의 2가 레이저 레이서를 입었고, 선발된 선수의 78%가 착용하기로 결정했다. 미즈노, 아식스, 데상트의 후원을 받던 일본의 기타지마 고스케도 기록을 위해 기존 수영복을 내려 놓고 레이저 레이서의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 나라의 박태환도 도전해봤지만 어깨 부분이 조이고 걸려 결국 포기하고 하체만 덮는 반신 수영복으로 대신했다.

착용감은 레이저 레이서의 큰 단점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압박하는 특성 때문에 입으려면 시간이 20분 정도 걸렸다. 일부 선수들은 마찰을 줄이려고 발에 비닐 봉지를 씌우고 낑낑대며 수영복에 몸을 집어 넣었다. 직접 입어본 한 리포터가 자신을 마치 거꾸로 탈피하는 바닷가재 같다고 표현할 정도였다.[5] 몸을 겨우 쑤셔 넣어도 옷이 아니라 종이처럼 느껴지는 레이저 레이서는 경기에 몇 번 참가하면 찢어지거나 늘어나 버려서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한 벌의 가격이 최대 60만원에 이르렀으니 스피도의 후원을 받지 못하는 선수에게는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열리자 레이저 레이서의 단점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94%의 경기에서 승리를 견인하고, 84%의 메달 획득에 기여하는 놀라운 성적표를 받았기 때문이다. 남자 경기에서는 1위 선수 모두가 레이저 레이서를 입은 선수들이었다. 그 중에는 레이저 레이서를 입고 마치 로켓처럼 물을 헤친 8관왕 마이클 펠프스도 있었다. 선수들이 세운 기록 역시 압도적이어서 총 25개의 세계 신기록이 수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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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던 기술 도핑의 시대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자 스피도의 경쟁사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선두 주자는 아레나(Arena)와 제이키드(Jaked)였다. 이들이 선보인 ‘엑스-글라이드(X-Glide)'와 ‘제이오원(J01)'은 오직 폴리우레탄으로만 제작된 수영복이었다. 폴리우레탄이 많아질수록 수영복이 쉽게 찢어졌기 때문에 레이저 레이서도 일정 이상 비율을 끌어 올리지 못했지만 두 회사는 폴리우레탄 조각을 열로 접합시키는 기술로 아예 솔기가 없는 수영복을 탄생시켰다. 물꺼림성과 항력 감소를 여실히 보여준 폴리우레탄을 100% 사용한 제품은 수영복 진화의 당연한 종착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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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복의 빠른 진화에 맞춰 기록 갱신의 속도가 터무니 없이 빨라지자 연맹을 향한 불평이 쌓여만 갔다. 2009년 2월 마침내 연맹은 16개 수영복 회사 대표와 모임을 갖고 수영복의 디자인과 재질에 관한 규정을 발표했다. 연맹은 348개의 수영복 중 202개를 승인했으나, 여러 회사들이 기간이나 절차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오히려 186개가 추가로 통과되면서 총 388개의 수영복이 2009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허용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2009년 여름 로마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기술 도핑'이 구현된 대회였다. 새로운 수영복은 불과 1년 전 첨단 수영복으로 위세를 떨쳤던 레이저 레이서를 구닥다리로 만들었다. 엑스-글라이드를 입고 출전한 독일의 파울 비더만(Paul Biedermann)이 대표적인 예였다. 대회 첫날 남자 400미터 자유형에서 3분40초07의 기록으로 우승하며 ‘인간 어뢰’ 이안 소프(Ian Thorpe)가 7년 동안 보유하던 세계 기록을 갱신하더니, 이틀 뒤 200미터 자유형에서도 1분42초로 세계 기록을 세우며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를 따돌리고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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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펠프스가 1분42초96의 기록으로 자유형 200미터에서 우승했을 때 비더만은 1분46초를 기록하며 5위에 그쳤다. 하지만 비더만은 11개월만에 무려 4초를 단축하는 기염을 토했다. 펠프스가 개인 기록을 4초 앞당기는 데 5년이나 걸린 것을 고려하면, 비더만이 거둔 놀라운 성과가 첨단 수영복 도움 덕분이라는 생각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본인 역시 첨단 수영복의 도움을 받았던 펠프스조차 직접적으로 불만을 토했다.

"그것(100% 폴리우레탄 수영복)은 스포츠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이건 수영이 아니에요. (신문의) 머리기사는 늘 누가 어떤 수영복을 입는가입니다."[6]

세계 신기록 경신 뉴스가 심드렁하게 들리는 상황이 되자 연맹은 2009년 초 만든 규정을 더욱 엄격하게 손봤다. 핵심은 수영복의 재질로 폴리우레탄 같은 물꺼림성 소재를 금지하고 물이 스며들 수 있는 직물(textile)만을 허용한 것이었다. 또한 두께는 0.8mm 이하, 부력은 0.5뉴턴(N) 이하, 침투성은 재질을 여러 방향으로 25% 잡아당긴 상태에서 1제곱미터 당 80리터(l/m)이하와 같은 구체적인 기준을 정했다. 디자인의 경우 남자는 허리부터 무릎까지, 여자는 어깨부터 무릎까지로 제한했으며 지퍼처럼 몸을 조이는 결합 장치도 금지했다.[7]

많은 제약이 생겼어도 수영복 회사들은 이후에도 나름의 기술 발전을 꾀했다. 아레나는 탄력성이 높은 소재를 사용해 다리 근육을 압박하고, 불필요한 움직임을 방지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방법에 집중했다. 스피도는 수영복 외에 수영모나 물안경에도 관심을 돌려 조금이라도 항력을 줄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기록 갱신의 광풍은 멈췄고, 선수들이 어떤 수영복을 입는지는 관심에서 멀어졌다. 2016년 리우올림픽이 열리기 전 스피도는 ‘패스트스킨 레이저 레이서 엑스(Fastskin LZR Racer X)'를 공개했지만 글쎄, 굳이 외우기에는 너무 긴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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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선수들에게 돌려주기

수영이 오락 혹은 관람거리에서 본격적인 스포츠로 전환되었을 때부터 수영복은 신기술의 결정체였다. 최신 과학 기술이 수영복에 도입될 때마다 너무 짧아서, 너무 달라붙어서, 너무 얇아서 논란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력이므로 첨단 수영복은 논란과 상관없이 매번 안착했고, 수영복의 진화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국제수영연맹은 물꺼림성 소재로 제작된 전신 수영복을 제한하며 시계 바늘을 뒤로 돌렸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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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기술의 도입을 거부한 연맹의 결정은 마치 산업혁명 시대에 기계를 부수며 변화를 거부한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누가 빨리 헤엄치는지 가리는 운동 종목에서 선수가 아닌 수영복이 부각되는 것을 막는 불가피한 조치였다. 승부가 어떤 수영복을 입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면 수영은 성능 좋은 자동차가 부각되는 자동차 경주와 별 다른 차이가 없게 된다. 더욱이 선수들은 동시대의 선수들과 순위를 다투기도 하지만 앞선 시대 선수들의 기록과도 경쟁을 한다. 시대를 반영한 과학 기술을 품으면서도 시대를 건너 뛰어 공정하게 자웅을 겨루는 것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구현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수영복, 수영모, 물안경 외에 별 다른 도구가 필요 없는 수영과 달리 자전거 경주처럼 인간의 몸 외에 다른 도구의 중요성이 절대적인 종목에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을까? 이제 전설적인 자전거 선수 에디 메르크스(Eddy Merckx)가 ‘한 시간 동안 가장 멀리 자전거 타기 기록(hour record)’을 세웠던 1972년으로 돌아가보자(③부에서 계속).

최강/정신과의사∙다사랑중앙병원 원장

ironchoi@hanmail.net





참고 자료

1. Barnstorff, K., NASA Know-How Helps Athletes Rocket Through Water. NASA, 2008. http://www.nasa.gov/topics/technology/features/2008-0214-swimsuit.html.

2. Space Age Swimsuit Reduces Drag, Breaks Records. NASA. http://spinoff.nasa.gov/Spinoff2008/ch_4.html.

3. FINA rules to allow high-tech swimsuits; Italian coach calls it 'technological doping'. The New York Times, 2008. http://www.nytimes.com/2008/04/08/sports/08iht-swim8.11783912.html.

4. Petty, M., FINA pressed to settle row over high-tech swimsuits. Reuter, 2008. http://uk.reuters.com/article/businessproco-swimming-world-bodysuits-d/fina-pressed-to-settle-row-over-high-tech-swimsuits-idU KSP20265420080411.

5. Dickerman, S., Full Speedo Ahead. Slate, 2008. http://slate.com/culture/2008/08/can-the-speedo-lzr-racer-make-me-a-better-swimmer.html.

6. Crouse, K., Phelps Loses, and a Debate Boils Over. The New York Times, 2009. http://www.nytimes.com/2009/07/29/sports/29swim.html.

7. PR58 - FINA Bureau Meeting. FINA, 2009. http://www.fina.org/news/pr58-fina-bureau-meeting.

8. Foster, L., D. James, and S. Haake, Influence of full body swimsuits on competitive performance. Proc Eng, 2012. 34: p. 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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