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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전세대출 못받으니 반전세로… 규제가 만든 틈새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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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경기 하남 위례신도시에서 전세를 사는 A씨는 지난해 9월 인근에 있는 소형 아파트를 월세 끼고 8억원에 매입했다. 이 아파트 시세는 최근 9억원을 넘었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 없다. A씨가 거주하는 아파트 전셋값도 1억5000만원 올랐다. 전세자금대출을 받아야 하지만,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화로 20일부터 9억원 초과 1주택자도 신규 전세자금을 대출받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같은 사정을 전하면서 "내 집에는 당장 들어가 살 수 없는 상황인데 가진 돈은 1억원뿐"이라며 "집주인에게 전세 보증금 증액분을 월세로 내겠다고 제안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최근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보증금과 함께 매달 월세를 내는 반(半)전세(준전세) 아파트가 늘고 있다. A씨처럼 고가 주택 소유자의 전세자금대출이 막히면서 반전세 또는 월세를 택하는 세입자가 늘고, 공시가격 인상·보유세 인상 여파로 전세를 주던 집을 반전세로 돌리는 집주인도 많아졌다. 이뿐만 아니라 실수요자들이 주택담보대출 대신 신용대출을 이용하거나 비규제 지역에 청약을 하는 등 정부 규제를 피해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묘안을 짜내고 있다.

◇서울 반전세 아파트 비율 급등

19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월세 거래된 서울 아파트(9748건) 가운데 반전세(1473건)는 15.1%인 것으로 나타나,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전세는 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어치를 초과하는 경우를 말한다. 특히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에서는 전체 전세 거래의 12~16% 수준이던 반전세 비율이 22.6%(823건)로 확대됐다. 같은 달 이 지역들에서 전세 거래 비율은 65.3%로 지난해 중 가장 낮았다. 강남구 대치동 등 학군 인기 지역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전세 매물 자체가 귀해지면서 전셋값이 2억원 안팎 올랐고, 전세대출마저 까다로워지자 '울며 겨자 먹기'로 반전세를 택하는 이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종합부동산세가 많이 나와서 부담이 된다며 전셋집을 반전세로 돌리려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집주인이 많았다"며 "지금 전세 매물은 거의 없고 월세나 반전세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주담대 조이자 '영끌'족 증가

가능한 돈줄을 모두 동원해 집을 사는 이른바 '영끌'('영혼을 끌어모은다'는 뜻)족이 늘고 있는 것도 집값 상승과 주택담보대출규제가 만든 새로운 현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은행권 가계대출에서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대출, 예·적금담보대출 등이 포함돼 있는 기타대출이 전달보다 1조6000억원 늘었다. 12월 기준으로 2006년 이래 13년 만에 최대 증가 폭이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통상 12월에는 기타대출이 크게 늘지 않는 경향을 보이는데, 올해는 대출 규제가 강화된 상황에서 주택 구매 수요가 늘어나 기타대출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아파트를 가격순으로 줄 세웠을 때 중간 가격)은 8억9751만원으로 고가 주택 기준인 9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12·16 대책으로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대출이 전면 금지되고, 9억원 초과 아파트도 9억원 초과분에 대해서는 LTV(담보대출인정비율)가 기존 40%에서 20%로 줄어들자 기타대출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수도권 '줍줍'에 수만 명 몰려

청약 시장에서는 수도권 비(非)규제 지역 중에서도 규제가 거의 없다시피 한 미계약분 아파트 추첨에 수만 명이 몰리고 있다. '줍줍(줍고 또 줍는다는 뜻)'이라 불리는 무순위 청약의 경우 19세 이상이면 청약 통장 없이도 누구나 신청이 가능한 데다, 비규제 지역에서는 분양권을 계약 후 6개월 뒤 팔 수 있다. 지난 14일 인천 부평 두산위브더 파크 4가구 미계약분에 4만7626가구가 몰렸고, 지난달 말 수원 권선구 코오롱 하늘채 무순위 청약 14가구에 7만1222명이 운집했다. 지난달 초엔 인천 서구 루원시티 린스트라우스의 미계약 잔여 70가구 추첨 분양을 위한 선착순 모델하우스 입장을 위해 수백 명이 모델하우스 앞에서 천막을 치고 밤샘 대기를 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이상우 인베이드 투자자문 대표는 "부동산 시장 규제가 집값은 잡지 못하면서, 실수요자들에겐 월세와 각종 이자 비용 등 주거비 관련 지출을 늘리게 하고, 잠잠하던 비규제 지역에서도 집값이 뛰는 풍선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송원 기자(lssw@chosun.com);성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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