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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들' 피란수도 부산에서 마주한 피란민들의 삶과 애환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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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전미용 기자] 피란민들의 애환과 삶을 엿봤다.

19일 방송된 MBC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는 송해x육중완과 함께 피란수도였던 부산을 찾아 그곳에 숨은 피란민들의 애환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육중완은 피란길을 떠올리는 송해에게 "가족들과 이별하고 이산가족을 찾는 프로그램에서 가족분들을 찾지 않으셨냐"라고 물었다. 이에 송해는 "이북이 아니라 이남에 계셨다면 내가 활동을 했으니까 만났을 텐데. 활동을 활발히 하던 때다. 그런 생각으로 이산가족 신청도 안 하고 그냥 거기에 가 있었다. 이남에 안 계셨단 얘기다"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도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밝힌 송해는 "2003년에 평양 모란봉공원에서 '전국 노래자랑'을 했는데, 고향에 가봤자 아무도 안 계신다고 하더라. 자식 된 도리로 안타까운 얘기지만, 어머니 연세도 연세고, 포기 상태다. 그렇게 세월을 살아왔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이에 송해는 육중완의 기타 반주에 맞춰 '굳세어라 금순아'를 불렀다. 육중완은 가사는 슬픈데 리듬이 경쾌한 곡이다라며 노래를 해석했다 하지만 이내 어두워지자. "아 또다시 어두워졌네'라며 자책해 웃음을 자아냈다.

전현무는 "10년 만에 뵙는데 여전히 똑같다"라고 말했고 이어 윤봉길, 이봉창 서거 때 송해 선생님이 5살이었다. 직접 모든 걸 겪은 거 아니냐"며 놀라워했고 송해는 광복되던 해 만세를 잘못 불러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선녀들은 '40계단'으로 향했다.

설민석은 "선생님 모시고 가니까 괜히 든든하다. 무서울 게 없는 큰 형님 느끼이다"라며 팬심을 드러냈다. 유병재는 40계단을 보면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이 계단이 나오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고 송해는 어린 시절 안성기를 만난 이야기를 건넸다.

송해는 40계단을 오르며 "실향민들이 여기 나와 있었다. 여기를 와야 가족들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며 회상했다. 설민석은 송해에게 "실제 선생님이 가족을 기다렸던 계단은 어땠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송해는 "지금과는 다르다. 그 당시 모습을 좀 남겨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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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송해는 '경상도 아가씨' 노래 이야기를 꺼내며 아내와의 러브 스토리를 수줍게 꺼냈다. 송해는 "경상도 아가씨는 나만의 이야기뿐 아니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별의 부산 정거장'을 불렀다. 이에 육중완은 "그냥 들을 때보다 모든 사연을 알고 들으니 마음이 울컥하다"고 말했다.

이어 40계단 문화관을 찾았다. 설민석은 "1.4 후퇴 때 우리 젊은 이들이 적군의 총이 아닌 배고픔과 추위로 많이 죽어갔다. 200억원을 중간에서 가로채서 군사품을 받지 못했다"라며 가슴아픈 역사 이야기를 전했다.

송해는 국제 시장에 대해 묻자 "피란민들은 모두 이곳에 있었다."고 말했고 설민석은 "사실 시장이 아니었다. 이곳을 평지로 만들어 놓은 일본인들이 광복이 되자 빨리 자신의 나라로 가려고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그곳에 풀어 장사를 했다. 그래서 돗데기 시장으로 불리다 나중에는 자유시장 이어 미군들이 들어오면서 인터내셔널 국제 시장으로 변했다"라고 전했다.

이후 선녀들은 점심을 먹으러 갔고 그곳에 황해도 고향동네가 그려진 모습이 있었다. 이에 송해는 '벽성'이구나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평양 대표 음식 '어복 쟁반',을 맛보며 "고향 생각이 난다"며 만족해했다.

전현무는 부산에 "초량돼지갈비도 유명하다. 돼지국밥도 이곳이 시초다."라고 전했다. 이어 전현무는 송해의 모습을 보며 "장수 비결이 느껴진다. 천천히 드시고 소식하신다"라며 감탄했다.

설민석은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송해에게 " 쉬고 싶을 때 없냐" 물었고 "왜 없겠냐. 근데 나는 아직도 이루지 못하게 있다. 고향을 못 갔다. 부모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 만큼 불효가 어딨냐. 그런데 어떡하냐. 나라 정세가 이런 걸"이라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어 "꿈에도 그렇게 나오지 않으셨는데 금강산에서 한번 어머니가 꿈에 나왔다. 그때 딱 한 번. 환상이겠지"라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건넸다. 이어서 '가거라 삼팔선'을 부르며 지금하고 딱 맞는 노래 같다. 이걸 불러야 나도 선을 넘는 녀석들에 들어오는 거 아니냐"며 재치 있는 입담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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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송해는 다른 스케줄로 인해 아쉽게 헤어졌고 선녀들은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찾았다. 설민석은 "이곳은 일제강점기시절 공동묘지였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피란민이 생기자 이곳에서라도 살라고 내준 거다"라고 전했다.

이어 "묘비 위에 집을 지었다. 이에 비석마을이라 부르는 거다. 피란민들이 이렇게라도 살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곳에도 영웅이 있었다며 장기려 의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설민석은 "평양에 살았던 장기려 의사는 6.25 때 월남했다. 다시 만날 줄 알고 가족들도 두고 내려왔다. 그런데 다시 만나지 못했고 장기려 의사는 병원을 세워, 없이 사는 환자들에게 '닭 두 마리'를 처방해 닭을 내주었고 돈이 없어 퇴원 못하는 환자들을 몰래 탈출 시켜줬다"라고 전했다.

이어" 정부에서 남북 이산 가족을 진행, 장기려 의사에게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지만 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고 평생을 병원 옥탑방에 살았다. 돌아가실 때 남은 천만원은 자신을 간병한 간병인에게 모두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라며 설명했고 모두가 숙연해했다.

/jmiyo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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