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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최병두 칼럼] 도시 이주노동자의 죽음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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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병두 ㅣ 한국도시연구소 이사장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상품과 자본뿐 아니라 노동의 국제 이동도 자유롭게 했다. 최근 미국의 멕시코 국경장벽 구축이나 난민 거부로 촉발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처럼 이에 반하는 정책들이 추진되긴 하지만, 지구화 논리는 여전히 세계적 추세다. 그러나 노동의 이동은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일반 상품의 이동과는 다르다. 노동의 이동은 생명과 인권을 가진 노동자의 이주를 전제한다.

우리 사회도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100만명을 훨씬 넘어섰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외국인 취업자는 86만3천명이고, 외국인 실업자도 5만명에 이른다. 미등록 이주민도 급증하여 2019년 11월 39만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영세 제조업, 서비스업, 농어업 등에서 낮은 임금을 받고 힘들고 위험한 일들을 담당한다. 업주 등은 이들을 고용하는 이유로 내국인 구인의 어려움, 인건비 절감, 장시간 근무, 적은 이직 등을 꼽는다.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많은 중소업체의 가동이 불가능해진다. 이들은 이제 한국 경제의 한 축이자 이를 지탱하는 밑받침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지난해 5월 기준 월평균 200만~300만원 받는 외국인 취업자는 절반 조금 넘고, 3분의 1 정도는 200만원 미만을 받는다. 이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제 영향으로 다소 올랐지만, 내국인에 비하면 상당히 낮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해야 하고, 불안한 법적 신분과 인종 편견으로 차별받는다는 점이다. 작업장에서 폭언과 폭행은 다반사이고, 흔히 사고나 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에도 한 외국인 노동자가 김용균씨와 비슷하게 비상장치나 안전 통로도 없는 작업장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졌다. 이처럼 산업재해로 2018년 숨진 이주노동자는 136명, 사고자는 7천명이 넘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처지는 더 심각하다. 이들은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당한 채 고용자에게 예속된다. 갑작스러운 단속에 항상 불안해하며, 때로 죽음으로까지 내몰린다. 지난해에도 단속을 피해 창문 난간에서 떨어지거나, 도망치다 절벽 아래로 추락해 숨진 사례들이 있었다.

지난 12월1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이주민의 날이었다. 이날을 기념하여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는 작은 행사가 열렸다. 행사의 제목은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였다. 행사 참석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강제 단속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호소했다. 또한 이날 국가인권위원회는 ‘2차 이주 인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인종차별금지법 제정과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금지 원칙 폐지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호소를 무시하고, 인권위의 가이드라인조차 외면한다. 미등록 외국인들이 급증하자 법무부는 지난달 ‘불법체류 외국인 관리대책’을 마련했는데 핵심 내용이 미등록 이주민이 올해 6월 말까지 자진 출국하면 재입국 기회를 주고 그 후 단속을 강화하고 범칙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발급하겠다는 비자는 취업이 허용되지 않거나 단기 계절 근로비자로, 이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강제 단속과 범칙금 강화는 결국 인권 침해를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현재 외국인 이주노동 정책은 1990년대 마련한 원칙, 즉 외국인 단순노동자의 단기 체류 후 순환 이주하는 방식을 따른다.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의 체류 기간은 최대 9년8개월이다. 이들은 한국 상황과 업무에 익숙해질 때쯤 돌아가야 하고, 대신 낯선 노동자들이 들어온다. 이런 단순노동의 순환 반복은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고 생산성 저하와 비용 증대를 초래한다.

이런 이유로 외국인 노동자뿐 아니라 고용 기업이나 전문가, 언론들도 숙련 외국인 이주노동자 육성 정책과 비자 제도 개선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의 요구와 고용 업체의 주장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한 예로 고용 업체는 이직심사제도 강화와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을 주장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는 이 제도들의 대폭 완화를 촉구한다. 이런 대립에서 그동안 정부는 기업의 이해관계를 우선 반영해왔다.

저성장·저출산 시대에 걸맞게, 정부는 외국인 노동의 분야별 수요와 숙련 정도 등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새로운 이주노동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최대한 반영한 정책이 시급하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보편적 인권을 가진다. 이들의 권리는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와 지역 경제에 기여한 노동의 대가로 획득한 정당한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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