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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서초동살롱]'이재용 재판'이 금요일마다 열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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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미호 기자]

머니투데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파기환송심 4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첫 재판(지난해 10월 25일), 두번째 재판(지난해 11월 22일), 세번째 재판(지난해 12월 6일), 네번째 재판(지난 17일)의 공통점이 있다면 뭘까. 정답은 네 차례의 재판이 모두 금요일에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재용 재판부는 합의 재판부다. 합의 재판부는 통상 판사경력 15년 이상의 부장판사(재판장)과 우배석 판사, 좌배석 판사 등 3명이 하나의 재판부를 구성한다. 배석판사들은 사법연수원을 갓 나온 판사들로 5년 가까이 경력을 쌓고 민·형사 사건의 단독판사로 간다.

이들이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들여다보면 주요 재판이나 선고가 왜 한주의 마지막에 몰리는지 알 수 있다.

합의부 배석판사의 일상을 보자. 통상 목·금요일에 선고를 하고 다음주 선고를 합의하거나, 판결문을 쓰기 시작한다. 재판의 최종 산물인 판결문을 마무리짓기 위한 판사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판결문 쓰기는 월요일과 화요일에도 계속 이어지고 수요일엔 통상 판결문 수정작업에 들어간다. 여기에 다음주 재판 자료까지 준비해야 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예고됐던 재판이 하루 전날 기일변경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면서 "병가 등의 이유로 갑자기 미루는건데, 그럴때면 '판사가 판결문을 아직 다 못 썼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만약 선고가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있다면 어떨까. 사실상 주말을 반납해야 한다.

법조계에선 최근들어 젊은 판사들이 '워라밸'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실제로 주초엔 선고 건이 거의 없고, 목요일과 금요일에 몰린다. 이재용 4차 파기환송심이 열렸던 지난 17일에는 세월호 구상권 소송 등 주요 사건의 선고가 몰렸다. 취재 인력은 한정돼 있는데 재판이 몰리면, 각 재판에 대한 분석 및 해석이 불충분해지고,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갈 수밖에 없다.

'금요일 선고의 부작용'은 김학의 전 차관의 1심 선고때 가장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22일 오후 늦게, 별장 성접대 사건 의혹을 받는 김 전 차관에게 무죄 혹은 면소 선고를 내렸다. 면소라는 보기드문 판결이 나와 언론의 분석 및 해석도 늦어진데다, 다음날이 토요일인터라 대다수 신문의 1면을 피해갈 수 있었다.

물론 여론의 관심이 높고 사회적 파급력이 큰 중요한 사건들의 경우 재판부가 '요일'을 미리 고정하는 경우도 있다.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사건은 재판 시작부터 판사들이 "월요일로 하자"고 합의하기도 했다.

법무부나 대검의 '금요일 발표'도 종종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시절, 검찰개혁의 구체적 방안들이 금요일 오후에 발표되기도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비직제 수사조직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대검찰청에 특별 지시한 것도 지난 10일 금요일이다.

미국 백악관을 둘러싼 정치상황을 다룬 미국드라마 '웨스트윙(West Wing)'에는 '쓰레기 처리의 날(trash day)'라는 표현이 나온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신문 지면도 줄고 대중의 관심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불리한 내용이나 민감한 사안의 브리핑을 몰아서 하면 여론의 비난을 좀 더 피해갈 수 있다.

이재용 재판부는 지난 17일, 삼성의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성있게 운영되는지 점검하기 위해 '전문심리위원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준법 의지를 양형요소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볼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금요일 재판에 이어 금요일 선고까지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오얏나무 아래서는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는 옛말을 염두에 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미호 기자 bes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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