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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前 주한 EU 대사, 중국 스파이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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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예산국장 등 고위직 출신

돈 받고 경제 기밀 넘긴 혐의

조선일보

중국이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앞세워 서방 국가들의 기밀을 빼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와중에 게르하르트 사바틸(66·사진) 전 한국 주재 EU 대표부 대사가 중국에 EU 기밀을 넘긴 간첩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지난 15일 독일·벨기에 검찰은 베를린, 브뤼셀 등에서 사바틸 전 대사와 공모자 2명 등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독일 검찰은 "중국 측 비밀 정보원들에 의한 간첩 혐의 사건"이라고만 밝히고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독일 언론들은 사바틸이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에 포섭돼 EU 집행위원회의 경제 분야 고급 정보를 돈을 받고 중국 측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헝가리계 독일인인 사바틸은 1984년부터 33년간 EU에서 근무했다. EU 예산국장을 지냈고, EU 대표부 대사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에서 근무했다. EU에서 마지막 보직이 한국 주재 대표부 대사(2015~2017년)였다. 사바틸은 2011년부터 한국에 파견될 때까지 4년간 EU 대외관계청(EEAS)의 동아시아·태평양국장을 지냈으며, 이때 중국 측과 폭넓은 교분을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바틸은 2017년 EU에서 퇴임하자마자 브뤼셀을 중심으로 영업하는 EUTOP이라는 로비스트 회사에 영입됐다.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은 "사바틸이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중국에 여러 차례 건너가 현지 정보 요원들과 회동한 사실을 검찰이 포착했으며, 약 1년간 검찰은 통신 감청을 통해 그의 행적을 면밀하게 추적해 왔다"고 보도했다.

유럽 언론들은 말로만 무성하던 중국 정보기관의 첩보 활동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EU 고위직을 맡았던 인사가 포섭된 정황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충격을 표시하고 있다. 슈피겔은 "유럽에서 중국 측 간첩 활동이 적발된 것은 전례가 거의 없다"며 "화웨이의 통신 장비를 통한 중국의 정보 수집 행위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경고가 쏟아지는 시점에 이번 사건이 터져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사바틸의 공모자 2명은 EUTOP과 별도의 개인 로비스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로, 사바틸이 중국에 협조하기 위해 끌어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슈피겔에 따르면, 추후 사바틸이 간첩 혐의로 유죄가 확정될 경우 10년 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독일 검찰은 현재 사바틸과 공모자 2명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은 채 수사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아직 이들을 체포할 만큼 직접적인 증거를 모으지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독일 내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바틸은 독일 언론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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