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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크리틱] 아카데미, 가장 ‘세계적’인 로컬 / 노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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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노광우 ㅣ 영화칼럼니스트

최근 봉준호 감독의 장편 영화 <기생충>과 이승준 감독의 단편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것이 영화계의 가장 큰 뉴스이다. 그 이전에 봉준호 감독은 미국의 격주간지 <뉴욕>의 온라인 대중문화 전문 사이트인 ‘벌처’(Vulture)에 실린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가 그동안 아카데미상을 받지 못한 이유를 묻는 말에 아카데미는 “로컬”(미국 지역적)이라고 대답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 로컬한 시상식이 요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 상을 주는 행사로는 크게 영화제와 시상식이 있다. 영화제는 지향하는 성격과 조건이 있고 영화 제작자는 거기에 맞춰서 영화를 출품한다. 프로그래머가 영화제에서 상영할 영화를 선정하고 심사위원들이 수상작을 결정한다. 선정된 영화들을 일반인이 볼 수 있도록 상영하는 영화제 기간이 있다. 그래서 영화제에는 개막식과 폐막식이 있다. 이때 영화제가 여러 나라의 영화들을 상영하면 국제영화제가 된다. 그래서 국제영화제에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있는 최우수 외국영화상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최초의 국제영화제는 1932년에 시작된 베네치아(베니스) 국제영화제이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프랑스의 칸영화제, 독일의 베를린영화제가 생겼다. 이후 이들은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3대 국제영화제가 되었다. 이들은 출발 시점은 달랐으나 이후 국제영화제를 통해 외국과 영화적 교류를 늘리면서 자국 영화산업의 진흥과 영화문화의 발전을 추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상 시상식은 대개 한해를 결산하는 의미로 그 나라에서 상영된 영화들 중에서 수상작 후보를 결정하고 시상식이 정한 방식에 따라 수상작을 결정한다. 그리고 수상후보작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긴 하지만 시상식 행사는 하루에 끝난다. 영화상 시상식은 대체로 자국 영화들을 후보로 정하고 시상을 하는 국내용, 즉 로컬 행사가 된다. 그래서 이런 로컬 행사에는 시상식에 별도 출품한 외국 영화를 심사하는 최우수 외국영화상 범주가 있다. 이런 로컬 행사 시상식으로 미국에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있고, 프랑스에는 세자르상, 한국에는 청룡상과 대종상 시상식이 있다. 미국의 아카데미상은 1929년에 처음 시행되었고, 이후 여러 나라 시상식의 롤모델이 되었다.

한국 영화가 봉준호 감독 이전에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이유를 물은 위 질문과 답변을 보면서 이런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미국 영화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행사 자체는 로컬인데 다른 나라 방송사들이 중계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미디어 이벤트가 되어버린 점이다. 축구로 치면 국제영화제는 국가대표팀들이 출전하는 월드컵이고, 아카데미는 잘하는 선수들을 모아놓은 영국 (국내) 프리미어 리그이다. 단, 많은 외국인이 시청하기 때문에 그 행사는 세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둘째, 위 인터뷰 기사의 소구 대상은 그 잡지를 읽는 미국 독자들이다. 미국 독자들은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보다는 아무래도 아카데미가 친숙할 것이니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셋째, 사실 그 질문은 봉준호 감독이 아니라 아카데미 후보작 선정위원회에 던졌어야 한다. <기생충> 이전에도 많은 한국 영화가 미국에서 열린 각종 영화제나 영화평론가 협회에서 수상한 적은 있었다. 즉, 이미 수준 높은 한국 영화들은 미국 예술영화 애호가들에게도 알려져 있었는데 유독 아카데미가 늦게 인정한 것이다. 어쩌면 이제 아카데미 시상식도 <기생충>을 통해 로컬에서 벗어나 변화한다는 제스처를 보여주려는 것은 아닐까. 그게 다 아카데미의 계획일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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