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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영길의 법조 레프트 훅] 이명박의 한상대, 문재인의 이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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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명박-한상대, 경희대 문재인-이성윤 닮은꼴

'먼지털이식 수사 지양' 한상대, 한상률 부실수사 논란

한상대 총장 고대 인맥 요직 독점 '검란' 사태 불러

깜짝 발탁 이성윤, 검찰 '빅4'중 3개 역임 주목

청와대 사건 앞둔 이성윤, 검란 사례 되짚어야

헤럴드경제

한상대 전 검찰총장 [연합]


2012년 11월, 한상대 검찰총장은 대변인실 오전 보고를 받은 뒤 착잡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남깁니다. “다 나가라고 하네...” 이날 아침 대검의 검사장급 간부들은 한 총장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한 총장은 역정을 내며 “당신들이 먼저 나가라”는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위계질서가 강한 검찰에서 대검 간부들이 총장 퇴진을 요구한 초유의 ‘검란’ 사태는 그렇게 불거졌습니다. 결국 한 총장은 다음날 사표를 냈고, 중도 퇴진했습니다.

▶고대 인맥 중용한 ‘이명박의 검사’, 한상대

한상대 총장의 이력은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한 총장의 전공은 기획업무였습니다. 법무부 국제법무관실 검사, 법무부 검찰국 검사, 법무연수원 기획과장, 법무부 법무심의관을 거쳤고 검사장 승진 후에는 법무실장과 검찰국장 등 요직을 두루 맡았습니다. 검찰국장 이후에는 서울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2011년 청와대는 한상대 서울고검장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힙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고검장급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좌천은 아니었지만 서울고검장이 중앙지검장으로 ‘역진’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인사였습니다. 워낙 이례적인 인사였기에, 이명박 정부가 한상대 검사를 총장으로 임명하기 위한 배려였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일선 지검장 경험이 없는 그에게 국내 최대 규모 청을 맡겨 경력을 보완해주는 것이라는 해석이었습니다.

불과 6개월 뒤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은 차동민 대검찰청 차장검사와 검찰총장 자리를 놓고 경합을 하게 됩니다. 한상대 검사가 정책업무에 특화된 ‘기획통’이었다면, 차동민 검사는 서울지검 특수 2,3부장과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을 지내며 굵직한 수사에 참여한 ‘특수통’으로 꼽혔습니다. 좀 더 면밀히 보자면, 한상대 검사는 사실상 검찰 내 고려대 인맥의 좌장이었고, 차동민 검사는 서울대 출신 특수부 검사를 대표하는 선임이었습니다. 고대 출신의 이명박 대통령의 선택은 한상대 총장이었습니다. 특수부 검사를 총장에 앉혔다가 검찰 수사 방향이 자신을 향할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정무적 감각이 뛰어난 자신의 대학 후배를 선택하는 게 안전한 선택이었을지 모릅니다. 결국 ‘서울대-특수통’으로 대표되는 검사가 고대 인맥에 밀린 셈이 됐습니다. 한 총장의 인선 배경에는 장인인 박정기 전 한국전력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씨와 육사 14기 동기였던 점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한상대 총장은 취임식을 포함해 여러 차례의 공식 석상에서 “종북 세력 척결”을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 주 전공 분야가 공안업무가 아니었지만, 이명박 정부 하에서 공안 검사들을 중용했습니다. 특히 대검 주요 보직에는 고대 인맥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물론 능력이 뒷받침되는 검사들이었지만, 특정 학교 출신 인사가 눈에 띄게 요직을 독점하면서 내부에서는 불만이 많았습니다.

한상대 총장이 퇴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김광준 검사의 수뢰사건과 전모 검사의 성추문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였습니다. 검찰에 대한 고강도 쇄신 요구가 이어졌고, 한 총장은 고심 끝에 대검 중수부 폐지라는 카드를 꺼냅니다. 하지만 한 총장의 의견은 대검 참모들의 반대에 직면합니다. 검찰총장의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중수부를 희생양으로 삼는 게 부적절하다는 반발이 나왔습니다. 당시 대검 차장은 채동욱 검사였고, 중수부장은 최재경 검사였습니다. 둘 다 서울대 출신에, 검찰의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였습니다. 한상대 총장은 대검 감찰본부장에게 최재경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합니다. 최재경 중수부장이 수사를 받던 김광준 검사와 전화연락을 주고받던 도중 언론대응 방식 등을 조언했다는 사유였는데, 대다수의 검사들 사이에서는 사상 초유의 대검 중수부장 감찰 사유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결국 대검 간부들이 총장을 들이받은 ‘검란’의 이면에는 검찰 개혁에 대한 해법이 달랐던 대검 수뇌부의 충돌이라는 점 외에, 잠재돼 있던 고대 파벌에 대한 불만이 터진 면도 있었습니다.
헤럴드경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13일 취임식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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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사람, ‘경희대 1호 검사장’ 이성윤

최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행보를 보면 ‘대통령의 사람’이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잘 알려졌듯, 이성윤 지검장은 경희대 출신 1호 검사장입니다. 경희대 법대 81학번인 이 지검장은 72학번인 문재인 대통령보다 9년 후배입니다. 이성윤 지검장은 2004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특별감찰반 반장으로 파견 근무를 하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이 지검장이 검사장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 한상대 총장이 물러나게 된 계기중 하나였던 서울동부지검 검사 성추문 사건은 이성윤 지검장의 경력에도 오점을 남겼습니다. 당시 사건 당사자와 성관계를 해 파문을 일으켰던 전 모 검사를 관리하던 부장검사가 이 지검장이었습니다. 당시 석동현 서울동부지검장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지만, 이 지검장은 검찰에 계속 남습니다. 이 사건 이후 서울고검 검사, 광주지검 목포지청장 등 승진과는 거리가 먼 보직을 맡습니다.

검사 이성윤의 경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반전을 맞습니다. 금융위원회 조사기획관 파견 검사였던 이 지검장은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파격적으로 검사장으로 승진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 인사 코드는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참여해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검사.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해 특별수사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한동훈 현 부산고검 차장이 대표적입니다. 이밖에 신자용 서울중앙지검 1차장, 양석조 대검 반부패부 선임연구관, 김창진 법무부 형사기획과장도 특검에 참여한 검사였고, 요직에 발탁됐습니다. 다만 이들은 특검 경력 이전에도 능력을 인정받던 검사들이기도 합니다. 두번째 코드는 참여정부 때 청와대 파견 경력입니다. 2003년 대통령비서실 사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일한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 윤 부원장 후임으로 청와대를 다녀온 조남관 법무부 검찰국장, 그리고 이성윤 지검장이 대표적입니다. 윤대진 부원장은 대검 중수부 검사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등 요직을 거쳤지만, 이 지검장과 조 국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전까지 검사장 발탁 가능성이 크게 거론되지 않던 인사였습니다.

이성윤 지검장의 검사장 승진 이후 경력을 보면 무척 특별합니다. 일선 차장검사 경험이 없었지만, 2017년 검사장급인 대검 형사부장으로 깜짝 발탁된 뒤, 이듬해에는 대검 반부패부장을 맡습니다. 옛 대검 중수부장에 해당되는 자리로, 전국 특별수사를 총괄하는 요직입니다. 2019년에는 검찰 인사와 예산을 관리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역시 차기 총장 후보군으로 분류되는 중요 보직입니다.

추미애 법무장관 취임 이후 조국 전 장관과 청와대 관련 수사를 하던 대검 간부들이 줄줄이 지방으로 밀려났지만, 이 지검장은 국내 최대 규모 일선청인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됩니다. 예전에는 대검 중수부장과 대검 공안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을 ‘빅4’라고 불렀습니다. 검찰총장으로 직행할 수 있는 요직이라는 뜻입니다. 이성윤 지검장은 ‘빅4’중 3개 보직을 연달아 맡았습니다. 수사나 기획 업무에 족적을 남겼던 여러 검사들도 이정도 경력을 거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상대 검찰총장이 서울고검장에서 중앙지검장을 맡았듯, 이성윤 지검장 역시 일선 지검장 경력이 없다는 약점을 이번 인사를 통해 보완했습니다. 이제 이성윤 지검장의 검사 경력앞에 남은 자리는 딱 하나, 검찰총장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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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검찰국장 재직 시절 이성윤 검사장(왼쪽)과 김오수 법무부 차관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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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의 행보

검사로서 한상대 전 검찰총장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는 못합니다. 한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인 의혹을 받았던 한상률 국세청장 사건을 부실하게 수사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당시 한상대 지검장은 한상률 수사를 언급하며 “먼지털기 수사를 하지 말라, 신중한 수사를 하라”고 말했습니다. 한상률 전 청장이 연임을 위한 로비를 했다거나, 대기업으로부터 고문료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제외하고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인사청탁을 하며 그림을 상납한 혐의와 주정업체 3곳에서 자문료를 받은 혐의에 대해서만 불구속 기소를 합니다. 당시 검찰은 해외에 있던 한상률 전 청장이 귀국한 뒤 2주일이나 지난 뒤에서야 계좌추적을 하는 등 부실수사 비판을 받았습니다. 총장 취임 후에도 이상득 전 의원 연루 의혹이 일었던 이국철 SLS 회장 사건에서 이상득 의원은 서면 조사에 그쳤습니다.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에게 ‘한상률 사건’이 다음 자리를 염두에 두고 일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험지였다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게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이 비슷한 의미를 가질 겁니다. 한상대 지검장이 한상률 사건을 두고 “먼지털이 수사를 하지 말아라, 신중하게 하라”는 말을 했듯, 이성윤 지검장은 취임사를 통해 “절제된 검찰 수사”를 강조했습니다. 검찰 수사를 신중히 해야 하고, 먼지털이식 수사를 지양해야 하는 건 당연한 얘깁니다. 하지만 현안과 연결지어질 수 있기 때문에 발언 배경에 대한 해석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성윤 지검장은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하며 김오수 법무부 차관과 함께 조국 전 장관 수사가 시작된 이후 ‘윤석열 총장을 배제한 수사팀을 꾸리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대검에 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법무부에서는 지나가는 얘기 정도였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당시 발언을 전해들은 당사자들의 말은 다릅니다. 복수의 법무부 간부가 똑같이 제안을 했는데, 즉흥적일 수가 없다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 전 장관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도중 김오수 차관과 이성윤 지검장을 따로 불러 면담할 정도로 신뢰를 보냈습니다.

이성윤 지검장이 한상대 총장처럼 특정 사건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친정부적이지 않기 때문에 서울중앙지검장의 운신의 폭에 한계가 있고, 과거와 달리 검찰 조직문화도 바뀌어 일선 지검장이 사건을 뭉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깁니다. 주임검사나 부장검사, 차장검사가 기소 혹은 구속영장 청구 의견을 내는데 무혐의 처분으로 바꾸거나, 불구속 기소로 바꾸기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특히 문무일 총장은 수사팀 의견이 다를 경우 기록으로 남기는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직위로 사건을 무마하기는 더 어려운 구조가 됐습니다. 다만 한 전직 검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처럼 돈을 받았다, 안받았다 딱 떨어지는 사건이면 마음대로 하기 힘들다. 하지만 직권남용이나 선거법 위반은 그렇지 않다. 법리해석상 얼마든지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어느 한쪽이 굽히지 않으면 결국 윗사람 의견으로 갈 수 있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출세가도를 달린 대신, 고위 공직자로서 신망을 잃으며 ‘검란’ 사태를 촉발한 총장으로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성윤 지검장은 한상대 전 총장보다 훨씬 극적으로 요직에 깜짝 발탁된 사례입니다.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 검사의 가장 큰 과제는 사건처리를 사심없이 할 수 있을까, 라는 세간의 의구심을 떨쳐내는 데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신데렐라처럼 요직에 발탁된 만큼 대통령에 대한 마음의 빚이 클 것이고, 실제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하며 ‘총장 배제 수사팀 구성’을 제안했기 때문에 이러한 의구심은 부당하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문재인의 사람’ 이성윤 지검장은 ‘이명박의 사람’ 한상대 전 총장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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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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