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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거리 헤매던 독일에서 온 남자, 그의 애틋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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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서 친부모를 찾고 있는 독일한국입양인협회 대표 김정빈씨

올해 설날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명절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요원하기만 한 '꿈'이 되기도 하는 날이다.

1983년에 태어나 1985년 독일로 입양된 후 독일에서 성장한 김정빈씨는 한국에서 친부모와 함께 설날을 보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김씨는 지난 6년간 갖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직 친부모를 찾지 못했다. 김정빈이라는 이름은 보육원에서 지어준 것이고, 그의 독일 이름은 팀 한슈타인이다.

버려진 곳으로 되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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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당시 김정빈씨 사진 ▲ 1985년 목포항동시장에서 발견된 후 찍은 사진 ⓒ 김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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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정빈씨는 목포에 도착했다. 짠내가 가득했고 바닥은 질척였다. PVC 지붕 아래 걸린 간판이 큼지막했다. 목포 항동시장. 정빈씨가 발견된 장소다. 이곳으로 돌아오기까지 장장 30년이 걸렸다. 석양빛을 받은 초록 지붕이 오렌지색으로 반짝였다. 특별한 것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괜스레 마음이 설렜다.

계통 없이 혼재된 상가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폈다. 충무상회를 찾기 위해서이다. '기아 개인 기록 카드'에 의하면 정빈씨는 1985년 2월 4일 항동시장 충무상회 앞에서 발견됐다. 빨간 옷을 입고 시장에 서 있는 어린 정빈씨의 모습은 언제나 그의 마음 속에 있었지만, 그림을 완성할 충무상회는 현실 속 어디에도 없었다.

항동시장에서 근 30년을 일했다는 어르신 두 분을 어렵사리 만나볼 수 있었지만, 이렇다 할 정보는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30년 넘게 8400㎞ 떨어진 이역만리에 살다가 뚜렷한 정보 하나 없이 친부모를 찾겠다니. 예수가 이룬 기적도 이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을까, 정빈씨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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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독일의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 독일의 한슈타인 가정에 입양된 후 찍은 사진. 엄마와 손을 잡고 있는 쪽이 김정빈씨 ⓒ 김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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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정빈씨는 독일로 입양되기 전 5개월간 머물렀던 목포 공생원(당시 모세스, 현재 공생원으로 추정)을 찾았다. 담당자를 찾아 자료를 요청했다. 친생부모를 찾을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친모의 손편지 같은 것이 발견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옆집 오가듯 들를 수 있는 한국이 아닌 만큼, 가능한 모든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없었다. 공생원에서 정빈씨 입양과 관련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해외 입양 아동의 서류는 보육원 등 위탁기관에서 홀트 재단, 대한사회복지회, 동방사회복지원 등으로 이전되고 궁극적으로 중앙입양원(현 아동권리보장원)이 관리한다. 중앙입양원을 통해 서류를 받은 경우, 보육원에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 원칙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70~80년대 당시 입양아 및 서류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고 무책임했는지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그러니 정빈씨가 홀트 재단을 통해 개인기록을 제공받았음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정빈씨가 홀트 재단으로부터 서류를 받는 과정도 수월하지는 않았다. 메일을 보낸 지 수주가 지나도 재단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처음에는 메일을 받지 못한 건가 싶어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확인 중이니 기다려 달라 했다. 업무 처리가 늦어지는 것은 일손이 부족해서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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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김정빈 씨 ▲ 2015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김정빈 씨. 한라산 등정 후. ⓒ 김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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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의 마지막 날, 정빈씨는 경찰서를 찾았다. 정빈씨를 처음 발견한, 당시 의무경찰이었던 김아무개씨를 찾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김씨의 개인 정보는 본인의 동의 절차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했다. 동의 절차의 진행 상황은,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오리무중이다.

이후 목포에 다녀간 것만도 여섯 차례나 되며, 직접 뿌린 전단은 수천 장에 달한다. 유전자 정보 또한 일찌감치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주는 사이트인 www.23andme.com 에 올려두었다. 2019년에는 정빈씨의 사연이 KBS를 통해 전파를 탔고, 목포시, 신안군을 중심으로 한 신문, 블로그에도 소개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까지도 친부모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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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KBS 방송 촬영중인 김정빈 씨 ▲ 2019년 5월 입양의 날에 방송된 KBS 뉴스에 출연중인 김정빈씨 ⓒ 김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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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과 한국인, 그 거리에 대해 생각하다

김정빈씨는 경제학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현재 독일 대기업인 헤리우스 메디컬의 유럽 지역 영업팀장으로 근무 중이다. 독일한국입양인협회(KAD e.V.)의 대표이며, 독일 입양인 최초의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지난 1월 5일 독일 헤센주에 있는 마르부르크 비전 교회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아래는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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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화통일위원회 자문위원인 김정빈 씨 ▲ 김정빈 씨는 민주평화통일위원회 북유럽위원회에 독일에서는 입양인 최초로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음. ⓒ 김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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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한국입양인협회를 직접 조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만들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현재 독일에는 약 2000명의 한국 입양인이 있습니다. 열심히 자기 일을 하며 가정을 이룬 분들도 계시지만, 정체성 등의 문제로 큰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사는 분들도 많아요. 우리 협회는 이러한 분들께 도움을 주고자 시작되었습니다. 정기적으로 입양인의 모임을 갖고 정보 등을 공유하며 입양인 부모 찾기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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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한국입양인협회 한 뿌리 공감 강연회 ▲ 독일한국입양인협회가 주최한 한뿌리 공감 강연회에 독일 입양인들이 가족찾기 사연을 공유하고 있는 모습. ⓒ 김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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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평화통일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할 만큼, 한인 사회와의 교류도 활발히 하시는 것 같습니다.
"입양인과 한인사회의 교류는 독일한국입양인협회의 주요 활동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도 민주평화통일위원회 주최의 입양인 초청 평화통일공감회, 입양인과 함께 하는 한식 요리 행사, 입양인과 한인이 함께 자리하는 공감 강연회 등 여러 행사가 있었습니다. 올해에도 이러한 교류 행사는 계속할 생각입니다.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입양인 대부분이 한국인과 교류해 본 경험이 전무합니다. 더 많은 입양인이 이러한 행사를 통해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행사에 참여했던 여러 한국인 분도 이전에는 해외입양의 역사나 실태 등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알게 되어 기쁘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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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인 동포 초청 평화통일 공감 강연회 ▲ 민주평화통일위원회가 주최한 평화통일 공감 강연회에 입양인 동포가 함께 참여한 모습. ⓒ 김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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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의 해외입양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인 개개인은 정이 많고 친절합니다. 각각의 사연에 지극한 관심을 보여주시고, 도움을 주시려는 분도 많아요. 이에 반해, 사회적 이슈로서의 입양인 문제에 대한 인식 수준은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공적인 차원의 해외입양인을 위한 지원 등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씀인가요?
"이 질문에는 두 가지 답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한국인의 가족 및 입양인에 대한 사고가 여전히 보수적이라는 점입니다. 현재 가족 찾기에 가장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 방법이 DNA 유전자 검사법입니다. 희망하는 사람은 경찰서나 한인혼혈입양인협회(KAMRA)에서 무료로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입양인이 가족을 찾는 확률은 여전히 낮습니다. 매칭 대상이 되는 한국인의 유전자 검사 참여도가 현저히 낮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가족 외의 다른 가족 구성원이 나타나는 것을 꺼리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한국인이 이 검사에 참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 가족 및 입양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두 번째 문제는 무엇인가요?
"둘째는 한국 정부의 입양 문제에 대한 소극적 태도입니다. 한국 정부는 아직도 입양과 관련된 제반 사항을 주도적으로 하지 않고 민간단체에 위임하고 있습니다. 국제입양아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헤이그협약에 한국이 아직 가입하지 못한 것은 몹시 부끄러운 일입니다. (2013년 한국은 헤이그협약에 서명했으나, 현재까지도 국회에 체류 중이며, 비준을 받지는 못한 상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일어나고 있는 입양 문제도 그러할진대, 70~80년대에 해외로 입양을 보낸 해외입양인에 대한 대책은 얼마나 미흡하겠습니까? 한국은 과거 가장 많은 아이를 입양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 큰돈도 오갔고요. 한국 정부가 입양인 문제에 더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현재 입양인 문제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뿌리의 집,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INKAS)와 같은 사적 단체입니다.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가 해외 입양아 관련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실례지만, 김정빈 대표님이 입양될 때 양부모님께서 얼마의 돈을 지불했는지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당시 저를 입양하는 비용으로 6000마르크를 테레 데스 홈스(Terre des Hommes)를 거쳐 한국 홀트로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한화로 4300만 원 정도이니, 당시 한국 물가를 고려하면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그러한 돈이 오갔기 때문에, 과거에 한국이 '최대 아동수출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정부의 '적극적 참여'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의미하나요?
"양적, 질적 측면에서 모두 해외입양인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책이 실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업이나 정책 과정에 입양인의 실정을 더욱 고려하고 의견을 반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한국 정부와 소통하시면서 어려움이 있으셨나요?
"입양인 관련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의 공적 기관과 접촉할 기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담당자의 태도나 업무처리 방식이 입양인 업무에 전혀 특화 또는 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입양인 문제를 다룬다면, 입양인 당사자와 의사소통을 해야 하고, 그렇다면 이들이 성장해 온 문화적 영향을 고려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거죠.

회의 방식도 사족이 많고,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 높은 사람의 설교만 들을 때도 있습니다. 아예 입양인이 배제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한국인 담당자가 입양인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을 거부하는 통에 회의가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아 아주 불편했습니다.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입양인을 위한 사업을 한다면서 이들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를 볼 때면, 이러한 모든 활동이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죠."

- 입양인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으신지요?
"입양인이 직접 운영하는 기관이 있거나, 이와 관련된 사업의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입양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입양인 본인일 것입니다. 한국인과 입양인의 문화 교류, 한국으로 귀향하는 입양인을 위한 지원, 취업 및 창업의 기회 제공, 입양인의 2세를 위한 맞춤 산업 등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무슨 일을 하든지 입양인의 실정과 사고가 더 잘 고려되어 진행된다면, 그 사업 결과 또한 더 낫지 않을까요."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려운 조건에서도 왜 이렇게 친부모님을 찾고 싶어 하시나요?
"궁금했어요. 저는 10대 때부터 새치가 있었어요. 그것이 친부모님의 영향인지, 그냥 제가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건지 궁금해요. 저는 키도 큰 편입니다. 부모님도 키가 크신 분일까? 아니면, 내가 독일 음식을 많이 먹어 그런 걸까? 나를 낳아준 어머니는 어떻게 생긴 분이실까? 나처럼 말랐을까?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일에도 계속 궁금증이 쌓이기만 해서 답답해지거든요. 이런 기분을 경험해 보지 않으신 분들은 잘 모르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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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정빈 씨 사진 ▲ 헤라우스 메디컬에서 영업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정빈씨의 최근 사진 ⓒ 김정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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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한국에서 살고 싶으신 생각도 있으세요?
"저는 두 살 때부터 독일에서 살아서 독일 정서와 문화에 익숙해요. 그래서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하지만 한국에 소재하는 독일기업이나 다국적기업에 자리가 생긴다면,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그렇다면 제 부모님을 찾는 일도 훨씬 수월할 것 같고요."

- 부모님을 만나게 되면,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어려웠던 상황 이해한다고, 원망하지 않는다고, 미안해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요. 삶을 주셔서,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 친부모님을 만난다면 무슨 일을 해 보고 싶으세요?
"한국의 큰 명절인 설날, 추석을 함께 보내고 싶어요. 같이 음식도 만들고, 나와 비슷하게 생긴 친인척과 함께 둘러앉아 화투도 치면서 말이죠. 너무 식상한가요? (웃음)"

마음이 아릿해지는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늦은 시간, 쌕쌕이며 곤히 자는 아이들 곁에 앉았다. 그 어린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불현듯 하나의 구절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 이사야 49장 15절

이 한 구절이 김정빈씨와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들께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양해숙 기자(haesook.y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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