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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취재일기]"결빙 대책은 왜 없냐" …블랙아이스 사고 유족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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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백경서 내셔널팀 기자


“자주 일어나는 사고잖아요. 나라에서 연말에 땅이나 파헤치지 말고 이런 현상(블랙 아이스) 좀 해결해 주지….”

지난 14일 오후 경북 상주시 성모병원에서 만난 화물차 운전기사 김모(59)씨 부인은 주저 앉아 울부 짖었다. 그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경기 용인에서 상주로 달려왔다. 아직 돌이 지나지 않은 아들이 있다는 서모(35)씨의 부인도 퉁퉁 부은 눈으로 병원을 찾았다. 함께 온 서씨의 아버지는 내내 아들 이름만 불렀다.

경력 20년의 무사고 베테랑 기사였던 김씨와 결혼한 지 3년밖에 안 된 서씨. 이들은 모두 이날 ‘블랙 아이스’ 사고에 휘말려 숨졌다. 이날 새벽 시간대 경북 군위군 상주-영천 고속도로에서는 두 건의 사고가 났다. 오전 4시 43분 상행선 달산1교에서 28대가, 5분 뒤 하행선 산호교에서 22대가 추돌했다. 7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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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전 경북 군위군 소보면 상주-영천고속도로 상행선에서 화물트럭 등 차량 20여대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연쇄 추돌했다. [사진 경북소방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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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블랙 아이스를 주요 사고 원인으로 지목한다. 블랙 아이스(Black ice)는 도로에 내린 비가 얼었을 경우 투명한 얼음 밑에 검은 도로가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사고 1시간 전쯤 군위군 일대에 0.7㎜의 가랑비가 내렸다. 당시 온도는 영하 1.5~0도. 비는 살얼음으로 변해 빙판길 '지뢰'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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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경북 상주-영천 고속도로상·하행선에서 '블랙 아이스(Black Ice)'로 인한 다중 추돌사고가 두 건 발생해 7명이 숨지고 32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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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스가 생긴 결빙 도로는 얼마나 위험할까. 눈이 쌓인 도로보다도 빙판길이 위험하다는 통계가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4~2018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사고 100건당 결빙 도로에서 3.05명이 발생했다. 젖은 도로(2.7명)나 건조 노면(1.9명)보다 사망자 수가 많고, 특히 적설 노면(1.6명)보다는 1.9배 많다. 안전운행에 가장 큰 위협 요소가 빙판길이라는 이야기다. 실제 블랙 아이스 사고는 빈번하게 발생했다. 지난달 15일 경기 양평군 제2영동고속도로에서 빙판길에 차량 21대가 추돌했고 지난 4일 경기 화성시 장안대교에서도 10중 추돌 사고가 발생해 2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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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매연과 먼지가 뒤썩여 검은색으로 보이는 블랙아이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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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급하게 전수조사에 나섰다. 국토부는 이번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현재 지정된 결빙 취약구간을 재조사하고, 추가로 구간을 지정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곽상구 한국교통안전공단 부교수는 "정부나 도로 관리 주체에서 도로 전광판이나 안내 문자를 통해 운전자에게 정보를 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제동거리 확보 등 운전자의 안전운전은 기본이다.

정부는 "결빙 대책이 왜 없었냐"는 유족의 절규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사고 후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7명이나 목숨을 잃은 뒤 나온 뒷북 대책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라도 철저히 조사해 제대로 된 사고 예방책을 만들길 바란다. 그래서 이번 같은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백경서 내셔널팀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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