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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광장] 핼리팩스에서 본 동맹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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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필자는 지난달 말 핼리팩스 국제안보포럼에 다녀왔다. 이 회의는 올해가 11년째로 캐나다 동부의 해안 도시 핼리팩스에서 매년 11월 열린다. 미주지역 최대의 안보포럼인 만큼 미국과 전 세계 동맹국들에서 온 정치인, 군인, 언론인 300여명이 타운홀 미팅식으로 토론하는 한편의 TV 토크쇼 같다.


회의 첫날 갈라 디너의 재즈파티는 동맹들을 위한 페스티벌이었다. 제임스 리시 상원의원, 로버트 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 필립 데이비슨 인도ㆍ태평양사령관 등 미국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주요 지도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포럼이 다루는 주제도 광범하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에서 민주주의까지, 북극과 수단에서 홍콩까지 세계 초강대국다운 지구적 관심들을 모두 담았다.


과장 없이 2박3일간 모든 포럼 세션들의 최종 결론은 중국이었다. 미국이 느끼는 중국 위협은 냉전 시기 옛 소련 그 이상이었다. 소련은 군사적으로만 대응하면 그만이었지만 중국은 일대일로 경제협력으로 아시아 전체에 영향력을 확산하고, 막대한 국방예산과 신기술로 군사력을 현대화하며 심지어 인류운명공동체 같은 비전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문명적 경계심도 강하다. 포럼 회장은 전 세계 안전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미국과 동맹들의 종합적 대중(對中) 전략 수립을 주장했다. 지난 5월 키론 스키너 미 국무부 정책국장은 옛 소련이나 독일과는 달리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비(非)서방 문명의 도전에 직면했는데 이를 문명 간 충돌로 분석했다. 현장에서 느낀 미국의 모습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푹 빠진, 스파르타를 적대시하는 아테네 그 자체였다.


미국은 미국의 관심이 동맹 모두의 관심이기를 원한다. 포럼은 가치보다 자유를 더 강조했는데, 묘한 뉘앙스상의 차이가 있었다. 가치는 공유하는 것이고 자유는 지켜야 하는 것이다. 가치를 공유하면 물질을 넘어서는 배려가 가능하다. 그러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각자 할 수 있는 기여를 해야 한다. 즉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동맹국들은 자국의 지정학적ㆍ지경학적 상황에 따라 동맹에 대한 정의와 입장이 달라진다. 협력의 강도와 참여의 범위도 달라진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지난달 베이징을 방문해 미ㆍ중 관계를 '냉전의 구릉(foothills of a cold war)'이라고 표현했다. 경제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달하는 우리에겐 '험산준령' 산맥 그 자체다.


당장엔 사용 용어부터 고민해야 한다. 핼리팩스에서는 모든 어법이 인도ㆍ태평양이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여전히 아시아ㆍ태평양이다. 우리는 국가적 부와 명성을 아ㆍ태시대에 성취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정체성은 이제 도전에 직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말 한미 정상회담 후 한 기자회견에서 양국 간 평화번영이 구현된 아ㆍ태 지역에서 인ㆍ태 전략 협력이 필요하다는 모범답안을 제시했지만 향후 미국의 인ㆍ태 전략 동참 압력이 거세질 듯하다.


포럼에서 만난 한 독일 언론인은 미국의 동맹을 다루는 방식에는 불만이지만 독일의 안보적 무임승차는 인정했다. 미군 주둔 국가들은 앞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포함한 세계질서 유지비용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동맹국들은 미국이 요구하는 분담금 납부로 일정 시기 안보를 유지할 수는 있어도 한국 같은 도의를 중시하는 동맹은 심리적ㆍ물리적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가 알던 한미 혈맹의 정신과 숭고함은 전쟁기념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의 주류 엘리트들은 여전히 가치 중심 동맹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제 동맹의 질적 변화는 시작됐다. 핼리팩스에서의 마지막 날 밤 큰 비바람과 함께 강추위가 몰려왔다. 동맹의 미래를 보는 듯 우울했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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