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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무비클릭] 나이브스 아웃 | 한 편의 추리소설 읽는 듯…뉴트로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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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미스터리, 스릴러/ 라이언 존슨 감독/ 130분/ 12세 관람가/ 12월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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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21세기에 즐기는 19세기식 레트로 범죄극이다. 거대한 저택과 어마어마한 돈을 가진 부자들. 저택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 모두가 용의자며 한편 모두 다 피해자일 수 있는 상황. 포와로나 셜록 홈스를 연상시키는 전지전능하고 다재다능한 사립 탐정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한 편을 읽는 듯하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유명 범죄 스릴러 작가 할란 트롬비가 자살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이곳에 낯선 이방인 탐정 브누아 블랑이 오면서 이야기는 하나둘씩 속을 드러낸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정통 범죄 서사의 전통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변모를 선사한다. 살인사건, 유산, 가족의 비밀과 같은 요소들은 19세기적 범죄 소설의 전통을 따라가지만 일찌감치 진범이 고백을 한다는 점에서는 새롭다. 재미있는 캐릭터 설정도 눈에 띈다. 할란의 간병인이었던 마르타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면 구토를 한다. 일종의 조건반사인데, 질병인지 습관인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구토는 일종의 진실 탐지기 구실을 한다.

현대 범죄 서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혹시나 마르타가 거짓 구토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한편 저마다 비밀을 숨기고 있는 가족들 속내를 들여다보며 모두가 다 범죄자가 될 만한 이유가 있음을 추측하고 나름의 범인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무릇 추리 서사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을 모두 탐정으로 만드는 데 있다.

최근 범죄 영화는 원인과 범인을 찾아내 합당한 벌을 주는 ‘두뇌 게임’이 아니라 범죄의 잔혹성을 전시하는 ‘호러 무비’처럼 바뀌어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나이브스 아웃’은 범죄 서사에서 지적 추리의 즐거움을 추출해 추리물 그 자체로서 오락성의 순도를 높였다.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대단한 배우들의 연기도 눈을 사로잡는다. 나이가 들어도 품위 있는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자애롭지만 한편으로 자신에게 기대기만 하는 자식들에게 지친 유명 범죄 소설가 할란으로 분해 영화의 중심 갈등을 끌고 간다. 큰 손주 랜섬 역은 ‘캡틴 아메리카’로 유명한 크리스 에반스며, 그를 비롯해 제이미 리 커티스, 돈 존슨, 토니 콜렛 등 명배우들이 등장해 현란한 앙상블 연기를 선보인다.

무엇보다 근육질 007 제임스 본드로 잘 알려진 다니엘 크레이그가 미국 남부식 억양을 쓰며 범죄 공간을 횡보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19세기 전통 스릴러의 복원을 체감하게 한다. 모든 것을 알아내고 처음부터 끝까지 퍼즐을 맞춰내는 그의 모습은 전통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유머러스하고 새롭다.

현대 영화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착한 사람’은 잘 나오지 않는다. 현실도 마찬가지. ‘권선징악은 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다’라고 거듭 가르친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이브스 아웃’은 공명정대한 사필귀정의 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착한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단순한 메시지를 전하면서, 세련되기는 했지만 냉정하고 복잡다단한 이야기에 지친 관객의 어깨를 두드린다. 뉴트로, 새로운 레트로는 바로 이런 인간미를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착한 사람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 그게 바보같이 순진한 기대만은 아니라는 교훈 말이다.

매경이코노미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8호 (2019.12.18~2019.12.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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