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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사설] 혁신과 인화정신 남기고 떠난 ‘참 기업인’ 구자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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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4일 별세했다. 우리 기업사의 한 획을 그은 큰 별이 또 하나 스러진 것이다. 구 명예회장이 지나온 행적 하나하나를 돌이켜 보면 이같은 평가를 받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그는 지난 1970년부터 1995년까지 25년간 그룹을 이끌며 LG를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인공이다. 특히 구 명예회장은 LG의 상징 같은 ‘정도(正道)’ ‘인화(人和)’와 ‘혁신(革新)’ 경영을 정착시켰다. 회장 재임 동안 그룹 외형을 1000배 넘게 키운 원동력이자, 오늘날 LG를 있게 한 키워드다.

“사람이 곧 사업이다. 물건을 만들고 사업을 잘하려면 사람부터 길러 놓아야 한다”는 평소 지론처럼 그는 인재를 존중하고 인화를 강조했다. 인재를 아끼는 것 못지않게 그는 현장에서 기술을 강조하는 혁신가이기도 했다. “기업 활동에 있어서 기술이 최대의 무기. “혁신은 영원한 진행형의 과제이며 내 평생의 숙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재임 기간중에서 연구소를 70개나 설립했고 이같은 노력으로 그룹의 모태인 화학과 전자뿐 아니라 정보기술, 부품 소재, 생활용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LG가 세계에 내로라하는 기업이 되는 틀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구 명예회장은 또 1982년 미국 앨라배마주에 한국기업 최초 해외 생산기지인 컬러TV공장을 세운 것을 비롯, 재임 기간중 50여개 해외법인을 설립하면서 일찍부터 한국기업의 글로벌화를 주도했다.

1982년에는 ‘투명경영’을 강조하며 1970년 락희화학을 민간기업 처음으로 기업을 공개하는 등 주력기업을 모두 공개했다. 그는 또 70세가 되던 1995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 스스로 회장직에서 물러나 맏아들인 구본무 회장에게 물려주는 용단을 내리면서 재계 최초의 ‘무고 승계’를 단행하기도 했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경영에 일체 간섭하지 않고 버섯연구를 비롯한 취미활동과 사회공헌 활동에 전념하면서 ‘무욕(無慾) 경영’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의 한국경제에 남긴 족적은 이밖에도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고 떠났다. 생전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검소하게 장례가 치러졌다. 빈소는 마련됐지만,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소탈했던 생전의 풍모가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혁신을 강조하지만 산업현장에서 혁신이 외면받고 있는 세상이다. 사람이 중요하다면서도 체감과는 거리가 먼 지금, ‘참 기업인’ 구자경 명예회장의 인화와 혁신정신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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