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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설진훈칼럼] 부동산 PF 규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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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지난주 이 코너에 실은 ‘오피스텔 연쇄 입주 지연’ 칼럼에 독자들이 꽤 호응을 보였다. 네이버 댓글만 170여개가 달렸다. 한결같이 “건설사가 서둘러 공사를 재개해 입주하게 해달라”는 하소연이었다.

다행히 반가운 소식도 일부 있었다. 부산 서면 현장에서는 계약자들이 덤터기 썼던 11~12월분 신협 중도금 연체이자를 건설사 측 부담으로 되돌려 받기로 했다. 또 내년분은 3월까지 이자 납부를 유예받기로 해 막바지 공사자금 마련은 한고비를 넘긴 듯하다. 하지만 아직 자금이 꼬인 다른 현장들도 많아 소위 ‘돌려 막기’를 끝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시행사가 새마을금고나 신협에서 연 6%대 고금리 대출을 끌어다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자체 신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파트·오피스텔 등 부동산 개발사업에서 시행사들이 공사비·이주비 등 초기 투자금을 마련하는 데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가 큰 역할을 해왔다. 증권사들이 바로 그 중심에 있었다. 담보가 없어 위험하지만 미래 개발이익을 보고 대출해주거나 채무보증을 선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바로 이 부동산 PF에 메스를 갖다 대겠다고 발표했다. 타깃은 증권사와 신용카드 등 여신 전문회사다. 은행들은 2010~2011년 저축은행 사태 때 동반 손실을 입은 이후 부동산 PF 대출을 스스로 확 줄였다. 여기서 생긴 유동성 공백을 증권사가 메워온 셈이다. 우리나라 부동산 PF 채무보증액 28조원 가운데 93%인 26조원이 증권사 몫이다. 많은 곳은 한 해 영업이익의 40%를 부동산 PF에서 올릴 정도로 증권사 영업에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해왔다. 하지만 이런 시절도 막을 내리게 생겼다. 증권사들은 2021년 7월까지 부동산 PF 대출과 채무보증을 합한 금액이 자기자본의 100%를 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비율이 100%를 초과하는 증권사는 메리츠종금증권(140%) 한 곳뿐이다. 하지만 한국투자증권·NH투자증권·삼성증권 등 다른 대형 증권사도 앞으로 부동산 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가 PF 대출 규제를 내놓은 것은 향후 부동산 경기 악화에 대비해 건전성을 미리 단도리하겠다는 의미가 짙다. 여기에다 간접적으로 부동산에 투입되는 자금 파이프라인을 막아 집값을 잡겠다는 의도도 솔직히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분양가상한제와 비슷하게 또다시 ‘규제의 역설’이 창궐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첫째, 부동산 PF를 억지로 막으면 재개발·재건축 등 민간 아파트 공급이 확 줄어들 수 있다. 3기 신도시 분양까지 아직 3~4년이나 남았는데 민간 공급이 줄면 강남 집값이 오히려 더 난리를 칠지 모른다. 지방과 서울의 집값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건설사들이 대출을 못 받으면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방 개발사업부터 손 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둘째, 성장률이나 일자리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PF에는 노인복지관·임대주택 같은 복지사업은 물론 교량 건설 등 대형 SOC(사회간접자본) 사업도 더러 포함돼 있다. 올해 주택 공급 등 건설투자 위축이 까먹은 성장률만 0.8%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건설업 유관 업종이 전체 취업자 수의 8.3%에 달하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셋째, 소위 풍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 등 금융회사 대출을 막으면 건설사들은 요즘 뜨고 있는 P2P 대출(불특정 다수에게서 투자금을 모아 대출하는 것) 등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실제 1조5000억원 시장으로 성장한 P2P 대출 가운데 65%가 부동산 관련 대출로 추산된다. 개인에게 부실이 전가되면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지 모른다.

시장에 예방주사를 놓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부동산 대출 옥죄기도 연착륙과 속도 조절이 중요하다.

[주간국장 jinh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8호 (2019.12.18~2019.12.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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