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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성제환의 메디치家 리더십] (2) 평민 편에서 귀족에 맞선 조반니 디 비치…“명예를 빼앗긴 자, 적으로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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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medici family) 이름이 피렌체 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하던 1300년대 후반, 피렌체에는 80여개 은행가 가문의 서유럽 은행 지점이 자리 잡았다. 또한 200여개 양모 제조공장에서 질 좋은 양모를 제조해 서유럽 전역에 수출하는,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피렌체는 다른 중세 국가와 달리 농업 중심 사회에서 르네상스 시대 상업 중심 사회로 급격하게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금융업과 양모 제조, 무역업으로 새롭게 부를 축적한 신흥 상인(merchant-banker), 부르주아 계층이 등장한다.

신흥 상인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평민 출신인 소상공인과 합세했다. 이들은 법을 지키지 않고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토착귀족에 맞서 새로운 법과 정치 질서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대토지를 소유하고 기득권을 누려온 토착귀족 계층은 신흥 상인의 요구를 무시한 채 오히려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런 갈등 국면에서 평민은 메디치 가문을 자신을 보호해줄 지도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토착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이었던 메디치 가문이 평민의 정치적 지도자로 부상하게 된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매경이코노미

오르산미켈레교회(Chiesa di Orsanmichele). 1406년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한 토착귀족 가문은 이 교회 외벽 벽감에 자신들이 속한 7개의 대(大)길드(arti maggiori) 수호성인 조각상을 제작했다. 소상공인이 속해 있는 14개 소(小)길드의 수호성인 조각상 건설은 허락하지 않았다(후에 6개의 소길드 수호성인 조각상이 건설돼 현재 13개 길드의 수호성인 조각상이 남아 있다).


▶평민 삶은 안중에도 없는 토착귀족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 정치 무대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1400년대 초반, 피렌체는 소수의 몇몇 토착귀족 가문(Uzzano, Strozzi, Albizzi, Baroncelli 등)이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의 권력은 선거를 통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조로부터 세습돼 정당성이 취약했다. 정치 체제로 보면 일종의 과두정치 형태였다. 한편으로는 돈으로 공직을 사고파는 관행이 성행해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금권(金權)정치 시대(1382~1434년)라고도 부른다.

중산층인 신흥 상인과 연합한 평민 계층 도전에 위기의식을 느낀 토착귀족은 평민을 포용하기는커녕, 반대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대책에 골몰한다. 당연히 정치적 갈등의 골은 깊어간다.

토착귀족은 평민의 정치적 영향력을 축소하는 2가지 법률을 발의했다.

첫째, 과두정부가 쥐고 있던 경제적 허가권을 더 확장시키고 강화하려 했다. 정부가 허가권을 행사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정부에 의한 식량 수입량 할당을 들 수 있다. 당시 대토지를 소유한 토착귀족은 자신의 영지에서 생산한 곡물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평민 출신인 소상인이 수입하는 곡물의 양을 제한해왔다. 만약 곡물 수입상이 수입량을 늘려 가격을 내리거나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야밤을 틈타 곡물 시장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둘째, 소상공인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소상공인 경제연합체인 14개의 소(小)길드(arti minori)를 조직해 미약하나마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시의회 정원의 1/3을 차지할 때도 있었다). 토착귀족들은 이참에 소상공인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정부 조직을 변경하는 법률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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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giovanni di Bicci de' Medici, 1360~1429년). 후에 국부(國父)로 추앙받게 되는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년)의 아버지로서 메디치은행을 설립해 메디치 가문의 경제적 부와 정치 권력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피렌체 외곽 무젤로(Muggello) 지역에서 태어난 농촌 출신으로, 토착귀족은 메디치가 사람들에 대해 경멸의 대상이라는 의미를 지닌 ‘왈라키아 사람(Walacchi)’ 또는 미천한 계층을 뜻하는 ‘푸치니(Puccini)’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피렌체에서 두 번째 부자였을 뿐 아니라 신중하고 자비로운 성품까지 갖춰, 후에 피렌체 최고위 공직(Gonfalonier of Justice, 1421년)에 오른다.

메디치家 리더십 1 효율성으로 공동체 경제 부강시켜

이 시기에 메디치 가문 수장인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Giovanni di Bicci de' Medici, 1360~1429년)’는 평민 출신으로 자비로움과 신중함이라는 훌륭한 덕목을 갖춰 시민들로부터 존경받았다.

조반니 디 비치는 토착귀족이 시행하려는 정부 허가권 확장과 강화에 대해 강하게 반대했다. 당시 시의회에서 행한 연설 기록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허가권 강화는 현명한 사람(상인)에게 손해를 입히게 되고, 결국 공동체 경제에 해를 끼칠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정부 허가권을 강화하면 정부 권력이 비대해져 독재 권력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렌체 사회에 선량하고 현명하며 용기 있는 시민이 등장해야 한다. 이들이 훌륭한 법률과 제도를 만들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 고대 로마공화국에서 이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조반니 디 비치는 경제학적 이론이 확립되기 훨씬 이전, 정부 관리보다 시장의 힘에 의해 자원이 배분되는 상태가 효율적이라는 점을 간파했다. 또한 정부보다 상인이 경제 문제에 대해 현명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메디치家 리더십 2 평민 무시한 정부 조직이 적을 만들어

토착귀족이 평민의 정치 참여를 봉쇄하기 위해 정부 조직을 변경하는 조치에도 반대했다. 당시 정부 조직 변경안을 제출한 권력의 1인자 ‘리날도 델리 알비치(Rinaldo degli Albizzi)’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공직이라는 명예를 가져보지 못한 계층은 자신에게 명예가 주어진다 해도 그 명예를 그리 중히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명예를 누려본 사람에게서 명예를 박탈하면, 다시 그를 얻을 때까지 온갖 수단을 다 써보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조직 변경으로 명예를 잃는 계층에게 가해진 불만이 새로이 명예를 얻은 계층이 얻게 되는 이익보다 크다는 점은 자명하다. 결국 이런 불만으로 조직 변경 제안을 한 자에게 동조하는 자는 적어지고, 피해를 입은 자는 더 많아진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선천적으로 감사하기보다는 복수하기를 더 원하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당신도 이 도시 사건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수행되는지 알고 있다면 그 같은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조반니 디 비치는 권력자인 토착귀족이 평민의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정부 조직을 변경하면, 오히려 적을 만들 수 있다는 논지로 토착귀족을 설득했다.

▶메디치家의 부상

▷정의·자유 내세워 국가 통합

낮게 날며 땅에서 먹잇감을 발견한 새는 게걸스럽게 먹느라고 자신 위에 높게 날며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새들을 보지 못한다. 배는 굶주려도 높게 나는 새들은 ‘무리에 머무를지 떠날지’ 여부를 판단할 줄 안다. 자연이 우리에게 말하는 진리다. 당시 상황도 이랬다. 시민 마음은 중세의 끝자락을 쥐고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는 토착귀족에게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메디치 가문 수장인 조반니 디 비치는 평민이 정부의 부당한 허가권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 경제 시스템을 원했다. 평민을 위하지 않는 정부 조직의 잦은 변경은 오히려 적만 만들 뿐이라는 주장을 펴 토착귀족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불안해하던 토착귀족은 마지막 수단으로 시민 지지를 받는 메디치 가문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실패했다. 마키아벨리 입을 빌리면, 당시 메디치 가문 수장 조반니 디 비치는 “정치란 파벌을 조장하지 않아야 하고 오히려 파벌을 없애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정의와 자유를 위해 도시가 하나로 단결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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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환 석좌교수·JB문화공간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7호 (2019.12.11~2019.12.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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