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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로이 홀로웰·샤라 휴즈·줄리 커티스…뉴욕 점령한 밀레니얼 여성 예술가 3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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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베이컨, 앤디 워홀 등 익히 알려진 ‘블루칩’은 물론, 새롭게 경매에 진입한 ‘뉴 페이스’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웠던 뉴욕의 가을 경매 시즌이 지나갔다. 그 가운데서도 이번 시즌에는 아프리카 출신 화가들과 몇몇 젊은 예술가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특히 로이 홀로웰(Loie Hollowell, 1983년생), 샤라 휴즈(Shara Hughes, 1981년생), 줄리 커티스(Julie Curtiss, 1982년생)로 대변되는 1980년대 출생 여성 화가들 맹활약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이런 폭발적인 인기의 배경은 무엇일까.

이 젊은 3인방 중에서도 나이가 가장 어린 로이는 2016년 10월 첫 번째 뉴욕 개인전 이래 미술계 주목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폭발적이고 자유로운 붓질의 구상화가 유행하던 시절에 그녀의 차갑고 단정한 기하학적 추상화는 지나치게 트렌드와 거리가 멀어서 오히려 흥미를 유발했다. 당시 작품 가격은 크기에 따라 8000달러에서 1만5000달러 선이었다.

지난 11월 14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출품된 그녀의 작품 ‘쌍둥이자리(Gemini)’는 낮은 추정가의 3배에 달하는 금액(약 22만달러, 약 2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이보다 한 달가량 전에 열린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는 뉴욕 경매 출품작보다 사이즈가 큰 작품이 낮은 추정가의 7배가 넘는 금액(약 35만파운드, 약 5억3000만원)에 낙찰돼 그녀의 작품 가운데 경매 최고가를 기록, 이미 화제가 된 바 있었다. 첫 개인전 이래 3년간 이뤄진 로이의 작품 가격 상승은 어림잡아도 약 1200%에 달한다.

매경이코노미

로이 홀로웰의 2014년작 ‘초록색의 여인(Lady in Green)’. 2019년 10월 4일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낮은 추정가의 7배에 달하는 금액(약 35만파운드, 약 5억3000만원)에 낙찰돼 그녀의 작품 가운데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제 겨우 서른여섯인 그녀는 2018년 데이비드 호크니 같은 원로 거장 화가가 소속된 페이스갤러리(Pace Gallery)로 둥지를 옮겨 전시를 가졌다. 이어 올해 9월에도 전시가 있었다. 총 9점으로 각 작품의 가격은 10만달러(약 1억2000만원)였는데 모든 작품이 판매됐다. 이 전시 가격과 비교하면 최근 경매에서의 가격은 약 4배에 달한다.

로이의 작품이 처음부터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첫 개인전 당시만 해도 많은 미술계 전문가와 컬렉터가 그녀의 추상화가 미국 여류 화가의 선구자 격인 조지아 오키프의 꽃을 주제로 한 그림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 향후 가능성에 대해 강력한 의구심을 나타냈었다. 그렇다면 최근 시장에서의 강세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샤라 휴즈의 경우는 2017년 휘트니 비엔날레를 통해 뉴욕 미술계를 사로잡았다. 뉴욕의 휘트니미술관에서 주관·개최하는 이 비엔날레는 일반적으로 베니스, 상파울루와 더불어 세계 3대 비엔날레로 평가된다.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색채로 이뤄진 그녀의 풍경화와 정물화는 단숨에 관객을 매료시켰다. 이 비엔날레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이래 인기가 치솟으면서 작품 가격도 급상승하는 추세다. 로이 홀로웰의 작품과 같은 경매(크리스티 뉴욕, 2019년 11월 14일)에 출품된 그녀의 작품, ‘조지아(Georgia, 2007년작)’는 낮은 추정가의 5배가 넘는 가격(약 34만달러, 약 4억원)에 낙찰됐다. 본인 작품 가운데 경매 최고가다.

샤라는 처음부터 인기가 있었을까. 로이의 작품이 오키프와의 유사성 때문에 초기에 폄하됐다면, 샤라의 경우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회화를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그랬다. 특히 따뜻하면서도 과감한 색채의 사용과 원근법을 무시하는 듯한 흥미로운 시점과 구도, 거침없이 자유로운 붓질 등은 호크니와 연관 짓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요인이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등장 초기에는 ‘호크니의 아류’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면치 못했다. 그렇다면 최근의 가격 상승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성 작가 3인방 중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가는 줄리다. 프랑스에서 베트남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녀는 루이비통 미술상을 계기로 미국 시카고에서 공부했다. 이후 2010년에 미국으로 완전히 이주, 브루클린에 정착해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줄리는 여성 신체를 둘러싼 심리학적 현상을 주제로 다뤘는데, 특히 머리카락을 주요 모티브로 한 독창적인 회화를 줄곧 선보여왔다. 머리카락이 지니는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측면, 역사적 상징성과 병리학적 측면을 부각해 초현실주의 성향을 강조한 그녀의 회화는 문화와 자연, 여성이라는 큰 틀을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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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라 휴즈의 ‘조지아(Georgia, 2007년작)’. 2019년 11월 14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출품된 이 작품은 낮은 추정가의 5배가 넘는 가격(약 34만달러, 약 4억원)에 낙찰돼 그녀 작품 가운데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줄리 커티스의 ‘3인의 춤(Pas de Trois, 2018년작)’. 샤라 휴즈의 경매 최고가가 세워진 동일 경매(2019년 11월 14일 크리스티 뉴욕)에서 낮은 추정가의 4배가 넘는 금액(약 42만달러, 약 5억원)에 낙찰돼 역시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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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던 그녀의 인기 역시 최근 급상승세다. 역시 2019년 11월 14일 크리스티 뉴욕에 출품된 줄리의 회화, ‘3인의 춤(Pas de Trois, 2018년작)’은 낮은 추정가의 4배가 넘는 금액(약 42만달러, 약 5억원)에 낙찰돼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녀 역시 초기에는 일러스트레이션이나 그래픽 디자인을 연상시킨다는 이유 때문에 저평가돼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유화 한 점이 1만달러 미만에 거래됐다.

이처럼 저평가돼 있던 여성 화가 3인방이 최근 미술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거시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자면, 전 세계적으로 유동자금이 넘쳐나는 점을 들 수 있다. 투자처를 잃은 막대한 규모의 현금이 미술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 이는 가격 거품을 조장할 승산이 상당히 있다. 미술 시장이 전례 없는 활황을 보였던 2007년에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이 시기에 최고점을 찍었던 젊은 예술가 중에서 데미안 허스트를 위시한 일부는 당시 가격을 회복하지 못한 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예술성 측면에서 보자면, 이들 작품의 가격 상승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거장 화가들에게서 영감을 받던 초기 모방의 시기를 벗어나 이들이 점차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를 찾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로이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보면서 오키프를 연상할 관객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샤라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호크니 아류에서 이제는 자신만의 색채와 구도 등 독창성을 찾고 있다. 줄리도 탄탄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많은 이의 질문은 하나. 앞으로 얼마나 더 가격이 상승하겠는가.

유동자금이 빠져나가지 않는 이상, 당분간 이들 작품의 가격 상승은 지속되리라 예측된다. 단, 작품이 지속적으로 향상될 경우에 한해서다. 작품 질의 저하, 변화 없는 지루한 반복, 지나친 양산 등이 보이는 순간, 대중은 곧 차갑게 돌아서고 말 것이다.

지금 가격이 버블이 아니라면, 앞으로 얼마나 더 상승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매경이코노미

[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7호 (2019.12.11~2019.12.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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