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2019 의인열전] "불이야∼' 고함에 자동반응"…화마 맞선 의용소방대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부평시장 김창수씨, 몸 사리지 않는 초기대응 대형 화재 번지는 것 막아

매달 한 차례 소화장비 교육…"실제 상황서 이렇게 큰 도움 될 줄 몰라"

[※ 편집자주 = 2019년은 불행하고 안타까운 사건·사고 속에서도 낯 모르는 이웃을 위한 희생과 선행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자신을 던진 의인들의 용기에 우리는 감동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는 갈수록 각박해지는 우리 사회에 정의 실현과 공동체 삶의 의미를 일깨운 큰 울림이기도 했습니다. 연합뉴스는 연말을 맞아 16일부터 25일까지 총 10편에 걸쳐 올해를 빛낸 작은 영웅들의 활약과 소회 등을 들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연합뉴스

부평시장 화재 초기진압에 나섰던 김창수 씨
[부산 중부소방서 의용소방대 김창수 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제가 직접 불을 마주하며 진화작업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그냥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어요."

부산 중구 부평시장 상인 김창수(47) 씨는 올여름 시장 내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가 아직도 생생하다.

여름 휴가철이자 토요일이던 8월 6일 점심때였다.

부산 관광명소 중 한 곳인 부평시장은 여느 주말처럼 관광객과 시민들로 북적였다.

김 씨 역시 미역과 김 등을 튀긴 부각 제품을 팔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시장 통로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불이야! 불이야!"라는 고함이 들렸다.

김 씨는 "'불이 났다'는 고함을 듣는 순간 조건반사적으로 하던 가게 옆 비상 소화 장치함으로 달려가 철문을 세차게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소방재난본부 중부소방서 창선안전센터에 소속된 3년 차 의용소방대원이다.

매달 한 차례씩 비상 소화장치 사용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장비 다루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본래 의용소방대원은 직접적인 화재 진압보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 지원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소방대원을 기다릴만한 여유가 없었다.

김 씨는 "재래시장 화재는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서둘러 불길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급박했던 당시를 회고했다.

연합뉴스

부산 부평시장 내 비상 소화 장치함
[부산 중부소방서 의용소방대 김창수 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평소 훈련받은 대로 소화 장치함 속 지름 40㎜ 호스를 잡아 빼 물이 나오는 부분인 소방관창을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고 화재 현장으로 달렸다. 주변 상인들도 호스가 잘 펴지도록 길을 터줬다.

그가 50m 가량 떨어진 화재 현장에 도착해 보니 불 난 어묵 가게에서는 검은 연기와 함께 시뻘건 화염이 솟구치고 있었다.

실제 화재 현장을 처음으로 마주했지만, 두려움에 주저거리거나 몸을 사릴 여유 등은 없었다. 행여 불길이 주변 점포로 번질 경우 상인과 손님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그는 뒤따르던 상인들을 향해 "물을 틀어주세요"라고 외친 뒤 곧이어 소방관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세찬 물줄기를 화재 현장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신속한 대응 덕에 다행히 불길은 주춤해졌고, 곧바로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가세하면서 10여분 만에 불길이 잡혔다.

김 씨는 "고향인 경남 진주를 떠나 부산에 살면서 막막하던 참에 친목을 쌓고 봉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의용소방대원이 됐다"며 "평소에 배운 게 실제 화재 현장에서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날 화재는 시장 안 2층 상가건물 1층 어묵 가게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불로 40대 여성 1명이 의식을 잃었고, 연기를 흡입한 60대 여성 1명과 화상을 입은 40대 남성 1명도 병원으로 옮겨졌다.

주말 인파로 가득 찬 재래시장 화재지만, 신속한 초동 진화 덕에 불길이 다른 점포로 번지거나 추가적인 인명피해 등은 발생하지 않았다.

재래시장 화재는 초기대응에 소홀해 우왕좌왕하다 보면 순식간에 큰 불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연합뉴스

화재 현장
[부산경찰청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있고 인화물질이 많은 데다, 소방차 접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화재 현장은 소방차 도착 때까지 어떤 조치를 하고, 얼마나 신속하게 인명을 대피시키느냐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이날 불은 김씨를 비롯한 상인들의 적극적인 대응이 대형 화재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냈다"고 말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과 맞섰던 김 씨는 "제가 의용소방대원이긴 하지만, 그런 신분이 아니라도 자신의 눈앞에 시뻘건 불길이 번지는 것을 본다면 누구나 똑같은 행동했을 것"이라고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이어 "다만, 당시 병원으로 옮겨진 1명이 치료를 받다 끝내 숨진 게 너무 가슴 아프다"며 "의용소방대 활동에 더욱더 열심히 동참해 안전한 시장을 만드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부산 중부소방서는 주민들로 구성된 비상 소화 장치함 자율소방단, 의용소방대 등과 함께 매월 한 차례 이상 비상 소화장치를 이용한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훈련에서는 실제 방수실습과 119 신고, 화재진압, 차량 유도, 현장 통제 등 자율 소방단 구성원 개개인의 임무를 부여해 자체적인 대응능력을 기르고 있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재래시장 같은 다중집합장소에서 비상 소화장치를 비롯해 누구나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소화기가 구비된 보관함인 '미니소방서' 보급에 주력하고 있다.

pitbul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