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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간판만 바꿔달고 교육비는 올리고… 사립유치원 ‘꼼수 폐원’ 학부모들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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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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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유치원 파동을 겪은 정부가 ‘유치원 3법’을 포함해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유치원생 학부모들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불만이 많았다. 정부 규제를 피해 폐원한 사립유치원들이 ‘놀이학교’나 ‘영어유치원’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도리어 교육비 부담만 부추긴다는 고발이 쏟아졌다. 실제 이런 ‘꼼수 업종 변경’ 이 유치원 교육 현장에서 비일비재한 현상으로 드러났으며, 비리 유치원 명단에 오르자 업종을 변경한 경우도 확인됐다.

한국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지난해 8월 1일부터 올해 8월까지 1년간 폐원한 서울지역 11개 교육지원청 관내 사립유치원 54곳을 파악한 뒤 현재 업종을 전수조사한 결과 12곳(22%)이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업종으로 갈아탔다. 놀이학교나 영어유치원 등으로 바꾼 곳이 10곳, 민간어린이집으로 변경한 곳이 2곳이다.

특히 업종을 바꾼 12곳 중 5곳은 올해 교육부 감사 결과에서 비리 유치원으로 지목된 곳이었다. 유치원 파동 이후 정부가 부정 보조금 수급을 막기 위한 대책들을 줄줄이 내놓자 정부 규제를 적용받지 않으려고 업종을 바꾼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실제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사립유치원은 규제 강화로 신경 쓸 게 많아져 규제가 없는 어린이집으로 업종을 바꾸려는 곳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유치원이 교육부에 회계 장부를 신고하는 ‘에듀파인’(국가관리회계시스템) 의무화가 이미 시작된 가운데, 사립유치원들이 놀이학교나 민간어린이집 등으로 업종을 바꾸면 에듀파인 적용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서울 사립유치원 폐원 및 업종 변경. 그래픽=김문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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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상당수 유치원이 업종을 변경하면서 수업이 추가로 개설됐다는 등의 이유로 교육비를 올려 받는다는 점이다. 최근 원아 모집 중인 집 근처 놀이학교에 아이를 맡기려 문의했던 직장인 황모(33)씨는 “지난 3월 문을 닫은 사립유치원이 놀이학교로 간판만 바꿔 달았는데 원비가 배 가까이 비싸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는 경험을 털어놨다. 노원구의 한 학부모는 “기존에 없던 영어 수업이 늘었을 뿐인데 원비가 대폭 올라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말했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폐원 안 할 테니 업종 변경에 동의해달라’고 해놓고 (변경 후에는) 정부 감사 안 받고 원비 올리는 식으로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립유치원 교사는 유아교육을 전공해야 하는데, 학원 교사는 그런 자격을 따지지 않아 교육의 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부모들의 불만은 치솟고 있어도 현재로선 사립유치원의 꼼수 폐원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러다 보니 문제를 직접 해결하자는 취지의 협동조합형 유치원도 등장했다. 학부모 스스로 조합원이 돼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다. 운용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에듀파인도 받아들였다. 아이가행복한사회적협동조합 김향희 교육이사는 “학부모들이 다 조합원이라 교사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유치원의 교육방향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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