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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장세정의 시선] 동맹국 대사 모욕하고 중국 가면 작아지는 '반미·친중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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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대사 '참수 경연'은 방관

중국 앞에선 제대로 목소리 못 내

이승만 대통령『독립정신』읽고

국민 자존감 상처 주는 외교 말길

중앙일보

'해리스 대사 참수 경연 대회'가 13일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불과 70m떨어진 곳에서 열렸다. 이날 경찰은 집히를 제지하지 않고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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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참가자들이 해리스 대사의 얼굴사진을 꽂았던 묵과 두부를 주먹으로 으깨고 있다. 권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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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불과 70m 떨어진 서울 광화문역 2번 출구 앞에서 지난 13일 ‘해리스 참수(斬首) 경연 대회'가 열렸다. 지난해 11월 '김정은 서울 방문 환영 백두 칭송 위원회'를 결성한 친북·반미 성향의 국민주권연대와 청년당이 주최한 집회였다.

이들은 미국의 주한 미군 분담금 5배 인상 요구를 규탄하면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를 "내정 간섭 총독"이라고 비난했다. '해리스 코털 뽑기' '해리스 얼굴 공 차기' '해리스 묵사발 만들기' 등 퍼포먼스가 동맹국 외교관을 대놓고 모욕했다.

1964년 체결된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 29조는 '외교관의 신체는 불가침'이라고 규정한다. '접수국은 상당한 경의로써 외교관을 대우해야 하며 그의 신체·자유 또는 품위에 대한 어떤 침해에 대해서도 이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동맹국의 대사가 공공연히 능욕당하는데도 사실상 수수방관했다. 외교부는 "정부는 주한 외교사절의 신변 안전 및 외교 공관 보호 강화를 위해 만전을 기해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 유관기관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말은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경찰은 집회를 지켜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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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미국 대사관 옆에서 '해리스 참수 경연 대회'를 열고 있는 반미 단체 참가자들을 향해 "김정은 참수'를 외친 보수 진영 인사의 차량을 경찰이 가로막고 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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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보수 단체 회원이 차량에 달린 스피커로 "김정은 참수"를 외치자 경찰이 바로 막아섰다. "한·미 동맹 강화"를 외친 60대 남성은 "이 역적들아"라고 외치며 달려들다 역시 경찰에 제지당했다. 한 시민은 "어느 나라 경찰이냐"며 공권력의 편향된 행태에 분노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10월 담장을 넘어 집단으로 해리스 대사의 관저에 침입한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들의 불법 행동을 제대로 막지 못해 사실상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외교관을 물리적으로 압박해서 양보를 받아낼 계산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먹이 아니라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유능한 외교다.

이 정부 들어 미국을 대하는 한국사회 분위기는 이제 노골적 반미로 흐르고 있다. 동맹과 안보가 흔들려도 극단적 반미를 묵인·방관하는 게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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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방중 당시 베이징대학에서 열린 강연에 앞서 린젠화 베이징대 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당시 강연에서 중국을 대국, 한국을 소국으로 지칭해 논란이 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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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년 12월 5일 당시 노영민 주중대사(현 대통령 비서실장)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기 전에 방명록에 '만절필동'이란 글을 남겨 사대 논란이 됐다. [사진=주중대사관]


중국을 대하는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중국 앞에서는 스스로 낮추고 수세적 태도를 취하며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은 그런 측면에서 '외교 참사'로 불릴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연말 방중을 고집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수도를 비운 시점에 베이징에 도착했다.

특히 베이징대 연설은 '외교 재앙' 수준이었다. "법과 덕을 앞세우고 포용하는 것은 중국을 대국답게 하는 기초"라면서 중국을 대국으로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한국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소국이라고 낮췄다. 겸손이 아니라 자기비하란 비난이 쏟아졌다.

그해 시진핑 주석에게 주중대사 신임장을 제정하면서 방명록에 황제를 향한 변함 없는 충성심을 상징해온 '만절필동(萬折必東)'이란 글귀를 남긴 장본인이 지금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다. 사대(事大)주의 논란이 나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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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접견했다. 대통령 면전에서 왕 부장은 ’국제정세는 일방주의, 강권주의의 위협을 받고 있다“며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을 비판해 외교 결례 논란을 일으켰다. 대통령의 팔을 잡는 동작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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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3박 4일 방중 일정 중에 모두 10차례 식사 기회가 있었는데 중국 인사와는 단 두 번 마주했다. 외교는 식탁에서 결판난다는데 '혼밥' 논란을 일으켰으니 방중 외교 성과를 논하기조차 민망했다. 급기야 중국 경호원의 한국 언론인 집단 폭행 사건까지 터졌다.

대통령이 24일 쓰촨성 청두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3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방중한다. 베이징으로 이동해 시 주석과 별도로 한·중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 복원, 북한의 도발을 막을 중국의 역할 요청과 한·중 공조 강화 외에 뭔가 손에 잡히는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해도 좋다. 적어도 중국 앞에서 당당한 외교라도 하자고 주문하고 싶다.

당당한 외교는 특별한 게 아니다. 주권 국가의 정당한 방위 노력에 대한 부당한 '사드' 보복 조치 철회 등 대한민국의 핵심 이익을 당당히 주장하고 상대의 협조를 요청하면 된다.

외교적 수사를 동원하고 덕담을 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의 양보를 얻기 위해 무리하게 저자세 외교를 펼 이유는 없다. 소수민족을 억누르고 홍콩 시위를 탄압하는데도 "민주주의 잘한다"고 칭송하는 것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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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이승만이 1900년 옥중에서 쓴 '독립정신'과 이승만의 생애를 다룬 오인환 전 공보처 장관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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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 일부 인사들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친일파라고 매도해왔다. 청년 이승만이 감옥에서 피를 토하며 쓴 『독립정신』부터 방중 전에 필독하길 권한다. 동맹을 모욕하고 국격을 떨어뜨리고 국민의 자존감에 상처 주는 외교가 절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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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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