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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하루에 두차례 ‘핵 억제력’ 언급한 북한…ICBM 도발 임박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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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북한 ICBM 화성-15형이 2017년 11월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서해위성발사장(동창리 발사장)에서 또다시 ‘중대한 시험’을 진행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4일 국방과학원 대변인 발표를 통해 “12월 13일 오후 10시41분부터 48분까지 서해위성발사장에서는 중대한 시험이 또다시 진행됐다”고 밝혔다. 중대한 시험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으나 ‘또다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볼 때 지난 7일 실시된 엔진시험의 후속 시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한·호주 외교·국방장관 회의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지난 7일 시험에 대해 “동창리 지역에서의 엔진 시험 활동”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이번 시험을 야간에 했고 7분간에 걸쳐 진행됐다고 밝혔다. 엔진 연소시험을 야간에 한 것이나 시험 시간을 공개한 것 모두 이번이 처음이다.

◆신형 엔진 시험일까, 기존 시험 재탕일까

북한이 기존에 사용하는 백두산 엔진은 80t의 추력을 갖고 있으며, 연소시험 당시 200초를 기록했다. 그런데 13일 시험에서는 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420초를 기록했다.

이같은 수치는 백두산 엔진과는 다른 엔진을 시험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엔진 분출 시간이 7분이라면 대출력의 다단연소사이클 액체 엔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로켓 엔진이 추력을 내려면 1초에 200리터의 연료가 연소실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압력으로 연료를 연소실에 넣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터보펌프의 원활한 작동이 필수다. 기존 로켓 엔진은 가스발생기에서 나오는 가스의 압력으로 터보펌프를 가동했다. 안정적이지만 연소실에 들어가야 할 연료를 소모해 연비가 나빠지고 출력도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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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서해위성발사장(동창리 발사장)에서 2017년 3월 백두산 엔진 연소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반면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은 기존 엔진처럼 터보펌프를 돌리는데 쓴 가스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한다. 연료 절감 효과가 있어 더 무거운 위성을 쏘아올리는데 도움이 된다. 러시아가 실용화에 성공했으며, 우리나라도 이같은 방식을 적용한 9t급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엔진 개발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지난 1월 유투브에 ‘다단 연소엔진 검증시제’ 연소시험 동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이 영상에서는 600초 동안 연소가 이뤄졌다.

합금 및 용접 기술이 서방보다 뒤떨어진 북한으로서는 미사일 동체 중량이 무거워 탄두나 위성을 높은 고도에 올리기가 쉽지 않다. 연비가 좋은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에 주목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다만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은 기술적 난이도가 높아 북한이 단기간 내 개발하기는 쉽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백두산 엔진 4기를 결합한 엔진을 다시 시험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복수의 엔진을 결합하는 클러스터링은 여러 차례의 시험을 거쳐야 한다. 북한은 백두산 엔진 4기를 결합한 경험이 없으므로 시험을 통해 연소시간을 늘리면서 기술적 검증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로켓 엔진 개발 과정에서 수십 차례에 걸쳐 시험을 하면서 연소시간을 늘렸다.

북한은 신형 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술적 신뢰도가 일정 수준에 오르기 전까지는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시험 사실과 시간을 발표한 것은 그만큼 신형 엔진의 기술적 신뢰도에 자신을 얻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찰위성의 감시가 어려운 심야에 시험을 한 것은 미국 정찰위성에 자세한 시험 내역이 포착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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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광명성호 로켓이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ICBM 능력 강화’ 강조

조선중앙통신은 이번 시험 사실을 전하면서 “최근 우리가 연이어 이룩하고 있는 국방과학 연구 성과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믿음직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을 더 한층 강화하는데 적용될 것이다”고 밝혔다.

박정천 북한군 총참모장도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최근에 진행한 국방과학연구시험의 귀중한 자료들과 경험 그리고 새로운 기술들은 미국의 핵 위협을 확고하고도 믿음직하게 견제, 제압하기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또 다른 전략무기 개발에 그대로 적용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번 시험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 북한은 위성발사체를 쏘아올리는 방식으로 ICBM 기술을 과시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북한은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이라는 표현을 사용, 최소한의 가면조차 벗어던진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도면상으로만 공개된 화성-13형이다. 2017년 8월 김정은 위원장이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시찰하면서 관련 도면이 드러난 화성-13형은 3단 ICBM이다. 2단인 화성-14형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만큼 더 먼 거리를 날아갈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미사일 중 화성 계열은 액체, 북극성 계열은 고체연료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개된 엔진 중 가장 강한 액체 엔진은 백두산 엔진, 고체엔진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이다.

전례가 유지된다면 화성-13형의 1단은 백두산 엔진을 2개 이상, 2단은 백두산 엔진 1개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고체연료를 쓴다면 북극성-3형 엔진을 2개 이상, 2단은 1개를 쓸 수도 있다.

관건은 3단이다. 북한은 은하-3호와 광명성호 발사를 통해 3단 로켓 관련 기술을 확보했으나 그 수준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1단과 2단에 비해 실제 사용된 사례가 적어 기술 수준은 뒤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화성-13형 개발을 추진하면서 3단 엔진의 필요성을 느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북한이 1단 엔진의 클러스터링과 3단 엔진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북한이 핵무력 증강에 쏟는 노력을 감안하면 개발과 시험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느 쪽이든 화성-14,15형보다 성능이 향상된 ICBM이 등장할 수 있어 북한의 향후 움직임에 관심이 집중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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