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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중립지켜야 할 공정거래위원장이 "과징금 왜 적냐" 간부에 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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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욱(56)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한 국장에게 "과징금이 왜 이렇게 적냐"며 호통을 쳤다. 과징금 규모를 작년과 비교해 국(局)별로 문제 삼아 사실상 기업을 상대로 과징금을 더 걷어오라고 압박한 것이다. 경쟁당국의 수장인 조 위원장이 과징금 규모를 놓고 간부들을 압박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조 위원장은 지난 9월 취임했는데 아직 취임 100일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공정위 간부들에게 과징금 액수를 놓고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A국장은 "기업들의 공정한 시장가치를 지키고 기업들에게 정당한 경쟁을 이끌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공정거래위원장의 일인데 이런 식으로 과징금을 실적처럼 다루는 것이 과연 공정거래위원장이 할 수 있는 말인지 귀를 의심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11월 10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기업결합 심사 발표를 위해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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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위원장이 과징금을 문제삼은 것은 전임 김상조 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의 ‘아바타’라는 논란을 잠재우고 실무 경험이 많은 부위원장 등 공정위 내부 인사들이 조 위원장을 소외시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조 위원장의 전임자인 김 전 위원장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승진해 공정위의 핵심 업무까지 관장하면서 조 위원장이 김 전 위원장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사람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수십년 간 공정위 업무를 두루 경험한 하급자들이 조 위원장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계속 나오고 있다. 김 전 위원장과 공정위 간부들의 중간에 끼여 존재감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한 공정위 관계자가 "그립(조직 장악력을 비유한 말)을 잡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잡고 싶어도 업무를 제대로 알지 못해 못 잡는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 해도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업 불공정행위의 심사관 역할을 하는 국장들에게 ‘과징금을 더 걷어오라’고 압박하는 것은 무리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과징금이 기업의 영업이익이나 매출액 또는 당기순이익처럼 조직원들이 열심히 한다고 늘어나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징금은 단위 물건 당 일정 비율을 이윤으로 남기는 영업이 아니라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공정거래법 위반)를 했을 때에만 법에 정해진 비율에 따라 엄격하게 제한적인 비율로 부과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을 경우는 매출액의 3% 이내로 과징금을 부과해야한다. 또 ▲상호출자금지 위반행위(취득 가액의 10%이내) ▲계열사에 대한 채무보증금지 위반행위(채무보증액의 10%이내) ▲부당한 공동행위(매출액의 10%이내) ▲불공정거래행위(매출액의 2%이내) 등 위반 행위에 따라 과징금 액수가 정해진다. 공정거래위원장의 말 한마디로 많이 걷거나 적게 걷을 수 있는 게 아닌 셈이다.

공정위의 과징금 규모는 연도에 따라 편차가 컸다.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부과된 과징금은 8043억8700만원이었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5889억5900만원으로 2000억원 이상 줄었고 2016년에는 다시 8038억5200만원까지 늘었다. 퀄컴의 시장지배적 남용으로 1조300억원의 과징금 부과가 반영된 2017년에는 과징금 규모가 1조3308억2700만원까지 불었다. 어떤 불공정행위가 드러날지 알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과징금 규모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게 아니라 변화가 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조 위원장이 위원장의 역할에 대해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거래위원장은 기업과 소비자 간 불공정한 거래가 발생했다는 주장에 대해 중립적 위치에서 관련 법을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직위이다.

공정거래법 등에 따르면 불공정행위가 접수되면 실무를 담당하는 국장 이하 실무진은 기업측의 부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심사(조사)에 돌입한다. 담당 국장은 심사관이 돼서 과징금 등을 강하게 부과하려는 증거를 수집하는 역할을 한다. 재판에서의 검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기업측 변호사들은 이에 대한 변론을 하고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한 공정위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전원회의 위원 9명은 양측의 주장을 듣고 실제 불법행위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판사역할을 한다.

과징금을 부과할 지도 전원회의 위원들이 논의해 결정한다. 심사관 등 실무진의 주장만 듣고 무리하게 과징금을 부과하면 추후 소송 등에서 패소해 과징금을 다시 돌려주어야하는데 이렇게 과도한 행정권 남용을 방지하는 게 공정거래위원장의 역할이다. 이 때문에 위원장이 과징금이 적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중립성을 스스로 침해하는 행위가 된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과징금 액수만을 가지고 전년도와 비교해서 업무평가를 하는 것은 공정위 업무의 본질을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윤경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기업들의 잘못된 부분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논의하지 않고 과징금을 얼마나 부과했는지 여부에만 집중하는 것은 법 집행기구로서의 역할이 아닌 것 같다"며 "공정위가 불법 여부를 판단할 권한과 이를 집행할 권한을 가진만큼 과징금 실적주의에 빠지기보다 좀 더 불법성에 대해 명확하게 분석하는 방법과 소비자들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할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공정거래 관련 법률별 위반 행위 처리 추이/ 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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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왔습니다]

본지는 작년 12월 15일자 「[단독] 중립지켜야 할 공정거래위원장이 "과징금 왜 적냐" 간부에 호통」 제목의 기사에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특정 국장에게 과장금 액수가 전년보다 적다며 호통을 치며 압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조성욱)는 "간부에게 과징금이 전년 대비 적다고 지적하거나 이에 관한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세종=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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