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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첫 '무고 승계' 구자경, 창업세대와 동반퇴진 '재계 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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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허 양가 57년 동업관계 정리도 '아름다운 이별'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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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LG그룹 회장 취임 당시 구자경 명예회장
(서울=연합뉴스)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LG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장남으로 LG그룹 2대 회장을 역임했다. 사진은 1970년 1월 LG그룹 회장 취임 당시 구 명예회장. 2019.12.14 [LG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 94세 일기로 14일 별세한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큰 어른'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LG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성과 외에도 재계에서 굵직한 발자취들을 남겨 귀감이 됐다.

특히 고인은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25년간 맡았던 회장직을 스스로 후진에게 물려줘 국내 기업사에 '무고(無故, 아무런 사고나 이유가 없음) 승계' 사례를 남겼다.

아울러 시대의 흐름에 맞춰 57년간 이어진 구씨와 허씨 양가의 동업관계도 '아름다운 이별'로 전혀 잡음 없이 마무리했다.



◇ 창업세대 원로 경영진과 동반퇴진으로 세대교체…재계 첫 무고 승계

구 명예회장은 선친의 부름을 받아 LG에 몸담은 지 45년, 선친의 타계로 회장을 맡은 지 25년 만인 1995년 2월 자진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고인의 퇴진은 국내 재벌가 최초의 무고 승계로 기록되며 재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재계 관행으로는 70세였던 구 명예회장은 은퇴를 거론할 나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퇴진 결정을 내린 것은 경영혁신의 하나로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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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그룹 2대 회장' 구자경 명예회장 별세
(서울=연합뉴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4세. 사진은 1987년 2월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전경련 회장 이취임식을 갖고 있는 구자경 당시 LG 회장. 2019.12.14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 등 21세기를 앞두고 본격적인 무한경쟁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글로벌화를 이끌고 미래 유망사업을 펼치려면 젊고 도전적인 사람들로 세대교체가 이뤄져 이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구 명예회장은 퇴임에 앞서 사장단에게 "그간 혁신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노력을 충실히 해 왔고 그것으로 나의 소임을 다했으며 이제부터는 젊은 세대가 그룹을 맡아서 이끌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고인은 1995년 2월 이·취임식장에서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을 믿고 나의 역할을 마치고자 한다"며 "젊은 경영자들과 10만 임직원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의 자리를 넘기고자 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구 명예회장이 회장에서 물러날 때 창업 때부터 그룹 발전에 공헌해 온 허준구 LG전선 회장을 비롯해 구태회 고문, 구평회 LG상사[001120]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남정유에너지 회장 등 창업세대 원로 회장단도 '동반퇴진'을 단행했다. 이런 모습은 당시 재계에 큰 귀감이 됐다.

LG그룹에 따르면 고인은 은퇴를 결심하면서 '멋진' 은퇴보다는 '잘 된' 은퇴가 되기를 기대했다.

육상 계주에서 앞선 주자가 최선을 다해 달린 후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배턴 터치가 이뤄졌을 때 '잘 됐다'는 표현이 어울리듯 경영 승계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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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이·취임식 당시 구자경 명예회장
[LG그룹 제공]



결국 구 명예회장에게 은퇴란 그가 추진해 온 경영혁신의 하나였고, 본인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혁신 활동인 셈이다.

고인은 훗날 "은퇴에 대한 결심은 이미 1987년 경영혁신을 주도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차기 회장에게 인계한다는 것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내 나름의 밑그림이었다. 그래서 내 필생의 업으로 경영혁신을 생각하게 됐고, 혁신의 대미로서 나의 은퇴를 생각했던 것이다"라고 회고했다.

아울러 구 명예회장은 지인들에게 은퇴와 관련해 "많은 사람이 섣달을 보내며 나름의 감회를 지니게 되지만, 내게는 각별히 다른 의미가 하나 더해진다. 선친의 기일 역시 섣달그믐날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1994년의 섣달 그믐 만큼은 참으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이때는 이미 마음속의 은퇴를 결심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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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별세
(서울=연합뉴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4세. 사진은 2012년 4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구자경 LG 명예회장(앞줄 왼쪽 세 번째)의 미수연(米壽宴·88세)에 LG그룹 오너 일가가 참석한 모습.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앞줄 맨 왼쪽)과 구본준 전 LG그룹 부회장(뒷줄 왼쪽 두 번째부터), 구광모 LG 회장 등이 참석했다. 2019.12.14 [연합뉴스 자료사진]



◇ 3대·57년에 걸친 구·허 양가의 동업관계 '아름다운 이별'로

구 명예회장이 퇴임 후 2000년대 들어 3대에 걸쳐 57년 동안 이어진 구·허 양가의 동업도 아름다운 이별로 마무리했다.

57년간 불협화음 하나 없이 일궈온 구씨와 허씨 양가의 동업관계는 재계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사업매각이나 합작, 국내 대기업 최초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 등 모든 위기 극복과 그룹 차원의 주요 경영 사안은 양가 합의를 통해 잡음 없이 이뤄졌다.

양가는 57년의 관계를 매듭짓는 LG와 GS그룹의 계열분리 과정에서도 합리적이고 순조롭게 진행했다.

구 명예회장 직계가족은 전자와 화학, 통신, 서비스 부문을 맡아 LG그룹으로 남기기로 했고, 허씨 집안은 GS그룹을 설립해 정유와 유통, 홈쇼핑, 건설 분야를 맡기로 했다.

또한, 전선과 산전, 동제련 등을 묶어 구태회, 구평회, 구두회 창업고문이 LS그룹을 공동 경영하기로 했다.

이처럼 순탄하게 계열 분리가 이뤄진 배경에는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는 고(故) 구인회 창업회장의 뜻을 받들어 구 명예회장이 '인화(人和)의 경영'을 철저히 지켰고, 상호 신뢰와 의리를 바탕으로 사업을 이끌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justdus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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