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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소멸시효 깬’ 키코 배상 결정…강제성 없어 희망고문 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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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11년만에 은행 책임 물어

“피해기업 4곳에 255억 지급하라”

다른 기업 자율조정도 열어놨지만

대주주 바뀐 경우 의미 퇴색

공대위 “은행, 진정성 있게 나서라”

은행들 “조정안 보고 면밀 검토”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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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KIKO) 사태’가 발생한 지 11년 만에 금융감독원이 불완전판매 피해 기업 4곳에 대해, 은행 쪽에 평균 23%의 손해배상 비율을 책정하고 모두 255억원을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다른 피해 기업에 대한 자율조정 여지도 열어놔, 금융 당국이 손해배상 시효 소멸을 깨고 피해 기업의 숙원을 해결한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은행 태도에 따라 추가 배상이 ‘희망고문’에 그칠 수 있는데다, 사태 여파로 대주주가 바뀐 기업의 경우 법인에 귀속될 배상금이 뒤늦은 피해구제로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논란도 남아 있다.

13일 금감원은 전날 열린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서 4개 기업(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에 키코(환율에 기초한 파생금융상품)를 판 은행 6곳(신한·우리·KDB산업·KEB하나·DGB대구·씨티은행)에 모두 255억원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배상비율과 배상금액은 각각 15~41%와 7억~141억원 선으로 책정됐다. 그간 법원에선 키코 불완전판매에 대해 평균 26%로 배상 판결을 한 전례가 있다.

키코는 일정 구간에서 환율이 움직이면 수출기업에 유용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큰 환차손을 본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환율 급등으로 많은 기업이 피해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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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은 은행들이 불완전판매 행위에 해당하는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위반한 점을 들어 기본배상비율 30%를 책정했다. 은행이 수출금액을 초과한 규모로 계약을 권유·체결(오버헤지)하거나, 환율이 치솟을 때 무제한 손실이 날 수 있는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점을 사례로 들었다. 금감원은 이를 기초로 구체적 책임 소재에 따라 배상비율을 가감했다. 대법원이 민사재판에서 인정하지 않은 계약의 사기성과 불공정성 부분은 고려하지 않았다.

공은 은행으로 넘어갔다. 은행들은 시효 소멸로 배임이 될 수 있다며 키코 배상에 난색을 표해왔다. 이번 분조위 결정은 강제력은 없지만 당사자인 기업과 은행이 20일 안에 조정을 수락하면 효력이 생긴다. 요청하면 연장도 된다. 이날 키코 공동대책위원회는 “은행들이 진정성 있게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은행들은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 중 조정 수락 의사를 명확히 밝힌 곳은 아직 없다”면서도, 일부 긍정적인 뉘앙스를 보인 곳도 있는 것으로 전했다.

금감원은 은행이 이번 조정에 응하면 과거 분쟁조정이나 소송을 진행하지 않은 키코 피해 기업 중 오버헤지한 기업으로 추산되는 150여 곳에 대해서도 자율조정(합의권고)으로 피해구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합의 금액은 약 2천억원으로 추산된다.

한편, 이번 구제 기업 중 일성하이스코는 부도를 거쳐 대주주가 은행들이 출자한 유암코(연합자산관리)로 이미 바뀐 터여서, 뒤늦은 피해구제가 결과적으로 유암코의 지분투자 회수 등에 우선적으로 쓰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키코 공대위 관계자는 “배상금은 신탁 형태로 관리하는 등 법인 운영에만 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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