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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단독] "고문지시 있었다"···경찰, 화성 8차 사건 은폐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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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국과수·원자력연구원 관계자 조사

국과수 "경찰이 검찰에 자료 주지 말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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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52)씨가 지난달 20일 충북 청주시 운천동 NGO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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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들에게서 범인으로 지목된 윤모(52)씨에게 가혹행위를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1989년 당시 수사를 맡은 경찰관 3명은 “가혹행위가 있었지만 모두 지금은 사망한 경찰관이 지시해서 벌어진 일이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관계자를 소환하는 등 수사 속도를 높이고 있다.



"숨진 최 형사가 쪼그려뛰기 시키는 것 봐"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전준철)은 최근 장모 형사 등 30년 전 윤씨를 수사한 경찰관 3명을 불러 조사했다. 장 형사는 윤씨에게서 자백을 받아낸 인물이다. 이들은 검찰 조사에서 “지금은 사망한 최모 형사가 윤씨를 2~3시간 정도 데리고 나가더니 윤씨가 돌아와서 범행을 자백했다”며 “최 형사가 윤씨에게 쪼그려뛰기를 시키는 건 목격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또 검찰은 이들로부터 “최 형사가 나중에 자신이 때리고 고문까지 했다고 말했다”는 진술까지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이 된 최 형사가 8차 화성사건 수사 당시 가혹행위를 했고 허위자백을 받아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이다.

범인 지목 당시 22살이었던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그는 2009년 가석방됐다. 윤씨는 재판에서 “경찰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씨는 최근 재심을 청구해 8차 화성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검찰, 국과수·원연 관계자 조사



수원지검 수사팀은 13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한국원자력연구원(원연) 관계자를 불러 30년 전 작성된 감정 결과서에 대해 조사했다. 검찰은 최근 체모 분석 결과 등이 조작된 정황을 파악하고 경찰과 국과수가 증거를 조작했는지 본격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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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동 수원지검 2차장 검사가 11일 수원지검 브리핑실에서 열린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수사와 관련한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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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당시 경찰은 변사체에서 나온 체모와 용의자의 체모를 비교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다. 검찰은 최근 국과수가 2차로 감정한 ‘변사체 발견 체모’의 성분 분석 결과가 1차 감정 때와는 다르게 나온 사실을 포착했다. 또 애초 1차 분석 의뢰 때 윤씨의 체모는 분석 대상 자체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황도 발견했다. 검찰은 국과수 관계자를 불러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조사했다.



"경찰, 검찰 등에 자료 제공 말라고 해"



이 과정에서 검찰은 국과수와 원연 관계자들로부터 “경찰 관계자가 검찰이나 다른 곳에서 자료를 요구해도 절대 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이 지난 10월 국과수 등으로부터 1989년 당시 자료를 받아가면서 검찰 등 다른 기관에 해당 자료를 제공하지 말아 달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검찰은 경찰이 2달여 전에 국과수의 감정 결과서 등 자료를 모두 확보한 만큼 증거 조작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날 국과수와 원연 관계자들에게 경찰로부터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들었는지 등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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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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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 의혹 수사로 확대되나



한편 경찰은 수원지검의 계속된 자료 요구에 “연말까지는 자료를 줄 수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검찰은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국회 논의 중인 상황 때문에 경찰이 사건 진상을 밝히는 것을 지연시키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조만간 8차 화성사건을 재조사하는 경찰 수사팀을 불러 왜 검찰에 자료를 주지 말아 달라고 했는지, 사건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다. 30년 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검찰의 수사가 지금 경찰의 사건 은폐 의혹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김기정·정진호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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