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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증거 못잡은 '1.33초 성추행'… 일관된 진술이 증거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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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곰탕집 성추행' 남성 유죄 확정… 징역 6개월에 집유 2년

"피해자 진술 일관되고, 거짓말할 이유 없다면 신빙성 인정해야"

性범죄선 결백 입증 못하면 주로 유죄, 억울한 피고인 나올수도

조선일보

지난 2017년 한 곰탕집에서 최모씨(왼쪽 원 안 오른쪽)가 피해자(가운데)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한 방범 카메라 장면. 해당 영상을 포함해 이 사건에 2개의 방범 카메라 영상이 존재하지만 어느 것에서도 직접적인 범행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방범카메라 화면


직접적 증거가 없는 성추행 고소로 논란이 일었던 이른바 '곰탕집 사건'의 최종 결론이 내려졌다. 대법원은 12일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모(39)씨에게 2심과 같이 유죄 판결했다. 사건 발생 2년 만이다.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고 믿을 만하면 유죄 증거가 된다고 본 것이다.

2017년 11월 대전의 한 곰탕집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최씨가 피해자의 엉덩이를 만졌는지, 스쳤는지가 쟁점이었다. 두 개의 방범카메라 화면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성이 화장실에서 나온 뒤 자리로 돌아가려 하고 남성이 여성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모습이 1.33초가량 찍혔다. 그러나 엉덩이를 만지는 장면은 없었다. 다른 화면에서도 남성의 몸에 가려 신체 접촉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최씨는 "피해자와 몸이 닿기는 했지만 성추행을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조선일보

하지만 1심은 작년 9월 검찰 구형을 훨씬 넘는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최씨를 법정 구속했다. 최씨 아내가 억울하다며 청와대 청원을 올렸고 33만명이 동의하기도 했다. 올해 4월 2심도 강제추행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초범임을 감안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했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이날 이런 2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피해자 진술의 주요 부분이 일관되며, 특별히 피고인에게 거짓으로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가 없다면 신빙성을 배척하면 안 된다"는 1·2심 판단이 맞는다고 본 것이다. 진술이 일관되고 믿을 만하면 물증이 없어도 유죄 판결이 가능하다는 걸 대법원이 다시 확인한 셈이다.

형사 사건 증거는 사람의 말인 인적(人的) 증거와 범행 도구 등 물적 증거로 나뉜다. 이번 사건의 물증인 방범카메라 화면엔 추행 장면이 없었다. 남은 증거는 피해자 진술이다. 성범죄 사건은 이렇게 피해자 진술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주요 내용이 일관적이고, 특별히 거짓말로 보이지 않는다면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줄곧 "화장실에 다녀와 돌아가는 길에 최씨가 엉덩이를 밑에서 위로 움켜잡았고 바로 항의했다"고 진술했다. 또 피해자가 최씨와 모르는 사이고, 따로 합의금을 요구하지도 않았으므로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성범죄에서 피고인이 자기 결백을 입증하지 못하면 유죄 판결을 받는 경향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형사소송법은 모든 피고인을 무죄로 가정한다. 피고인이 유죄라는 걸, 그가 결백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지 않을 수준까지 입증하는 건 검사의 몫이다. 한 변호사는 "물적 증거가 없는 이 사건의 경우 최씨가 성추행을 했다는 검찰의 공소 사실이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최씨 지인인 김모씨가 "최씨가 엉덩이를 만진 사실이 없다"고 증언하기도 했지만 법원은 "최씨 지인이어서 믿을 수 없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범죄의 경우 형사소송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완화될 수 있고, 입증 책임도 상당 부분 검사가 아닌 피고인에게 있음을 법원이 다시 확인한 것이다.

이런 경향은 지난해 4월 대법원이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을 언급하면서 강화됐다. 피해자 진술 신빙성 판단에서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의 법적 용어다. 세부적 부분이 사실과 다르거나 사건 발생 후 가해자와 가깝게 지내는 등의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함부로 배척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무죄 판결이 2심에서 뒤집힌 것도 그런 이유다. 이번 판결도 성인지 감수성이 언급되진 않았지만 취지는 같다.

이로 인해 억울한 피고인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의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아 피해자가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기만 하면 유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부장판사는 "성인지 감수성을 '여성 말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식으로 편협하게 해석하면 안 된다"고 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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