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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사육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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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인간과 비슷한 평화로운 본능 보여주는 보노보, 두 종에는 ‘가축 유전자’가 심긴 것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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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있을까? 바로 보노보다. 사랑과 평화의 아이콘,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동물. 침팬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사회구조와 성격이 다른 동물. 1960~70년대 세계를 강타했던 히피 문화가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다면, 우리는 보노보 같은 동물이 되지 않을까?

전쟁 대신 섹스



침팬지와 보노보는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동물이다. 인간과 침팬지는 약 550만 년 전에 갈라졌고, 다른 길을 간 침팬지는 약 250만 년 전 보노보와 갈라졌다고 한다. 인간은 두 종과 유전자의 98%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근연종이다.

침팬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두 발로 걷는 정글의 동물’이라는 사실 말고는 어두운 심연에 있었다. 맨 처음 제인 구달이 침팬지 무리에 들어가 함께 살면서 우리에게 알려준 사실은 이 동물이 놀랍도록 인간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인간처럼 도구를 쓰고, 죽은 가족을 애도하며, 강력한 가족애로 결합해 움직였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소식은 우리를 불편하게 했다. 침팬지는 집단 사냥해서 원숭이를 잡아먹기도 했으며, 심지어 무리 간 전쟁을 벌이고 동족을 살해하기도 했다. 우리는 침팬지에게서 인간의 본능을 보았다.

이러한 ‘사냥꾼 유인원’(Killer-ape) 가설은 경제공황과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른 뒤 약육강식의 비관주의가 짙게 밴 관념이었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발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첫 장면이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렬한 오프닝이라는 찬사를 받는 이 장면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넓적다리뼈로 동족을 때려죽인 뒤 넓적다리뼈를 하늘로 던진다. 그다음 장면이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선 모습이다. 폭력과 경쟁 그리고 발전의 인류 역사를 한 장면으로 요약한 것이다.

그런데 혜성처럼 보노보가 등장했다. 원래는 침팬지와 한 종으로 생각했던 보노보에 대한 관찰과 보고가 잇따르면서, 이 동물이 침팬지와 전혀 다른 형태와 사회를 갖고 있는 게 밝혀졌다. 보노보는 온순했고 관계지향적이었으며 암컷 중심 평등주의가 사회를 지배했다. 서로 만난 두 개체는 싸울 듯하다 섹스를 했다. 암컷과 수컷, 수컷과 수컷, 암컷과 어린 개체 등 다양한 파트너 조합으로 섹스를 했다. 이런 성적 행위는 사회적 관계에 핵심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스스로 길들여진 보노보



왜 보노보는 침팬지와 다른 길을 걸었을까? 과학자들의 추측은 이렇다. 서아프리카 콩고강의 지형이 바뀌면서, 침팬지 집단(정확히는 보노보와 침팬지의 공통 조상) 일부가 강 남쪽에 격리됐다. 먹이가 풍부한 에덴동산 같은 곳이었다. 생존을 위한 폭력과 쟁투, 종간 경쟁이 필요 없었다. 그래서 집단 내에서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기술과 행동이 진화하기 시작했다.

저명한 진화과학자 브라이언 헤어와 리처드 랭엄은 이때 보노보의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스스로 사육해 평화와 안정을 획득한 동물. 그런데 왜 가축일까? 이전 연재글(제1233호)에도 썼던 러시아의 은여우 실험을 떠올려보자. 은여우 사육자들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구는 은여우만 골라 교배했다. 그러자 세대를 거치면서 여우들의 두개골과 두뇌의 크기가 작아지고, 주둥이가 짧아지고, 얼굴이 납작해지고, 얼룩이 나타나는 등 털 색깔이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성격이 양순해졌고 장난기 많은 어린 짐승처럼 행동했다. 이것은 유전자로 나타나는 가축의 공통된 특성이다. 누군가에게 삶을 지배받게 되면, 고로 길들면, 이런 생물학·행동학적 특성이 나타난다.

은여우와 다른 가축은 인간에 의해 가축이 됐지만, 보노보는 ‘스스로 가축이 되었다’고 브라이언 헤어는 주장한다. 에덴동산의 선택압력이 보노보의 행동학적 특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가축이라는 말이 어색하면, 스스로 길들였다고 해두자. 이를 ‘자기가축화 이론’ 혹은 ‘자기길들임 이론’이라고 한다.

최근 이 가설은 인간도 ‘자기가축화한 종’이라는 데까지 나아갔다. 우리가 사육당했다고? 진정? 수렵·채집 부족이던 인간이 농경을 시작하면서 인간사회의 선택압력이 바뀌기 시작했다. 인류에게 풍부해진 잉여생산물은 보노보가 에덴동산에 들어간 것과 비슷했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 행사는 압제적인 방식보다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독재적인 개체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권력은 관용을 보여 존경받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힘이 센 사람보다 사회적 처신을 잘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배우자는 그들을 선호할 것이고, 인간에게는 그런 형질이 강화된다.

칸지가 인간과 비슷한 이유



남북극까지 진출해 지구에 77억 명이 번성한 인류와 달리, 보노보는 콩고분지의 좁은 구역에서 3만~5만 마리가 산다. 지금도 내전과 밀렵으로 평화롭지 않은 곳이다. 가장 유명한 보노보는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숲에 있는 영장류연구센터에 사는 칸지다. 1980년 태어났을 때부터 인간 문화를 접한 칸지는 영어를 알아듣고, 렉시그램(그림문자)으로 소통하고, 불을 피우는 걸 배웠고,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 쓸 줄 안다. 1960년대 이후 비교심리학 실험을 위해 유인원 20여 마리가 인간 문화에서 길러졌다. 보노보가 이미 ‘가축’이 되어서였을까. 이 중 가장 인간과 비슷한 기능을 보인 유인원이 보노보 칸지였다.

침팬지, 보노보 그리고 인간은 모두 동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만이 문명을 일구었고, 그것이 나머지 동물과 차이점이라고 자부했다. 자연에서 멀리 떠나온 게 잘못됐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은 자신을 동물과 구별하는 자부심의 원천이기도 했다. 하지만 숲에 혼자 덩그러니 놓였을 때,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야생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침팬지의 야성이 우리를 부르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 우리가 사람들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는 보노보의 관계지향성이 우리를 토닥이기 때문이다.

남종영 <한겨레>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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