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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 '반짝', 생각도 '반짝'… 콩고 왕자가 한글에 빠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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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12] 이주민 가족이 말하는 우리말

- 조나단 토나

11년 前 콩고 떠나 한국에 정착

한글은 기본, 한국사·사자성어… 유창한 입담으로 방송가서 화제

의태어 다양한 한국어에 매료… '시치미' 등 어원 배우는 재미도

'잘생겼다'는 한국말, 참 좋아요

"그냥 저를 한국에 '퐁당' 빠뜨렸어요."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비법'을 묻자 커다란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렀다. 여덟 살이던 2008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조나단 토나(19)는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방송가 유명 인사가 됐다. MBN '훈맨정음'에서는 자신을 '차남(次男)'이라고 소개하더니, KBS '해피투게더4'에선 진행자 조세호에게 "쓰는 단어들이 중학생 수준"이라고 지적해 폭소를 자아냈다. 할아버지가 키토나 왕국의 왕이었다는 이유로 '콩고 왕자' 소리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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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토나는 "한글은 그 뜻 하나하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말"이라며 "특히 '잘생겼다'는 말이 사람을 참 기분 좋게 한다"고 말했다. 그의 취미는 '조선왕조실록' 등 한국의 역사서를 읽는 것이다.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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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논현동에서 만난 조나단은 "나더러 천재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저 한국에 내던져졌을 뿐"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따라 입국한 지 석 달 만에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야 적응도 빨리 할 수 있다'는 아버지 뜻대로 일반 학교에 다녔다. 숫자도 읽을 줄 모르는 그에게 학교생활은 고역이었다. 아이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려댔다. "바보가 된 느낌이었죠. 많이 힘들었어요."

한국어 실력을 키워준 건 또래 친구들과 '뽀로로'였다. 친구들이 어딜 가든 따라다녔다. 축구도 하고 서툰 한국어로 말도 걸었다. 4학년 때쯤 "같이 문구점 갈래?"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됐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뽀로로'를 보며 말을 배웠다.

'다다익선' '금상첨화' '오리무중' 같은 사자성어까지 섭렵한 건 중학교 국어 선생님 덕분이다. "사자성어 모르면 인문계 고등학교 못 간다고 하셨어요." 화장실에 앉아서도 사자성어가 가나다순으로 적힌 표를 외웠다. "내가 열심히 하니까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줬죠. '나를 이 나라에 빠트려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프랑스어와 콩고의 밍갈라어를 쓸 줄 아는 조나단은 한국어의 매력으로 '다채로움'을 꼽았다. 특히 다양한 의태어를 여러 가지 상황에서 쓰는 점이 신기하다고 했다. "아름답게 빛나는 별을 표현할 때 쓰는 '반짝'이 '머릿속에 갑자기 생각이 떠오를 때'를 묘사하기도 하잖아요? 다른 언어에선 보기 어려운 재미죠."

한국어의 다양한 어원(語源)을 배우는 즐거움도 크단다. "'시치미 떼다'는 말이 얼마나 재밌는지 아세요? 고대부터 매사냥을 많이 했는데, 자기 매 꼬리에 달아놓은 이름표가 시치미였대요." 한자도 좋아한다고 했다. "유럽을 이해하려면 라틴어를 배워야 하듯, 한국어를 이해하려면 한자를 알아야 해요."

지난달 수능 시험을 치른 조나단의 또 다른 관심사는 한국 근현대사다. "오는 길에 기차에서 읽었다"며 한국 현대사 책을 주섬주섬 꺼냈다. 조나단은 "한국 역사는 콩고민주공화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했다. 근현대 정치·사회적 격동기에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얘기하며 '이게 콩고의 최근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매우 짧은 시간에 이뤄진 나라라서 그 역사에 더 눈길이 간다"고 했다. 방송에 나와서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막연하게 주장만 해선 안 되고 역사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조나단의 꿈은 "받은 만큼 베푸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말도 '안갚음'이라는 순우리말. '자식이 커서 부모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뜻이다. "어린 나이에 한국에 와서 살 수 있었던 건 특권이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제가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죠." 장래 희망은 민간 외교관이 되는 것이다. "올바르게 자라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답하며 살 거예요. 한국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콩고와 한국 두 나라 모두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구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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