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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100년 잡아도 끄떡없어”…日 ‘고래의 날’에 한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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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 베이컨' 1팩(100g)에 1,000엔!!"

매월 9일은 일본 '고래의 날'이었습니다. 일본 수산회와 포경협회 등 25개 단체가 1993년 교토(京都)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를 기념해 만들었습니다. 고래(鯨)의 일본어 발음인 '쿠지라'(クジラ) 첫 글자가 숫자 '9'(쿠·ク)와 비슷하다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고래의 날'이니 멸종 위기에 처한 고래의 처참한 현실을 알리는 행사가 열렸을까요? 그 반대입니다. 이달 9일, 고래잡이 어부들이 밀집한 홋카이도(北海道) 하코다테(函館) 등에선 대대적인 고래고기 할인 판매 행사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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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 일본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나카이 도시히로 간사장 등이 상업 포경으로 잡아 올린 고래고기를 시식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교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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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만의 재개…與 의원 수혜

두 달 전 '고래의 날'(10월 9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엔 일본 집권 자민당이 도쿄(東京) 나카타 초(永田町) 당 본부에서 '고래고기 시식회'를 열었습니다. 자민당 간부들과 포경 사업자 230여 명은 센다이(仙台)에서 갓 잡아 올린 브라이드고래 회 요리에 입맛을 다셨습니다.

참석한 에토 다쿠(江藤拓) 농림수산상은 " 국민이 고래고기를 많이 먹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자민당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도 "포경에 생애를 건 어민들의 생활을 당이 확실히 지탱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니카이 간사장은 상업포경의 거점인 와카야마(和歌山) 현을 지역구로 두고 있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올해 일본 고래잡이 어민들에겐 희소식(?)의 연속이었습니다. 일본은 지난 6월 말, 상업 포경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주도하는 국제포경위원회(IWC)를 탈퇴했습니다. 그리곤 바로 이튿날부터 고래잡이를 재개했습니다. 31년 만입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지역구인 일본 야마구치(山口) 현 시모노세키(下關) 등 상업포경 거점에서 포경선들이 일제 출항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이를 두고 "상업 포경 재개의 최대 수혜자는 어민이 아닌 여당(자민당) 핵심 의원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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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일본 중의원에서 통과된 법안 내용의 일부. “학교 급식 등에 고래고기 이용을 촉진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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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고래 맛을!"

당정의 의기투합 덕분일까요. 상업 포경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조치도 발 빨랐습니다. 지난 5일, 일본 국회(중의원)는 ' 고래류의 지속적인 이용 확보에 관한 법률'이란 이름의 개정안을 처리했습니다. 고래잡이 어민들이 정부 보조금 없이도 자립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예컨대 일본 정부가 고래 포획과 해체 기술 보급을 적극 지원하고, 심지어 환경단체들이 포경을 방해할 때 일본 수산청 단속선을 투입해 조업을 돕겠다고도 했습니다. 만장일치로 가결된 법안은 연내 시행됩니다.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학교 급식 등에 고래 고기 이용을 촉진한다"는 대목입니다. 현재 일본의 고래고기 소비량은 연 3천 톤 수준(2017년). 정점이었던 1960년대에 견줘 1.3%에 불과합니다. 31년 공백을 뛰어넘으려면 더 많은 '고래고기 애호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들 입맛부터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법안 통과 소식에 한 어민은 일본 NHK 방송 인터뷰에서 "학교 급식을 통해 고래고기를 즐기는 문화가 확산해 포경 산업이 활기를 띠었으면 좋겠다"며 정부 결정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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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일본 와카야마 현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고래고기로 차려진 급식을 먹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교도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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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잡아도 끄떡없다"…과연?

일본 수산청은 연간 상업 포경 쿼터를 지난해 한 해 동안 조사 포경 방식으로 잡은 마릿수(637)보다 40% 적은 383마리로 정한 상태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밍크고래 171마리, 브라이드고래 187마리, 보리고래 25마리입니다.

요시카와 다카모리(吉川貴盛) 농림수산상은 " 100년 동안 계속 잡아도 개체 수가 줄지 않는 수준으로 쿼터를 정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일본이 포경 대상으로 지목한 3종의 고래 중 가장 큰 보리고래(몸길이 약 20m)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위기종'(endangered·개체 수 5만 마리 추산)입니다. '멸종 위기' 고래조차 사냥감으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아이들까지 가세하게 될 고래고기 소비, 일본의 약속은 지켜질까요? 고래고기가 학교 급식 재료로 쓰이던 1962년, 소비량은 최대 연 23.3만 톤에 달했습니다. 소, 돼지, 닭고기 소비량을 앞지른 수치입니다. 밍크고래 최대 몸무게를 약 14톤으로 계산했을 때 무려 1만 6,428마리를 잡아야 채울 수 있는 분량입니다.

당장 일본 문부과학성(한국의 교육부)도 내년 초, '전국 학교 급식 주간'(1월 24일~30일)에 대대적인 고래고기 급식회를 준비 중입니다. " 학교 급식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학생, 교직원, 보호자, 지역 주민의 이해와 관심을 구하자"는 목적의 급식 주간을 고래고기 홍보에 십분 활용할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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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사히신문 하츠미 쇼 기자가 승선한 노르웨이 포경선. [사진 출처 : 아사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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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기자는 왜 노르웨이까지 갔을까?

"'포경선을 밀착 취재하겠다'는 기획안을 냈는데 섭외가 안 된다. 모두가 승선을 거절한다. '해외 언론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에선 나를 태워줄 포경선을 찾을 수 없어서 결국 고래 고기를 일본에 수출하는 노르웨이 포경선을 탔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하츠미 쇼(初見翔) 기자가 자사 홈페이지에 연재 중인 '고래와 나'란 기사의 일부입니다. 그는 포경 재개에 대한 국제사회 비판의 배경과 그 정당성을 취재해 보려 한다고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포경이 오랜 세월, 자신들의 삶과 문화를 발달시켜 왔다고 항변합니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에 패한 이후 미 군정은 고래고기를 저렴한 단백질 섭취 수단으로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를 기억하는 노년층은 고래고기에 짙은 향수와 자존심을 느낍니다. 일본인들에게 고래는 '민족주의적 요소'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기자의 취재는 시작부터 벽에 부닥쳤습니다. '31년 만의 포경 재개'는 큰 뉴스입니다. KBS 일본지국 역시 포경선 취재를 시도했다가 현지 어업조합으로부터 퇴짜를 맞은 일이 일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난 6개월 동안 포경선 입항, 고래 하역 장면 외에 지금까지 작살 포획이나 고래 해체 작업 등은 일본 방송에 등장한 적이 없습니다. "고래 개체 수가 겨우 회복되어 가는 마당에 일본이 자국 이익만을 위해 국제사회의 30년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을 일본 스스로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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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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