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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후] “혼자가 아니다”…‘냉정한 법’ 보다 ‘따뜻한 사랑’ 선고한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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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더 좋은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한다. 아직 오지 않은 날을 누릴 생각을 해달라”

이달 5일 울산지방법원 형사11부(박주영 부장판사) 재판장.

재판장인 박주영 부장판사가 피고 A(29) 씨와 B(35) 씨에게 양형을 선고한 후 따로 준비해온 종이를 꺼내 ‘피고인들에게 전하는 간곡한 당부 말씀’이라는 글을 읽어 내려가자 두 사람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일반적으로 재판장에서는 판사가 판결문을 읽고 양형을 선고한 후 퇴장하지만, 이날 재판은 피고인뿐만 아니라 재판 참관인들에게도 감동을 줬다. 이들의 사연은 이렇다.

울산지법에 따르면,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어렵게 성장한 A 씨는 유일한 정신적 버팀목이었던 어머니가 지병으로 사망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여기에 A 씨는 직장생활과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과도 거리상 자주 만나지 못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A 씨는 결국 스스로 삶을 등지기로 결심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B 씨와 C 씨를 알게 됐다.

이들 세 사람은 지난 8월 10일 울산의 한 여관방에 모였다. A 씨는 자살에 필요한 도구들을 준비하기 위해 휴대전화까지 팔았다. 이들은 이튿날 세상을 등지려 했지만, 다행히 A 씨와 B 씨는 실패했고 C 씨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 A 씨와 B 씨는 서로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됐고, 특히 사람을 모으고 도구를 준비한 A 씨는 주범으로 지목돼 구속됐다.

이후 이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고 A 씨는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하며 자신의 죄에 대해 속죄했다. 또 A 씨의 여동생도 "오빠를 돌아보지 못했다. 이제 오빠를 지켜주고 싶다"는 탄원서를 냈다. 이와 함께 A 씨와 구치소에서 함께 생활하던 한 재소자도 A 씨의 사연을 듣고 재판부에 “범죄자지만 염치없이 부탁드린다. A 씨에게 따뜻한 말과 희망을 전해달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이들의 탄원서와 A 씨가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자 재판부도 이들에게 ‘냉정한 법’보다는 ‘따뜻한 사랑’으로 화답했다.

박주영 부장판사는 자살방조 미수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B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재판부는 두 피고인에게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의 범행은 타인의 생명을 침해할 위험이 큰 범죄라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 "다만 이 사건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삶의 의지를 다지며 다시는 이런 범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박 부장판사는 준비한 글을 읽으며 피고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했다.

박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의 이제까지 삶과 죄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전 형의 선고로 모두 끝났지만, 이후 이야기는 여러분이 각자 써 내려가야 한다"면서 "그 남은 이야기가 아름답고 감동적이기를 기원하며, 설령 앞으로의 이야기가 애달프다 해도 절대 도중에 끝나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는 "한 사람이 생을 스스로 마감하기로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사연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고립감 때문일 것"이라면서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를 우리가 듣게 됐고, 듣는 사람이 있는 한 그 이야기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박 부장판사는 이어 "외람되게도 여러분의 이번 판단이 착각이고 오해라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확신컨대 지금보다 좋은 날이 분명히 올 것이고, 아직 오지 않은 날을 누릴 생각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박 부장판사는 “여러분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과를 막을 수 있다면 강제로라도 구금해야 하는 것 아닌지 깊이 고민했다"면서 "다행히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는 긍정적 징후를 엿볼 수 있었고, 이 결정이 잘못된 판단이 아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박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에게 각각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책 1권씩을 선물로 전했다. 휴대전화까지 처분하고 여동생 집까지 갈 차비마저 넉넉지 않았던 A 씨에게는 "밥 든든히 먹고, 어린 조카 선물이라도 사라"며 20만 원을 건넸다. 냉정하고 한기만 느껴지는 법정에서 박 부장판사의 격려와 선물에 두 사람과 참관인들 볼에는 ‘사랑의 온기’가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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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원 기자 (jws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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