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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거리에 뒹굴던… 그 많던 낙엽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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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으로 재활용되는 낙엽 수거 현장

세계일보

송파구자원순환공원 한편에서 환경미화원들이 노면청소차량에 싣고 온 낙엽들을 꺼내고 있다. 물에 젖은 낙엽이라 쇠스랑으로 끄집어내고 있다. 퇴비로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프랑스 시인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의 한 구절이다. 도심의 가로수 잎사귀들은 한여름 풍성함으로 그늘을 만들고 도시의 열기를 가져간다. 계절이 바뀌어 떨어진 나뭇잎들은 땅이 추운 겨울을 나는 데 보온재 역할도 하고 비옥하게 해주는 퇴비가 되기도 한다. 요즘 길을 걷다 보면 치이는 게 땅바닥에 뒹구는 나뭇잎이다. 도시민에게 낙엽은 어떤 의미일까? 치워야 하는 쓰레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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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서로 벚꽃길. 누구나 한번쯤 걸어보고 싶은 낙엽길로 변신했다. 늦가을, 초겨울이면 운치 있는 낙엽길이 되는데 이 많은 낙엽은 어디로 갈까?


“하나, 둘, 셋, 넷∼” 선생님의 숫자 세는 소리에 맞춰 아이들이 낙엽을 밟으며 지나간다. 10월 말부터 시작된 나뭇잎들의 추락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낙엽 쌓인 거리는 한 번쯤 걷고 싶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지만 도시의 낙엽은 다른 쓰레기들처럼 대부분 쓰레기 매립지나 소각장으로 향한다. 그게 현실이다. 낙엽을 그냥 쓰레기로 만들지 않는 곳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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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올림픽공원 옆 인도에서 은행잎 수거작업이 한창이다. 여기서 수거한 은행잎들은 남이섬에 조성된 ‘송파 은행나무길’로 옮겨졌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나뭇잎들의 낙하가 시작된 11월의 어느 날.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옆 인도에선 은행잎 수거작업이 한창이었다. 환경미화원들이 꽤 싱싱함을 자랑하는 은행잎들을 긴 작대기로 털어냈다. 바람에도 떨어지고 작대기로도 떨어진 은행잎들은 거리를 금방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수거작업을 감독하던 송파구 자원순환과 강흥철 반장이 “여기서 수거한 은행잎들은 남이섬에 조성된 송파은행나무길로 갑니다. 섬을 찾는 나들이객들에게 노란빛 가을을 선사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하니 줍는 마음이 좀 다르긴 합니다”라며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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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엔 낙엽 수거용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있다.


낙엽을 한곳에 모아 퇴비로 만드는 송파자원순환센터까지 안내해준 자원순환과 김승현 주무관은 “올해는 수거하는 낙엽만 600t으로 비용 절감을 1억원 정도 예상합니다. 낙엽을 거름으로 만들어 농가에 지원하지 않았다면 모두 매립장으로 갔겠죠. 매립 비용이 t당 10만원이 넘어가니 운송 비용을 다 제하고도 대략 1억원 정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맘때 낙엽은 소각장에서도 잘 받아주지 않아요. 소각 효율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수거한 낙엽에서 이물질을 분리해 재활용하지 않으면 그냥 쓰레기입니다. 돈을 들여 버려야 하는 쓰레기입니다.”

서울에선 송파구청 외에도 중랑구청과 종로구청에서도 낙엽을 퇴비로 만들어 지역 농가에 무상으로 제공한다. 종로구청 청소행정과 강영근 주무관은 “1년에 대략 900t 정도 됩니다. 우리 구에서 생기는 낙엽들을 모아서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 농가에 무상 지원합니다. 그전에 낙엽에 섞여 있는 이물질을 골라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손이 많이 필요하지만 전체적으로 봐도 비용이 절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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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구 중간집하장에 쌓인 낙엽 더미에서 종이 전단 등 쓰레기를 골라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일일이 손으로 끄집어내야 하기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중랑구 면목동에 위치한 중간집하장에서도 이물질 분리 작업이 한창이다. 현장 반장인 구종림(71)씨가 땀을 흘리며 말한다. “우리가 아주 애국자는 아니어도 땅을 비옥하게 해주는 퇴비 만드는 일을 하니 보람찹니다. 겨울 한 철이지만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좋구요. 환경도 살리고 일도 하고 일석이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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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종림 현장반장이 수거한 전단 등 이물질을 포대에 담고 있다. 전단, 비닐 등 다양한 쓰레기들이 나온다고 한다


중랑구청 청소행정과 작업관리팀 조동연 주무관은 “서울시에서 낙엽 소각을 받지 않아요. 일반 쓰레기 매립 비용이 t당 7만원, 사설 소각장은 t당 30만원가량 듭니다. 돈을 주고 쓰레기를 버려야 합니다. 낙엽도 여기에 포함되지요. 작년엔 108t 정도 퇴비화했습니다. 올해는 200t 정도 하려고 하는데 훨씬 많을 것 같아요. 300t까지 될 것 같습니다. 모은 낙엽에서 담배꽁초 등 이물질을 골라내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듭니다. 작년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이 초과시간 업무수당을 받으며 일을 했었는데 올해는 아르바이트로 대체했어요. 아르바이트 비용을 따져 봐도 훨씬 이득입니다. 강원 홍천, 경기 남양주·퇴계원·포천 등지 농가에 보냅니다. 작년엔 싣고 간 낙엽 퇴비가 되돌아온 적도 있어요. 쓰레기들이 포함돼 있어서 그랬지요. 이물질을 걸러내는 데 꽤 투자합니다. 시간도 들고 인력도 필요하지만 이만큼 환경에 좋은 일도 없습니다.”

낙엽을 퇴비로 만드는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거리의 낙엽은 분명 재활용 가치가 있고 가치를 만들기 위해선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수고가 더해져야겠지만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글·사진=허정호 선임기자 h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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