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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김용균 1주기] ⑤ 또다른 '김용균들'…"직접 소통으로 문제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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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흥화력 노동자들 "우리가 지급받은 것은 마스크뿐…별로 달라진 것 없어"

"정부가 지금까지 약속한 것들만이라도 지켜주면 좋겠다"

연합뉴스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발전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위험의 외주화 중단'을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촬영 장우리]



(서울=연합뉴스) 장우리 기자 = "들어갈 때부터 나올 때까지 모든 순간이 위험해요. 사방이 고속 회전체다 보니 안 다칠 수가 없죠. 어두운 작업장을 걸어가다 석탄을 밟아 발목을 삐기도 하고, 미끄러지고 부딪히고 찍히고……."

박모(25)씨는 인천시 옹진군 영흥화력발전소 협력업체 소속으로 영흥화력에서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1년 넘게 해오고 있다. 고(故) 김용균씨 1주기를 앞둔 8일 연합뉴스와 만난 그는 발전소 현장 곳곳에 도사린 위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박씨가 맡은 일은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김용균씨가 했던 작업과 같다.

박씨는 "사실 용균이 사고 이전까지는 현장의 위험이 워낙 당연시됐다"면서 "(김용균과) 동갑이라 사고 당일 혹시나 하고 주변에서 연락이 많이 왔다. 정말 안타까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서울 광화문에 마련된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 분향소'에서 만난 영흥화력 협력업체 노동자 3명은 하나같이 "지금의 현장은 사고가 안 날 수 없는 곳"이라고 증언했다. 이들은 몇 년간 일하면서 전기 화상, 팔다리 골절·절단 등 수많은 사고를 목격했다고 한다.

"뉴스를 보고도 실감이 나지 않더라"고 한 김용균씨의 죽음은 어느덧 오는 10일 1주기를 맞는다.

김씨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위험의 외주화' 문제에 경종을 울렸다. 이를 계기로 꾸려진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는 지난 8월 비정규직 노동자 직접고용과 안전관리체계 구축을 골자로 한 22개 권고안을 내놓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28년 만에 전면 개정돼 '김용균법'으로 불리며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김용균 노동자 1주기 추모 분향소'에서 고 김용균씨를 추모하는 영흥화력 노동자들. [촬영 장우리]



그러나 현장에 남은 '용균이들'은 "사고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영흥화력에서 석탄 운반업무를 총괄하는 정모(32)씨는 "현장 노동자가 느끼기에 지금까지의 대책들은 다 주먹구구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조명등과 안전펜스를 몇 개 더 설치하는 등 언론에서 주목한 안전 문제들은 일부 개선이 됐다"면서도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근본 해결책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씨에 따르면 석탄을 운반하는 설비 인근에는 분탄 때문에 빈번하게 기계 오류가 생긴다. 정씨는 "그때마다 설비를 정지하게 되면 전기 공급에 차질이 발생한다"며 "결국 그 책임은 노동자가 전적으로 져야 하는데, 감당할 수가 없으니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원청에서) 이제는 안전사고가 나면 본인과 (협력업체 소속) 팀장·과장 모두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작은 사고가 나면 더 쉬쉬하게 된다"며 "제도는 많이 생겼는데 하나같이 안전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영흥화력에서 근무했다는 김모(32)씨는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가 현장점검을 하며 위험해 보이는 곳에 안전펜스를 설치했는데, 이 때문에 통로가 협소해지고 일할 때 몸을 더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등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며 실효성 없는 대책을 지적했다.

김씨는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에게 어디에 (안전펜스가) 필요한지 물어보고 설치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며 "'틀어막기 급급한' 대책이 오히려 위험을 가중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유사한 사고 재발을 막으려면 발전사와 현장 노동자 간 소통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정씨는 "모든 안전관리 권한은 원청에 있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일하는 것은 우리들"이라며 "지금처럼 일방적인 방식이 아닌 현장 노동자들과 직접 소통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청 직원들은 분진이 날리고 위험한 현장에 잘 오려고도 하지 않는다"며 "현장 노동자들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구조라면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권한도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그저 약속을 지켜주길 바랄 뿐"이라고 이들은 말했다.

김씨는 "특조위 발표 전까지는 발암물질을 마시며 일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며 "현장에 휘날리는 결정형 유리규산이 1급 발암물질이라며 국무총리가 나서 안전대책을 세우겠다고 했지만 우리가 지급받는 것은 마스크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서울에 올라와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달라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최근에도 청와대 사랑채 앞 피켓 시위에 참석한 이들은 "정부가 지금까지 약속한 것들만이라도 지켜주면 좋겠다"며 특조위 권고안 이행을 촉구했다.

iroow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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