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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남학생은 수학, 여학생은 언어? ‘못 한다’ 믿으면 진짜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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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2020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성적표가 배부된 4일 오전 인천광역시 연수구 연수여고 3학년 학생들이 성적표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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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수학을 못 해.” “남자는 수학, 여자는 언어를 잘한다.”

기성세대는 물론 학생 사이에서도 꽤 퍼져있는 성별 격차에 대한 통념이다. 하지만 이런 통념과는 상반된 내용의 조사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선천적인 성별보다 환경 요인, 학생 태도가 학업 성취도에 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나온다.



PISA: 한국은 읽기 여>남, 수학·과학은 남≒여



남녀 성별에 따라 과목별 성적의 차이가 있을까? 지난 3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의 결과를 발표했다. 세계 79개국 15세 학생(한국은 중3~고1 6876명) 71만명을 대상으로 한 국제 비교 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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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OECD가 79개국 70만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PISA 2018 결과를 발표했다. 스페인 교육부장관 알렉한드로 티아나(왼쪽)와 PISA 수석 연구원 미야코 이케다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사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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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평균 점수로만 보면 기존 통념에 부합하는 듯하다. 읽기와 과학은 여학생의 점수가 높고, 수학은 남학생의 점수가 높게 나타났다.

국가별로 들여다보면 양상이 다르다. 한국은 읽기에서 여학생의 점수(526점)가 남학생(503점)보다 높게 나왔다. 반면 수학·과학은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남학생의 수학ㆍ과학 점수(528점, 521점)가 여학생(524점, 517점)에 비해 다소 높긴 했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고 볼 만큼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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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생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추이.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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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발표된 PISA 2015도 유사했다. 당시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수학은 7점, 과학은 10점 낮았다. 당시 결과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어서 남녀 격차가 없다고 해석된다.

남녀의 과목별 성취도는 국가에 따라 심하다. 수학의 경우(PISA 2018) 자료가 공개된 78개국 중 남학생 성적이 여학생보다 높은 나라는 총 32개국(4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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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의 남녀 수학 격차 살펴보니.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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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처럼 통계적으로 남녀 차이가 나타나지 않은 국가도 32개국(41%)에 이른다. 핀란드·스웨덴·필리핀 등 14개국(18%)은 여학생 성적이 남학생보다 좋다. 남학생 성적이 더 좋은 나라가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적다.



수능: 이과 수학 男 강세, 문과 수학 남녀 비슷



대입은 PISA와 다소 다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3일 공개한 2019 대입 수능 결과에 따르면 자연계 수험생이 응시하는 수학 가형은 남학생의 표준점수 평균(100.5점)이 여학생(99.2점)보다 높았다.

반면 문과생이 치르는 수학 나형은 남녀가 동일했다(100점). 국어 영역은 여학생의 표준점수(평균 100.9점)가 남학생(99.1점)보다 높았다. 최근 PISA 결과와 달리 ‘남학생은 수학, 여학생은 언어에 강하다’는 통념에 좀 더 부합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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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대입 수능 들여다보니.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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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부모 등 ‘환경 요인’ 빼면 격차 무의미



이처럼 남녀 학생의 성취도는 학생 나이, 측정 시점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성별에 따른 성적 차이가 실제론 사교육, 부모 학력, 학생 태도 등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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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준 학업성취도 자료를 통해 5만명의 학생의 중3, 고2 성적을 비교 분석한 서강대 경제학부 이수형 교수와 이슬기 씨의 논문 '수학 성취도에서의 성별 격차, 동태적 변화와 원인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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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제학부의 이수형 교수와 대학원생 이슬기 씨는 지난 5월 ‘수학 성취도에서의 성별 격차, 동태적 변화와 원인 분석’이란 논문을 게재했다.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자료를 통해 2009~2011년 초등 6학년이었던 5만5604명의 수학 성적을 비교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초·중·고 모두 남학생의 수학 점수가 여학생보다 높았다. 하지만 환경 요인을 제거하면 성별 격차가 줄어들거나 무의미해졌다. 연구진에 따르면 사교육 시간에 따른 차이를 배제하자 중학교 수학의 남녀 격차는 60%가량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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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달 14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내 고사장에 입실한 한 수험생이 지급받은 샤프를 확인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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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학력이 대졸 이상일 때는 남녀 격차가 발견되지 않았다. 수학에 대한 흥미도가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떨어진다는 점도 성취도에 영향을 미쳤다. 수학의 성별 격차는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가정·학교 등 후천적인 환경요인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는 게 결론이다.



“‘못한다’ 믿으면 진짜 못한다”



성별과 성적과의 관계는 아직도 논쟁거리다. 2000년대 들어 '남녀평등의 문화를 가진 나라일수록 수학 격차가 없다'는 연구가 나오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분명한 건 무의식 속에 '수학에 약하다'는 정보가 있으면 학습에 걸림돌이 된다는 점이다. 2006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여학생 225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3년간 연구했다. 수학 시험을 두 번 치게 했는데, 두 시험 사이에 그룹별로 다른 글을 읽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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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성 최초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이란 출신의 마리암 미르자하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였던 그는 2017년 암으로 숨졌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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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에 따르면 '남자는 선천적으로 수학을 잘한다'는 글을 읽었던 그룹은 첫 시험에 비해 두 번째 시험에서 틀린 문제가 5~10개 정도 늘었다. 반면 '수학과 성별은 관계없다'는 글을 읽은 그룹은 틀린 문제가 5~10개씩 줄었다.

2014년 여성 최초로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이란 출신의 마리암 미르자하니(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2017년 사망)는 인터뷰에서 "청소년, 특히 여학생에겐 수학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부에 대한 호기심, 자신감을 북돋아야 성적도 오를 수 있단 얘기다.

천인성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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