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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재개발 기다리는 낡은 동네에…검은 피부의 낯선 이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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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품은 노량진2동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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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서울 동작구 노량진2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커피 콘서트’에서 다윗 네구수(왼쪽)가 한 주민에게 에티오피아 방식으로 볶은 원두 향을 맡아보라고 권하고 있다. 마을방송국 동작F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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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노량진 일대는 ‘공시생’(공무원시험 준비생)과 컵밥, 수산시장이 있기 전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이름난 동네였다. 여의도와 한강을 바로 옆에 뒀고, 인천과 서울을 잇는 길목에 자리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노량진역사 앞 삼거리의 서쪽이 노량진2동이다. 동쪽의 노량진1동이 고시촌으로 유명한 것과 달리 내세울 게 없다. 새로 지은 노량진수산시장이 있지만 경부선 철길 건너에 있어 다른 동네 같다. 이곳이 지금부터 기록할 이야기의 무대다.

동작구의 가장 작은 마을 중 하나인 노량진2동은 주민 1만2833명(지난 11월 기준) 중 65세 이상이 20.2%(2595명)나 되는 고령마을이다. 원룸이나 하숙집에 머물며 공부하는 20~30대 청년들이 없지는 않지만, 이마저도 ‘인강’(인터넷 동영상 강의)이 보편화되면서 줄어들고 있다. 없는 것도 많다. 학교, 공원, 놀이터, 아파트가 없다. 학교에 가려면 옆 동네로 다녀야 한다. 취학연령 아동이 많지 않은 게 다행이다. 내년에 입학하는 7세 아동은 37명뿐이다.

2003년 11월 노량진2동이 모두 포함된 노량진 일대가 뉴타운(재정비촉진사업)에 선정된 뒤 주민들은 장밋빛 미래를 꿈꿔왔다. 하지만 16년이 흐른 지금도 본격적인 공사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오래된 빌라와 주택 단지들은 언제고 허물어져 근사한 아파트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낡아가고 있다.

활기를 잃은 마을에 낯선 이웃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들은 덩치가 크고 피부가 검었다. 주민들은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누군가는 공포라고 했고, 누군가는 혐오라고 했다. 주택 밀집 지역에서 늘 벌어지는 쓰레기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들은 머나먼 대륙의 에티오피아에서 왔다. 정치적 핍박과 위협을 피해 온 난민들이다. 이 중에는 한국전쟁 때 목숨 걸고 싸운 참전용사의 후손도 있었다. 서로를 인식하고 만나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도 몰랐다.

이 기록에는 노량진2동에 살아온 원주민과 낯선 타국에서 온 이주민들의 만남이 담겨 있다. 생기 잃은 마을을 다시 살리려는 사람들. 그들이 생소한 에티오피아 문화를 접하며 겪게 된 변화와 깨달음도 볼 수 있다.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타국에서 찾아온 낯선 이웃과 함께 지내야 할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 헐릴 건데”…활기 잃은 노량진2동, 먼 나라 난민 품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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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네구수(왼쪽)와 조데이비드가 지난달 28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2동 ‘야마레치 에티오피아’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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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노량진2동에 부임한 류인숙 동장은 처음 동네를 둘러본 뒤 적잖이 놀랐다. 아파트 하나 없이 비좁은 골목으로 가득한 노량진2동은 ‘아직도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오전 8시 전에 출근해 동네 순찰을 다니는 동안 ‘이른 시간에도 막다른 골목과 마주하면 누구나 무서울 수 있겠다’ 싶었다.

부임 직후라 의욕은 충만했고 스트레스도 심했다. 재개발을 앞둔 노량진2동은 동네 곳곳에 다양한 문제가 많았다. 오래된 주택이 촘촘히 들어선 지역이라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쓰레기였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는 한여름 아침에도 악취를 풍겼다. 13개 직능단체와 꾸준히 만나 논의를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16년째 뉴타운 예정지, 낡은 빌라·주택 즐비한 스산한 분위기의 동네에 에티오피아인들 찾아와

군사독재·분쟁 등 자국 핍박에 떠나온 그들에게 이곳은 피난처이자 가족이 있는 ‘제2의 고향’으로 자리 잡아

원주민들, 처음엔 ‘쓰레기 무단 투기’ 원인 지목하거나 문전박대 했지만 ‘인연’ 맺으며 생각 달라져


주민들 사이에서는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는 사람이 외국인들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실제로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다보니 피부색이 검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쓰레기 무단 투기에 대해 정식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는 없었다.

중국 교포나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주민들도 있었지만 ‘흑인’들이 유달리 눈에 띄었다. 그들은 지난여름부터 부쩍 늘어난 듯했다. 대개 한국인보다 덩치가 큰 그들에게 위압감을 느끼는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이들을 ‘노량진2동의 주민’으로 품을 수 있을까. 새로운 과제였고, 쉽지 않아 보였다.

지난해 8월부터 가동한 노량진2동 마을계획단을 맡은 박은영 주임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마을공동체 전문가인 박 주임은 마을계획단 운영을 전담하는 임기제 공무원으로 이 동네에 왔다. 마을계획단은 2년 단위로 활동하는 일종의 주민자치 기구로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마을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에 나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노량진2동 마을계획단은 어린이 요리교실, 동네 음악회, 김장 담그기 등 행사를 했고, 주민센터에 공유주방과 카페를 만들어 지역 문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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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공원·놀이터·아파트가 없는 노량진2동은 서울 동작구에서 가장 작은 마을 중 하나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를 넘는 고령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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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 관련 업무를 하려면 우선 마을을 둘러봐야 한다. 류 동장이 그들을 자주 접한 것도 마을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주민센터 인근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 그들이 있었다. 유모차를 끌고 교회 안에서 비를 피하던 이도 있었다. 처음엔 국적도 몰랐지만 조금씩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주민들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들이 에티오피아에서 온 난민이란 것을 알게 됐다.

에티오피아 난민들이 노량진2동에 모여든 이유가 있었다. 노량진2동과 맞닿은 상도동에 난민지원단체인 ‘피난처’가 있기 때문이다. 피난처는 정치적 박해 등을 이유로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 난민들에게 쉴 곳을 제공하는 기독교 비정부기구(NGO)로 난민신청을 돕거나 숙소를 제공하고 한국어 교육을 한다. 또한 지역사회와 난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마을의 ‘인플루언서’인 중년 여성들과 함께 탁구나 수영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한다거나, 쓰레기 배출 캠페인을 하고 따뜻한 커피를 나누는 ‘커피마실’ 활동도 해왔다. 피난처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된 이들이 교통이 편리하고 임대료도 저렴한 노량진2동에 정착한 것이다.

■ 참전용사의 후손이 한국에 온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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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교민회장을 맡고 있는 베가쇼 드레세(58)도 피난처를 통해 노량진2동에 온 에티오피아 난민이다.

최근 그는 동작구청 후문 인근 상가 지하에 ‘야마레치 에티오피아’라는 작은 식당을 열었다. “아름답게 생겨난 에티오피아”라는 뜻이다. 에티오피아가 식민 지배를 받지 않고 유구한 전통과 문화를 보존해왔으며, 인류와 커피의 발상지 등 다양한 자랑거리를 품은 나라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이곳에선 우리의 전병처럼 생긴 빵 ‘인제라’에 양념한 고기 ‘킷포’ 등을 싸서 먹는 독특한 에티오피아 음식을 내놓는다. 갈비를 노란색 양념에 버무려 갈비탕처럼 만든 ‘끄끌’은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베가쇼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2011년 한국에 들어와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그는 한국에 머무는 에티오피아인들의 지도자 역할을 맡고 있다. 베가쇼는 한국에 머무는 에티오피아인 중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한다. 에티오피아도 한국처럼 웃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있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를 삼촌처럼 여기는 이들이 많다. 직장 때문에 다른 지역에 살아도 마치 고향 집을 찾듯 주말이면 노량진2동을 방문해 베가쇼를 만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국내에 난민 중 같은 국가나 민족 단위로 한 지역에 어울려 사는 사례는 흔치 않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인들은 이웃과 가족, 친구가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걸 큰 행복으로 여긴다. 노량진은 그렇게 그들의 새로운 터전이 됐다.

베가쇼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09년 새마을운동을 취재하기 위한 출장 때문이었다. 베가쇼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군인이다. 30년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생전 끔찍하고 참혹한 전쟁으로 도시가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한국전에서 다리를 다쳐 평생 고생했음에도 그의 아버지는 한국을 그리워했다. 아버지로부터 한국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베가쇼는 에티오피아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다.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써 투옥되기도 했던 그가 에티오피아를 떠날 결심을 했을 때 한국을 떠올린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베가쇼는 한국에 온 뒤 피난처와 만나 노량진에 정착했다. 번역 일을 하거나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도 했다.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보다 다양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을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 오래 살면서 차별을 경험한 순간이 적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면 옆 좌석에 아무도 앉지 않았다. 베가쇼는 “우리도 똑같은 인간이다. 매일 씻고 면도를 하면서 로션도 바르고 옷도 빨아 입는다. 평범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다. 옆자리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앉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복잡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혼인신고를 위해 구청을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외국인이 혼인신고를 하려면 미혼 상태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내야 하는데 난민은 자국 대사관에 갈 수 없으니 결국 혼인신고가 불가능하다. 규정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당사자들에게는 막막하고 억울한 일이다. 베가쇼도 모든 제도는 결국 사람이 아닌 ‘한국인’을 위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외국인과 많이 접하지 못하는 교외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더 많을 것 같다”면서 “그래도 노량진2동에서는 인종차별이라 할 만한 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호택 ‘피난처’ 대표는 “에티오피아는 크게 세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난민들이 생겨나는데 군사독재, 종족분쟁, 민주적이지 못한 사회주의 정부에 대한 반정부 활동이 원인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난민 중에는 베가쇼처럼 참전용사의 후손이 유독 많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에 파병한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다. 참전용사들은 통상 고국에서 용맹한 군인으로 대접받는 것과 달리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북한을 상대로 전투를 치렀다는 점 때문에 공산주의 정권이 권력을 잡은 뒤 오히려 탄압의 대상이 됐다. 많은 참전용사와 가족들이 생활고에 시달린다.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그 후손들은 반정부 활동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2013년 기술연수를 받으러 한국을 방문한 참전용사 후손 39명이 집단 난민 신청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기준 국내 거주 에티오피아인은 891명이며 지난 9월까지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진 에티오피아인은 128명이다. 미얀마(310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그중 노량진2동 관할 구역에 거주하는 에티오피아인은 30~40명 정도로 알려졌다. 노량진과 상도동 일대에는 200명가량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 우리 마을 ‘핵인싸’된 대정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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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난민 신청자인 베레켓(왼쪽)이 지난 8월 시민단체 ‘마을방송국 FM’에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마을방송국 동작F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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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노량진2동 골목을 누비던 송인식 노량진2동 마을계획단장은 한 식당 앞에서 주인을 보자마자 “오랜만입니다”라며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몇 걸음 떨어진 카페에 들어가선 “우리 마을 커피 팔아줘야지”라며 주문을 했다. 넉살 좋은 ‘핵인싸(인사이더)’ 동네아저씨 같지만, 송 단장은 은퇴 전까진 동네에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 없는 ‘아싸(아웃사이더)’였다. 2000년 12월 동작경찰서로 발령을 받은 이래 계속 이 동네에서 살았음에도 말이다. 그랬던 그가 올해 초 마을계획단장을 맡으면서 달라졌다.

“경찰청 정보국에서는 귀하의 탁월한 공적과 역량을 인정하여, 정보경찰의 귀감이 되는 ‘대정보관’으로 인증합니다.” 2017년 6월 그가 경찰청 정보국에서 받은 대정보관 인증패에 이렇게 적혀 있다. 송 단장은 은퇴 전까지 30년간 정보경찰로 활약한 베테랑 정보관이다. 그는 경찰 생활을 마무리하며 ‘1호 대정보관’이 됐다는 것을 일생 가장 뿌듯한 일로 여긴다. 경찰관 시절 같은 지역의 관청에 근무하며 안면을 튼 덕분에 류인숙 동장과 호흡도 잘 맞았다. 은퇴 전까지 동네에 친한 사람 하나 없었던 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 ‘파벌’로 여겨질 만한 인맥이 없었기 때문이다. 믿을 건 오직 공들여 사람과 만나 얼굴을 익히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정보관 기질’이 동네에서 제대로 발휘됐다.

소통 베테랑인 송 단장도 외국인은 어려웠다. 그는 “부끄러운 얘기”라면서 한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비행기 한번 타볼 여유 없이 살아왔다고 했다. 그에겐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다. 아들 곁을 지키기 위해 지방 전근은 엄두도 못 낼 일이라 승진 욕심도 버리고 지냈다. 그가 마을계획단 활동에 나선 것도 아들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서였다. 은퇴 후 1년간 쉬었더니 집에서 ‘눈치’도 보였고 몸이 근질근질했다. 아들이 복지관에서 돌아오면 챙겨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서 활동하기에 마을계획단장만 한 일이 없었다. 딱히 활동비를 받고 하는 일도 아니지만, 내년에도 맡겠다고 나서는 이유다.

■ 난민과 함께하는 마을방송국

동작구청 후문으로 난 노량진로8길. 베가쇼가 운영하는 식당 ‘야마레치 에티오피아’를 지나 몇 걸음만 가면 ‘마을방송국 동작FM’의 간판이 보인다. 동작구를 무대로 활동해온 지역 시민단체인 동작FM은 2013년 1월 문을 열어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주로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통해 방송하는데, 기획이나 구성, 편집 등을 주민들이 직접하고 활동가들은 일절 ‘데스킹’(편집)하지 않는 것이 운영 방침이다. 대부분 지역 주민인 100여명의 후원 회원이 동작FM을 지탱하는 기반이다. 풀뿌리 시민단체이다보니 한국 사회를 상대로 한 거대담론보다는 마을 단위의 현안이 늘 고민거리였다. 주민들이 공감하는 의제를 발굴하는 게 관건이었다.

◆“다 오해였네”…피해 줄 거란 편견 걷히고 동네엔 생기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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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서울 동작구 노량진2동 주민센터에서 마을 주민들이 에티오피아 음식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마을방송국 동작F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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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렬 방송국장은 노량진2동의 오랜 주민이자 통장, 마을계획단 부단장이다. 자타공인 노량진2동 ‘인싸’인 그에게 쓰레기와 주차 문제가 접수됐다. 처음 쓰레기 문제를들은 게 지난 6월이었다. 쓰레기 무단 투기 문제가 심각한데 외국인이 검은 봉지에 쓰레기를 넣어 배출 시간에 상관없이 버리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가 들려온 것이었다. 이어 7월에도 마을계획단 활동을 하며 만난 주민들로부터 각종 쓰레기 문제와 에티오피아 이주민에 대한 걱정이 적지 않다는 ‘제보’를 접했다.

마을 살리기 의제 찾는 ‘마을계획단’, 전직 베테랑 경찰·동장·공무원 모두 나서 ‘준비된 만남’ 시작

음악회·콘서트 열어 낯섦 줄이고 마을방송국에선 궁금증 풀며 알지 못해 가졌던 공포·혐오 조금씩 줄여나가

난민들은 전통 ‘커피세리머니’ 제안하는 등 원주민·이주민 접점 넓히며 ‘공동체’로서 한발짝


시민단체 활동으로 단련된 양 국장은 우선 ‘팩트 체크’를 하기로 했다. 에티오피아인들과 직접 만나 물어보는 것이다. 피난처에 방문해 에티오피아 난민들을 소개받았고, 8월8일 첫 만남이 이뤄졌다. 그가 처음 만난 에티오피아인은 인권운동을 해온 시민단체 활동가 베레켓(40)이었다. 난민 신청이 진행 중인 베레켓은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등 프리랜서로 일하며 에티오피아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첫 만남에선 가볍게 인사만 나눴다. 당초 주제는 쓰레기였지만,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어졌다. 에티오피아에 대해, 동작FM에 대해, 그리고 서로의 삶에 대해 얘기했다. 일주일 뒤 베레켓이 친구들을 데려왔다. 방송기자로 활동했던 다윗 네구수(39)와 그의 아들딸이었다. 채식주의자인 베레켓이 가장 좋아하는 콩국수를 점심으로 함께 먹었다. 다시 일주일 뒤에 다윗이 혼자 동작FM을 찾아왔다. 불과 한 달 새, 그동안 교류가 없던 에티오피아 주민들과의 만남이 급물살을 타며 이어졌다. 주민센터의 마을계획단 담당 공무원인 박은영 주임과 송인식 단장, 류인숙 동장 모두 에티오피아인들과 만나 소통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에티오피아인들 역시 한국인 선주민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어했다. 어색했던 만남은 ‘난민을 이웃으로 바라보기’라는 주제로 발전했다. 이웃과 마을이란 단어가 퇴색되어 가고, 난민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가 심한 한국에서 이런 대화가 이뤄졌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강령이 재개발을 앞두고 곧 사라질 노량진2동에서 시도된 것도 꽤나 상징적이다.

에티오피아 방송국에서 일했던 다윗은 동작FM에서 에티오피아어 방송을 맡았다. 한국에 체류 중인 에티오피아인을 대상으로 한국 생활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유튜브 조회수는 300~600회 정도지만, 에티오피아인들에겐 꽤나 화제다. 화물업체에서 밤새 일을 하면서도 다윗은 절대 방송은 빼먹지 않는다. 프로그램 제목은 <칵뉴 인 코리아>(Kagnew in Korea). 칵뉴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황실근위대의 부대명이다. 지난 8월에는 주한 에티오피아 대사도 출연했다. 난민들로서는 껄끄럽고 견해도 다른 게스트였지만, 달라지고 있는 에티오피아 실상을 다루겠다는 제작진의 취지에 청취자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모국어나 영어로는 능수능란하게 이야기하는 다윗이지만 아직 한국어는 쉽지 않다. 2017년 한국에 와 난민 인정을 받은 뒤, 생계를 위해 일하느라 한국어를 공부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다윗의 아들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은 한국어를 능숙하게 한다. 남매는 “아빠가 한국어 제일 못해요”라며 놀리곤 한다.

■ 에티오피아 커피는 더욱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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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난민 신청자 베레켓(왼쪽 두번째)이 지난 9월17일 열린 커피콘서트에서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마을방송국 동작F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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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7일 다윗과 그의 아내 베티는 두 자녀를 데리고 주민센터에 왔다. 베레켓도 함께였다. 흰 바탕에 초록색과 노란색, 빨간색이 어우러진 화려한 문양의 에티오피아 전통 의상 차림이었다. 오후 2시가 되자 주민센터 다목적실에 주민 50여명이 모였다. 마을계획단과 동작FM이 주관한 ‘커피콘서트’가 열리는 날이었다. 모임의 최연장자가 빵을 자르고, 전통 방식으로 커피를 볶아 진흙으로 만든 주전자와 호리병을 이용해 우려서 나눠 마시는 ‘커피 세리머니’가 치러졌다.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커피는 특별하다. 생두를 볶은 뒤 곱게 가루를 내 물에 우려 마시는 커피는 약 1000년 전 에티오피아 남서쪽 ‘카파(Kaffa)’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유서 깊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여럿이 모일 때면 항상 커피를 마신다. 커피는 노량진2동 주민들과 에티오피아인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매개이자 공통의 관심사로 충분했다. 향긋하고 고소한 커피향이 주민센터 다목적실에 가득했다. 쉽게 접하기 힘든 에티오피아의 문화를 동네에서 만나게 된 주민들은 “생소한 경험”이라며 흐뭇해했다.

앞서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의 강연이 있었다. 노량진2동에서의 강연은 김 변호사에게도 뜻밖의 경험이었다. 여러 기관에서 난민 관련 강연을 많이 했지만, 마을 주민들이 주민센터와 함께 난민들을 초청하고 이들에 대해 서로 알아가는 행사를 여는 현장은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김 변호사는 “난민들은 보통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같은 나라에서 온 이들이 모여 살 수 있는 모델이 계속해서 생겨나면 좋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이 만남을 계기로 에티오피아인들과 노량진2동 주민들 간 만남이 잦아졌다. 동작구 주최 한마음체육대회에는 에티오피아를 알리는 부스가 따로 차려졌고, 두 차례에 걸쳐 열린 노량진2동 역사상 첫 마을 음악회에는 에티오피아 주민들이 주빈으로 함께했다. ‘야마레치’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에티오피아 음식 시식회가 열렸고, 베가쇼의 아내는 주민센터 공유주방에서 이웃들에게 에티오피아 음식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

지난 11월1일에는 동작FM과 마을계획단 미디어문화분과 단원들이 춘천에 있는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관으로 워크숍을 다녀왔다. 참전군 관련 시청각 자료를 본 주민들은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에티오피아가 비로소 손에 잡히는 느낌을 받았다. 외국인과 난민에 대한 혐오나 편견은 대부분 무지에서 오는 막연한 공포인 경우가 많다. 평생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했던 송 단장이 바로 그 경험자다. “뭔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만나다보니 생각이 바뀔 수밖에 없어요. 한국에 온 분들은 정말 순박하고, 에티오피아에서도 다양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더라고요. 그저 언어의 한계로 소통이 잘 안되는 게 아쉬울 뿐이죠.”

에티오피아인들의 마음도 공명했다. 노량진2동의 어울림은 페이스북 등을 타고 행사에 참가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퍼졌다. 15년 전 한국에 와 귀화한 조데이비드는 “오랜 시간 한국에서 살았지만 에티오피아인들을 환영하는 행사를 열어주고 공식적으로 만난 건 처음이었다”며 “다음 세대를 위한 아름다운 시작이었고 에티오피아 주민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됐다”고 했다.

■ “가까워지기 시작한 지금이 진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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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9일 노량진2동 주민센터에서 마을계획단 총회가 열렸다. 지난 1년 마을계획단 활동을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최근 에티오피아 주민들과 만나온 의미를 되짚어 보는 공론장이기도 했다. 마을주민 303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공유했다.

주민들은 외국인 이주민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평소 인사를 나누거나 모임을 갖는 등 교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피부색이나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주민과 이웃해 사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미지근한 반응이 일반적이었다. 절대로 친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이주민과의 만남이 이어지면서 견고해 보이던 편견의 벽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것이 보였다. 총회에 모인 주민들은 에티오피아 이주민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의견을 냈다. ‘아이 돌봐주기’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기’ ‘먼저 인사하기’ ‘언어 배우기’ 외에도 한국전쟁 참전국이란 사실을 알게 됐으니 이 내용을 다른 주민들에게도 널리 홍보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양 국장은 “준비된 만남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생김새가 다르고 말이 통하지 않지만 이젠 출근길 골목이나 지하철 승강장에서 눈을 마주치고 지낼 수밖에 없는,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 외국인 이주민과 한국인 선주민 사이에 갈등이 불거지는 경우가 있는데, 피할 수 없는 만남이라면 준비된 상태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전에는 무서워서 피해 가던 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더니 적대시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마을의 통역가로 자리 잡은 박열음 홍보팀장은 “갑자기 친구가 많이 생겼다”며 뿌듯해했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에티오피아 주민들이 이야기를 하려면 그의 입을 통해야 하니 박 팀장만큼 그들과 친숙한 이도 드물다. 덕분에 길 가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에티오피아 출신 이웃들이 늘었다. 집에 밥 먹으러 오라며 초대하는 친구도 생겼다. 박 팀장은 “(그들이) 사적인 공간을 열어주는 건 이전에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고 했다.

이 기록은 노량진2동 주민들이 난민을 이웃으로 받아준 미담이기도 하지만, 에티오피아 이주민들이 활기를 잃어가는 마을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노량진2동 사람들은 내년에도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에 좀 더 집중할 거라고 말한다. 송 단장은 일요일이면 문을 닫는 주민센터를 개방할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다. 생계로 바쁜 에티오피아 이주민들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휴일이나마 어울려서 대화하고 부대낄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송 단장은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했다. “조금씩 가까워지며 알아가는 단계”라는 말은 마치 열애설을 인정하는 톱스타들의 단골 코멘트 같기도 하지만, 선주민과 이주민들의 심정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다. 자연스럽게 접점을 늘려가며 함께하는 시간을 쌓아가는 것, 곧 이웃이 되는 과정이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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