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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日장관 몰아붙인 23번 날선 질문…심은경이 빙의한 그 일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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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아베 일본 여기자가 말하는 '기레기'

심은경 주연 영화 모치즈키 인터뷰

한국에 ‘기레기’가 있다면 일본엔 ‘마스고미’가 있다. 언론의 매스컴(マスコミ)과 쓰레기를 뜻하는 ‘고미(ごみ)’를 합친 말로, 기레기와 똑같은 구성의 신조어다. 일본 사회에서도 ‘마스고미’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참다운 언론인으로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 있으니 모치즈키 이소코(望月衣塑子ㆍ44) 도쿄신문 기자다.

중앙일보

배우 심은경이 연기한 일본 영화 ‘신문기자’의 원작을 쓴 모치즈키 이소코 도쿄신문 기자가 4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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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17년 6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의 기자회견에서 23차례나 질문 세례를 퍼부으며 유명해졌다. 스가 장관의 정례 기자회견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다음 영상이 바로 당시의 모습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c2o16f_K14w). 일본어 영상이지만 당시의 긴장감과 모치즈키 기자의 집요함은 생생하다.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스가 장관도 불쾌한 표정을 내비치며 “당신의 질문에 일일이 답할 책임은 없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뉴욕타임스(NYT)는 모치즈키를 두고 지난 7월 “권위주의적 일본 정부에 맞서는 영웅”이라고 평했다.

모치즈키는 2017년엔 『신문기자』라는 제목으로 자전적 에세이집도 펴냈다. 이 책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동명 영화는 한국에서도 화제가 됐는데, 여성 기자 주인공으로 한국 여배우 심은경이 캐스팅되면서다. 영화는 일본에서 6월, 한국에선 10월 개봉했다. 4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초청으로 방한한 모치즈키 기자를 중앙일보가 단독으로 만났다. 우선, 모치즈키 기자로 빙의한 배우 심은경의 모습 잠시 보고 가자(https://www.youtube.com/watch?v=vPTY0Ppzktc).



4일 만난 모치즈키 기자에게 심은경의 연기에 대해 물었다.

Q : 책에 따르면 모치즈키 기자도 어린 시절 배우를 꿈꿨는데. 심은경씨의 연기는 어땠나.

A : 천재적이다. 새우등(猫背)을 하고 있길래 ‘여배우 자세가 저래도 되나’ 싶었는데, 아니더라. (촬영을 앞두고) 도쿄신문에 심은경 씨 등 출연진이 (견학 차) 찾아온 적이 있는데 그때 나와 다른 기자들의 모습을 유심히 봤다고 한다. 다들 키보드를 두드리며 집중하느라 새우등을 하고 있는 모습을 눈여겨보고 일부러 따라했다는 거다. 깜짝 놀랐다.

Q : 왜 심은경씨가 캐스팅됐다고 들었나.

A : 감독과 제작자에게 직접 듣기론 연기의 스타일 문제라고 하더라. 몇 명인가 일본 여성 배우들도 오디션을 했는데 감독과 제작자가 원하는 방향의 연기가 나오지 않아서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 (일본에서도 데뷔를 한) 심은경씨의 연기를 보고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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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자세를 구부정하게 해서 모치즈키 기자의 모습을 따라했다는 배우 심은경. [영화 ‘신문기자’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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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소속인 모치즈키 기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다양한 비리 의혹에 천착해왔다. 아베 총리와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직접 특혜를 주는 데 관여했다는 학교재단인 모리토모(森友)와 가케(加計) 학원 스캔들 등이다. 이런 스캔들을 깊이 취재한 경험이 책과 영화에 담겼다. 영화에선 특히 총리에게 직보하는 정보기관인 내각정보조사실(內閣情報調査室)의 정체에 주목한다. 정보기관에 종사하는 엘리트 관료들이 가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과 허위 및 악성 댓글 등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다. 정권에 반대하는 인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Q : 내각정보조사실의 실제 정체는 어떤가.

A : 영화에서 조금 과장한 부분도 있겠으나 실제 ‘나이쵸’(내각정보조사실의 일본어 약칭)의 일은 원래의 공안의 의미와는 많이 달라져버렸다. 아베 정권이 장기집권하면서다. 지금은 일반시민은 물론 언론계와 정치인ㆍ관료 중에서 정권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조사한다. 그래도 중국처럼 공안이 아예 기자를 노골적으로 감시하는 것과는 달리 몰래(こそこそ)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할까. 씁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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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신문기자'의 모티브가 된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의 책.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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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국에선 조용히 개봉했다 내려갔지만 일본에선 예상외로 선전했다. 지난 6월 143개의 스크린에서만 개봉했으나 한 달도 채 안 돼 33만 관객을 동원했고 흥행 수익 4억엔(약 43억7000만원)을 돌파했다. 그는 “영화의 힘를 통해 젊은 층까지 (아베) 정권의 잘못과 민주주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분위기가 확산했다”며 “심은경씨와 (남자주인공인) 마츠자카 도리(松坂桃李)의 연기력도 큰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사와 기자 접촉 금지? 언론 자유 침해 우려"



그가 생각하는 ‘마스고미’와 ‘기레기’의 문제는 뭘까. 그는 “일본에선 기자클럽(한국의 출입기자 제도에 해당)의 문제”라며 “권력과 기자클럽이 공생관계가 되면서 기자들이 송곳 질문을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도 '기레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집요하게 정권의 문제점을 전면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건 역시 기자들의 힘"이라며 "자신과 희망을 갖고 조금씩 해나가면 독자들도 다시 지지를 보내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모치즈키는 반대로 문재인 정부와 언론의 관계에 대해서도 질문을 쏟아냈다. 최근 법무부가 기자단에게 구두 브리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검사와 기자의 접촉을 금지한 것에 대해선 “문재인 정권이 지금 검찰과 전쟁 중이라는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리버럴(진보)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취재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향이 아닌가”라며 고개를 갸웃했다. 통일부와 외교부 등 일부 부처에서 해명 자료에 기자들 실명을 적시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엔 “간접적 압력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며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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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치즈키 이소코 기자는 작은 체구에서도 뿜어져 나오는 열정적 에너지가 인상적이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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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진흥재단이 이번에 모치즈키 기자를 초청한 건 ‘한일 갈등 해법을 위한 언론의 역할’ 포럼의 토론자로서다. 그에게 한ㆍ일 관계 및 일본 불매운동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우선 한ㆍ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의 종료 효력 정지 얘기를 꺼내며 “연장되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양국 관계가 어서 좋아지기를 희망한다”며 “두 나라가 대립해서 좋을 게 적어도 국민들에겐 없다. 일본 불매운동도 그렇게(그치면) 되면 좋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양국 국민의 사이가 좋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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