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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재판장, 이재용에 “다음에도 정치권력이 요구하면 뇌물 줄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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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측 "거절할 수 없는 대통령 요구" 주장에 직접 질문
형량두고...특검 "징역10년 이상"vs.李 측"수동적 뇌물"
법조계 "감경 사유 따져본 것", "별 의미없을 것" 분분
다음 기일 손경식 회장 증인 신문…‘수동적 뇌물’ 공방

조선일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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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정치권력자가 요구하면 또 뇌물을 줄 것인가, 요구를 거절하려면 삼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6일 서울고법 형사1부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서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이렇게 물었다. 이 부회장 측이 "대통령의 거절할 수 없는 요구"라는 주장을 이어간 데 따른 것이다. 이 부회장은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시선은 아래를 향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17일로 예정한 다음 재판 전까지 답변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공판은 ‘적정한 형량’을 두고 재판부가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이 부회장 측 쌍방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특검팀은 정식 구형(求刑)이 아닌 양형 의견이지만, 이 부회장 측의 ‘수동적 뇌물’ 주장을 반박하는 데 집중했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에 대한 적정 형량은 징역 10년 8개월에서 징역 16년 5개월 사이"라면서 "삼성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제왕적 대통령도 일방적으로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파악해야 요구할 수 있는 상대방"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과 윈윈(win-win) 관계로 강요죄 피해자가 아닌 적극적 뇌물 공여자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범행 경과를 살펴보면 대통령의 불법적 요구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적이 전혀 없다"며 "SK나 롯데 관계자들이 보여준 태도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태도"라고 했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다른 대기업과도 달리 봐야 한다는 것이다. 롯데 신동빈 회장의 경우 ‘수동적 뇌물공여’가 인정돼 실형을 면했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형량을 정함에 있어 ‘수동적 뇌물 제공’인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 측은 "다른 기업 사례와 비교했을 때 삼성은 유일하게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질책을 받았다"며 "지원 요구만 있어도 거부하기 어려운데 이 부회장은 매우 강한 질책을 받아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수 기업이 대통령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수동적 지원에 나선 것이고, 삼성도 마찬가지"라며 "수동적 비자발적 지원을 양형에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 부회장 측은 전두환 정부 시절 국제그룹 해체 사건을 언급하며 대통령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사정을 설명하기도 했다.

재판부가 양측 의견을 듣는 것 외에 가정(假定)까지 더한 질문을 던진 배경을 두고 법조계는 해석이 나뉜다. 이 부회장은 대법원이 2심(36억원)보다 50억원 많은 86억원을 뇌물·횡령액으로 판단하면서 실형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현행법상 50억원 이상 횡령은 법정형이 최소 징역 5년 이상이어서 재판부가 재량으로 형을 낮춰주지 않으면 실형 선고로 재수감될 수도 있다. 집행유예는 3년 이하 징역형에 대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이 국정농단 사건에서 최순실씨의 강요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것은 뇌물을 준 기업들을 ‘피해자’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 밑에 깔린 것"이라면서 "‘수동적 뇌물’ 주장만으로 형량을 낮춰주기는 애매하니, 다른 긍정적인 요소를 제시해보라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피고인 입장을 최대한 들어보겠다는 것이 꼭 양형의 유불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면서 "누구는 호통치고, 누구는 설득하고, 재판장마다 재판을 이끌어 가는 방식이 남다른 것 뿐일 수도 있다"고 했다. 재판장은 지난 10월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 때는 "심리 중에도 당당히 기업 총수로서 해야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고 당부해 주목받기도 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 부회장 측이 "기업이 청와대, 대통령 앞에서 철저히 을이 될 수밖에 없고,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는 점을 증명하겠다"며 증인으로 신청한 손경식 CJ그룹 회장을 다음 재판에 불러 심문하기로 했다. 앞서 손 회장은 작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재판 때 증인으로 나와 ‘대통령의 뜻’이라며 이미경 CJ 부회장에 대한 퇴진 압력을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조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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