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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빙하가 녹자 ‘인간의 욕심’이 드러나다 [이정아 기자의 바람난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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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북극 해빙 급속화

빙하 10년마다 13% 감소

천연가스·석유·희토류 자원보고

미국 등 인접 8國 영유권 다툼

21세기 ‘신냉전’ 구도 가속 전망

헤럴드경제

지도에서 흰 부분이 2018년 9월 북극 면적. 노란선은 1981~2010년 9월 평균 북극 면적을 말한다. [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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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최근 지구온난화로 북극 지역의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얼음층 밑에 묻혀 있는 천연 자원과 북극 항로를 차지하기 위한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금세기 중반인 2040년 이후 여름철 북극 빙하가 사라질 것이란 기후 전망 시나리오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북극을 둘러싼 21세기 ‘신냉전’ 구도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덴마크 국방정보국(DIS)은 그린란드에 관한 최우선 의제로 테러와 사이버 범죄 영역을 포함하겠다는 내용의 연례 보고서를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왕립 덴마크 국방대학의 북극보안정책 연구원인 존 라벡 클레맨센은 이날 덴마크 공영 TV 채널 TV2에서 “11년 전만 해도 북극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곳에 불과했다”라며 “그러나 지금 북극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급속하게 녹으면서 이러한 변화는 굉장히 빠르게 찾아왔다”고 덧붙였다.

▶지구온난화가 불러낸 새로운 냉전시대 = 덴마크의 이러한 안보 강화는 북극을 장악하려는 국가 간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다. 북극해에는 미국, 캐나다, 러시아,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8개국이 인접해 있다. 이들 8개국은 지난 1996년 ‘북극 이사회’라는 협의체를 만들어 북극 지역의 천연 자원과 북극 항로를 둘러싼 배타적 논의를 진행해왔다. 당시만 해도 북극은 지구상에서 국가들이 위력을 행사하기 가장 어려운 척박한 환경을 가졌기 때문에 북극의 진정한 가치는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한때 정복할 수 없는 곳으로 여겨졌던 지구의 최북단 지역을 둘러싼 국제 정치 지형을 완전히 뒤바꿨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이 지역에 매장된 천연 가스와 석유, 희토류를 포함한 광물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아울러 새로운 해상로가 확보되면서다.

북극에만 전 세계 매장량의 13%(90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고, 전 세계 매장량의 30%(47조㎥)의 천연가스가 묻혀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베링해에서 러시아 북부를 거쳐가는 북극해항로를 이용하면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기존 항로보다 거리는 20%, 운송기간은 8일이 단축된다.

이처럼 북극의 상업적 이용 가능성이 현실화되자, 최근 들어 미국은 북극에 대한 주도권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지난 5월 미국의 국무장관인 마이크 폼페이오가 북극 이사회에 참석해 발언한 것이 그 신호탄이었다. 당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제 미국은 북극권 국가로서 북극의 미래를 위해 나서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는 북극이 경제 활동의 무대가 됐으며, 북극을 둘러싼 새로운 냉전 시대가 가열될 것임을 예고하는 발언이었다.

이후 미국은 북극 이사회와 별개로 북극 외교장관 회의를 개최하고 북극함대 신설을 검토했다. 지난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 매입 검토설’에 대해 “전략적 측면에서 관심이 있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최근 들어 북극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러시아는 지난 10년간 천연가스와 원유 기반 시설, 북극해 항해 선박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며 가장 활발하게 북극 지역에서 위세를 떨쳤다. 아나톨리 페트루코비치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우주과학연구소장도 지난 7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러시아 GDP의 12%가 러시아 북극의 자원 채취 등에서 나온다”라고 전했다.

러시아는 북극에 수십 개의 군사 기지를 보유했다는 사실을 과시하려는 듯, 지난달 중순에는 북극 지역에서 처음으로 공중 발사형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단검) 발사 시험을 실행하기도 했다.

북극해 인접국이 아닌 중국조차 ‘일대일로’(一帶一路)와 ‘해양강국’이라는 국가 대전략의 일환으로 북극을 바라보고 있다. 중국은 공식적인 북극 관련 전략을 내놓진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쇄빙선을 건조하고 러시아의 가스 사업을 지원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기후변화 돌이킬 수 없는 단계…당장 10년 내 막아야” = 문제는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유례 없이 빠르게 녹아내려 북극을 둘러싼 영유권 다툼이 생각보다 급격하게 전개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 긴장감이 고조되면 기후 변화도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기후 변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발목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극 빙하는 10년마다 13%씩 감소하고 있다. 당장 2036년을 기점으로 캐나다 북부 섬들과 그린란드 주변의 유빙만 제외하면 북극해를 연중 항해할 수 있을 정도로 북극의 얼음이 녹을 것으로 전망된다.
헤럴드경제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 월별 지구 평균기온. [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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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비관적인 사실은 이미 일부 과학자들이 “기후 변화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고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섭씨 1도가량 상승한 상태지만, 우리는 인간이 기후를 통제할 수 없는 지점인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목전에 두고 있거나 이미 지났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팀 렌튼 영국 엑시터대 교수는 지난달 28일 네이처를 통해 “티핑 포인트를 완전히 넘기는 걸 막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 ‘0’에 가깝다”라며 “지구의 평균기온이 지속해서 상승해 북극의 영구 동토층이 녹아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방출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러한 한 현상의 변화는 또 다른 현상에도 악영향을 끼쳐 기후 변화의 속도와 강도를 높인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연구에 따르면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이미 지구상 기후의 한계가 초과된 상태에서 지구의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우리가 뭔가 해볼 수 있는 기간은 앞으로 1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티핑 포인트가 아직 지나지 않았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대책을 지금 당장이라도 시행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고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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