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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무더기 필리버스터, '신의한수'인가 '헛발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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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국회 올스톱...선거법 등 쟁점법안 일단 잡아 세워

자당 대표 발의한 법안 26건도 신청..."자기 부정이냐" 비판

필리버스터 전부 활용땐 저지 선언한 선거법 등 밀릴수도

민생법안 볼모로 잡았다는 여론 비판 불보듯...득실은 미지수

CBS노컷뉴스 정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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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정부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인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이 텅 비어 있다.(사진=윤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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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민생법안을 포함해 199건에 대해 무더기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신청하면서 법안을 처리해야 할 국회 본회의가 마비됐다.

이렇게 많은 법안에 대해 한꺼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지난 2016년에 있었던 더불어민주당의 필리버스터는 '테러방지법' 하나만 쟁점이었다.

이에 대해 한국당 내에서는 '신의 한수'라는 평가도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필리버스터 대상이 대부분 비쟁점 민생법안이라는 점에서는 '무리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상식이하로 뻔뻔스러운 게 통탄스럽다"고 했고,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 계산한 것으로, 부끄럽고 비참하다"고 꼬집었다.

필리버스터 정국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할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피해자 가족뿐 아니라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일명 '민식이법'에 대해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느냐다.

한국당이 '민식이법'까지도 볼모로 잡았다는 여당의 비판에 적지 않은 역풍이 불었기 때문이다.

민식이법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신호등과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고 사망사고 운전자의 처벌을 무겁게 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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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단식을 중단하고 나흘만에 당무에 복귀한 2일 서울 청와대 사랑채 앞 정미경-신보라 의원의 단식 농성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윤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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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당시 민식이법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기 전이기 때문에 대상에서 빠졌다고 항변한다. 또 민식이법에 대해선 원포인트 국회를 열어서 먼저 처리할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에게 제안한다.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저희가 필리버스터 신청한 법안에 앞서 민식이법 등에 대해 먼저 상정해 통과시켜줄 것을 제안한다"고 말한 바 있어 '민식이법 우선 처리' 해명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됐다.

법사위 통과 이후 한국당이 민식이법마저 필리버스터 대상으로 염두에 뒀다는 게 민주당의 의심이다.

두번째 포인트는 199개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 신청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느냐다. 필리버스터는 한번 시작하면 한국당이 멈추지 않는 이상 한 회기 내내 계속할 수 있다. (다음 임시국회에서는 같은 법안으로 필리버스터를 할수 없고, 표결처리해야 한다.)

1건의 법안을 처리할마다 임시국회를 열어야 하는 셈이다. 산술적으로 최소 199일이 필요하고 많게는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한국당은 민생법안을 모두 잡아두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필리버스터 아이디어를 낸 주호영 의원은 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우리는 민생 법안 190건 다 통과시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법안을 막는 게 목표는 아니라는 의미다.

한국당은 199개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신청했지만, 실제로는 5개 법안만 필리버스터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는 법안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2건)과 유치원 3법, 선거법 개정안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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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지난달 29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모든 안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가운데 나경원 원내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윤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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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굳이 이 많은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것일까. 나경원 원내대표는 "여당이 안건 순서를 변경시켜 (신청되지 않은 법안들을) 통과시키고 (필리버스터 전에) 국회 문을 닫아버릴 수 있어서 부득이하게 모두 신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어폐가 있다. 민주당이 비쟁점 법안을 먼저 통과시키고 선거법.공수처법 등 한국당이 저지하려는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본회의를 마감하면 한국당 입장에서는 '대성공'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당이 필요하면 민생법안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를 실시하려고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능한 많은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실시해 시간을 늦추면 쟁점 법안은 올해 처리가 어려워 질수 있다.

특히 준연동형제도를 골자로 한 선거법의 경우, 처리 시점이 늦어지면 내년 총선 적용이 어려워질수도 있다는 점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 가운데는 한국당 단독으로 대표발의한 법안이 26건이고 한국당의 동의로 상임위와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이 76건이다.

이에 스스로 발의했거나 동의한 안건마저 필리버스터를 하려고 했느냐며 '자기 부정'이라는 성토가 다른 당에서 쏟아졌다.

한국당이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내세운 청년기본법, 자당 김정재 의원이 대표발의한 포항지진특별법 등이 그 예다.

필리버스터 대상에는 소상공인기본법, 균형발전법, 벤처투자촉진법 등 민생법안들도 포함됐다.

한국당은 일단 국회를 멈춰 세워 쟁점 법안 통과를 지연시켰지만, 민생 법안에 발목을 잡는듯한 모습을 또한번 연출했다.

요점은 모든 법안이 아닌 쟁점 법안 일부만 잡아도 한국당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는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한국당이 범위를 좁혀서 쟁점있는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으면 우리도 어쩔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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