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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반군 지도자쯤은 돼야 ‘자궁’ 취급 벗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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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페미니즘, 군대를 말하다’라는 포럼에 다녀왔다. 성평등에 대한 논의가 걸핏하면 “여자도 군대 가라”로 귀결되는 시대에 페미니즘이 병역과 군사주의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논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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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군사주의란 군대의 존재 및 군대에 힘을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지배이념이자, 위계질서와 복종, 무력의 사용이 효율적이라는 신념을 통해 사회 운영 원리를 군사화하려는 관습적 사고방식이다. 한국 사회 곳곳에 팽배한 군대문화는 군사주의에 경도된 군사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곳에서 <매드맥스:분도의 도로>(2015)를 시작으로 <원더우먼>(2017), <알리타:배틀 엔젤>(2018), <캡틴마블>(2019), 그리고 <터미네이터:다크 페이트>(2019)에 이르기까지 최근 몇 년간 여성영웅의 형상을 탐구해 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모아놓고 보니 ‘여성영웅’이란 대체로 군인이거나 전사였던 것이다.

이어서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다. 여성이 몸을 잘 다루고, 능력을 발휘하며, 자신과 동료들을 지켜낼 수 있다는 상상력은 어째서 이처럼 쉽게 군사주의와 만나는가? 그리고 왜 다른 어떤 영화보다 이런 영화들이 더 적극적으로 ‘페미니즘의 성취’로 받아들여지는가?

물론 여성영웅 서사가 군사화되는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지난달 개봉해 화제를 불러모았던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그 맥락을 잘 보여준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1984년 작 <터미네이터>에서 사라 코너는 인류를 구원할 존 코너를 낳을 운명이었기 때문에 미래 로봇 터미네이터의 표적이 된다. 그로부터 35년 후. 끈질기게 살아남은 사라는 <다크 페이트>에 이르러 인간을 위협하는 터미네이터를 제거하는 전사로 거듭난다. 로봇을 사냥하던 중 그는 ‘가임기’ 여성 대니가 터미네이터 Rev-9에 쫓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미래에서 온 군인 그레이스와 함께 대니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

사라는 Rev-9이 (자신이 경험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니의 “자궁”을 쫓는다고 판단하고, “나도 대니와 같은 상황에 놓여봐서 아는데, 그건 엿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는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여성이 어떻게 ‘인간’이 아니라 ‘인간(=아들)을 낳는 자궁’으로만 여겨져 왔는지에 대한 비판이자,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구태의연함에 대한 자조적 코멘트다.

영화는 이에 더해 여성은 그저 어머니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 기꺼이 총을 드는 전사일 수 있다고 강변한다. 반군의 지도자는 대니의 아들이 아니라 대니 자신이었던 것이다.

오직 남성뿐이었던 영웅의 얼굴을 여성의 얼굴로 반전시키는 것. 그것이 스크린의 남성중심성을 비판하고 여성이 영화적 시민권을 얻는 방법 중 하나임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평화란 상대보다 더 큰 막대기(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이라는 믿음을 뒤집지 못한다면, 여성영웅 역시 군사주의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문제는 군사화된 인식의 한계 속에서 현실의 여성도 마찬가지의 곤란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은 미국과 달리 분단 상황에서 징병제를 시행하는 국가다. 이런 국가에서 국방의 의무는 군역으로만 상상이 되고, 군역은 시민권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조건이 된다. 동시에 남성만이 군역의 자격을 얻는다. 그러므로 시민권은 남성중심적으로 군사화된 개념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자도 군대 가라”는 비아냥에 여성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다크 페이트>의 세계에서 여자는 ‘자궁’이 되지 않기 위해 ‘반군의 지도자’가 되어야만 했다. 이처럼 군사화된 사회가 제시한 게임의 규칙 자체와 싸우지 않는다면 여성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만 남을 뿐이다. 군인을 낳고 키우는 것으로 군역의 의무를 대체하거나, 스스로 군인이 되어 군역의 의무를 다하거나.

군사화된 시민권의 개념을 넘어서 시민의 권리를 사유하는 길을 찾기 위해, 우리에게는 시민·영웅의 의미를 다시 쓰는 “평화 페미니즘”(김엘리)의 기획이 필요하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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