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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일관계, 징용 판결 뒤 2점대···MB독도 방문 때보다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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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전문가 21명 긴급 설문

중앙일보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3일 일본 나고야관광호텔에서 열린 한일외교장관 회담에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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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22일 한ㆍ일이 각각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조건부 연장과 수출 관리 당국 간 협의 개시를 약속하며 양국 관계에 “약간의 브레이크스루(Breakthroughㆍ돌파구)가 생겼다”(강경화 외교부 장관, 23일 나고야 한ㆍ일 외교장관회담 직후)고 평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ㆍ일 관계는 여전히 최악이며, 개선되더라도 한계가 명확하다고 전망했다.



강제징용 판결 뒤 2점대 유지



양국의 지소미아 및 수출 규제 조치 관련 발표 이후 외교ㆍ안보 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한 긴급 설문 결과 현재의 한ㆍ일 관계를 10점 척도(0점이 ‘최악’, 5점이 ‘보통’, 10점이 ‘최고’)로 평가했을 때 평균 점수는 2.15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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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이슈별 체감 한·일 관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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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로도 평균 점수를 비교해봤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의 사죄 요구 발언 때가 3.42점, 2013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을 때가 4.21점이었다. 2014년 아베 정부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처음 인정한 고노 담화를 검증해 이를 훼손하려 시도했을 때는 4.42점, 2017년 문재인 정부가 12ㆍ28 위안부 합의(2015년)를 검증하고 절차적ㆍ실체적 하자가 중대하다고 결론 내렸을 때는 3.37점이었다.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때 점수는 2.21점으로 떨어졌다. 지금은 지소미아 결정 번복 효과가 고려됐는데도 이때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는 “역사 문제에서 한국이 항상 공세적 입장이었는데,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이 공세로 나오는 공수전환이 이뤄졌다. 지소미아 종결 유예는 잘한 결정이지만, 지소미아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려 한 전략은 한ㆍ미 동맹에는 부담만 남겼고 아베 정부에 승리를 안겼다”고 말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일본의 수출 규제와 한국의 지소미아 관련 결정은 한ㆍ미ㆍ일 협력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고, 미ㆍ중 갈등과 북핵 문제 등을 고려할 때 동북아 안보 유지 측면에서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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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아베규탄시민행동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연장 굴욕결정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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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개선돼도 3.5점이 최상



현 정부 내에서 한ㆍ일 관계가 얼마나 개선될 수 있을지 역시 10점 척도(0점=갈등의 구조적 고착, 10점=관계의 질적 개선)로 물었다. 3.5점이 나왔다. 보통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선된다 하더라도 일본 내 혐한 기류 형성의 시작점으로 인식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일왕 사죄’ 발언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지금은 한ㆍ일 관계 악화가 외교적 차원을 넘어 경제ㆍ안보 영역으로 확산돼 회복이 곤란한 상황인 것 같다. 일본이 움직인 것도 미국의 압력 때문이지, 한ㆍ일 간 감정의 응어리는 더 깊어졌다”고 우려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대북 인식, 역사 인식에서 큰 격차가 드러나며 한ㆍ일 관계 자체가 재조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반면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중국을 전략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한ㆍ일 관계를 관리할 가능성이 크고, 일본도 당분간은 한국의 강한 민족적 반감을 야기해 갈등을 확대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일 협상력 제고 여부엔 엇갈린 의견



한국이 지소미아 결정을 번복하면서 향후 강제징용, 수출규제 등 현안에 대한 일본과의 협의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의견이 갈렸다. ‘그렇다’가 9명, ‘아니다’가 11명이었다.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본이 다음달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자체가 한국의 협의 요구가 결국은 관철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이번 결정은 사실상 한국의 일방적 양보이지만, 대승적 차원의 결정을 함으로써 향후 한국이 협상력을 높이고 미국의 협조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위원은 “8월 지소미아 결정이 감당 못할 무리수라는 것을 한국이 스스로 시인했고 향후 지소미아는 아예 협상 수단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이제 한국과 일본 사이의 불신은 특정 정치세력이나 지도자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강제징용 문제가 여전히 갈등 이슈로 잠복하는 데 대한 걱정도 많았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은 애초부터 지소미아를 수출 규제와 맞바꿀 수 있는 등가적 이슈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통상 당국간 협의가 진행돼도 징용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안 나오면 일본이 쉽사리 수출 규제를 철회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일단 불은 껐지만 강제징용 문제가 남아 있고 위안부 합의 파기에 따른 여파가 지속되는 것도 문제”라며 “일본 내에서는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이 잘못된 것을 인정했다’는 담론이 퍼질 수 있다”고 했다.

유지혜ㆍ이근평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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