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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현미경] 아베 지지율 급락시킨 '벚꽃놀이'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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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봄 각계 인사 초청해 격려, 도쿄 국립공원 신주쿠교엔서 열려

65종 벚나무 1300그루 있는 명소… 아베, 자신의 후원회 회원도 초청

스가 관방 "총리가 1000명 추천", 야당 "세금으로 권력 사유화"

일본 총리가 매년 봄 주최하는 '벚꽃을 보는 모임'(벚꽃회)을 둘러싼 파문이 아베 정권 차원의 스캔들로 번지고 있다. 본래 벚꽃회는 사회 각계 유명인사들을 초대해 격려하는 차원에서 열리는 국가 행사다. 그런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정권 요인들이 국민 세금으로 열리는 행사에 자신의 후원회 회원들을 초청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야당은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권력 사유화(私有化)'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며 공세를 퍼붓고 있고, 급기야 일본 정부는 내년 벚꽃회 개최를 취소했다.

벚꽃회는 매년 4월 중·하순 일본 총리가 주관하는 벚꽃 놀이 행사다. 총리 이름으로 열리긴 하지만 '각계 공적·공로가 있는 인사들을 불러 평소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치르는 공식 국가 행사다. 비용도 국가 예산으로 충당한다. 왕족, 각국 대사, 중·참의원 의장과 부의장, 대법원장, 국무장관·부장관 등 요인들과 각계 원로나 대표, 문화·체육계 인사 등이 초청된다. 매년 약 1만~1만5000여명이 참석해 주류·과자·식사 등을 대접받는다.

조선일보

아베 신조(가운데) 일본 총리와 부인 아키에(아베 오른쪽) 여사가 지난 4월 도쿄에 있는 국립공원 신주쿠교엔(新宿御苑)에서 열린 총리 주관의 ‘벚꽃을 보는 모임’에 참석해 참가자들과 함께 손을 흔들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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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회의 연원은 188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왕실이 국제 친선을 목적으로 처음 시작했다. 1938년까지 진행되다가 2차 대전으로 중단됐던 것을 1952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당시 총리가 재개했다. 왕실이 주관하던 것을 이때부터 총리가 국가 예산으로 주최하면서 국민 행사로 전환됐다. 행사는 도쿄의 국립공원 신주쿠교엔(新宿御苑)에서 열린다. 신주쿠교엔은 과거 일 왕실의 정원이었지만 1949년 국립공원으로 전환됐다. 65종에 이르는 다양한 벚나무 약 1300그루가 있는 곳으로 일본의 '벚꽃 명소 100선' 중 하나다. 특히 여러 품종의 천엽벚나무(꽃잎이 많은 벚나무)가 절정을 맞는 4월 중·하순이 벚꽃 놀이 '베스트 시즌'으로 꼽히며 벚꽃회도 이 시기에 개최된다.

일본인들에게 '벚꽃 놀이'는 단순한 꽃놀이가 아니다.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국화(國花)인 벚꽃에 둘러싸여 자라며, 입학·졸업·입사 등 주요 행사가 열리는 3월 말~4월 중순은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와 절묘하게 겹친다. 인생의 중요한 추억에 벚꽃이 함께하는 셈이다. 벚꽃 놀이 자리를 맡기 위해 각 회사 신입 사원들이 새벽부터 벚꽃 명소에서 자리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 관행일 정도다. 일본 정부가 도쿄 중심가의 벚꽃 명소를 하루 동안 전세를 낸 행사에 초청받는다는 것은 사회적 영예다.

문제는 이런 국가 행사에 아베 총리와 고위 관료들이 자신의 후원회 회원들을 초대했다는 것이다. 지난 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당인 공산당 의원들이 이를 지적하면서 '벚꽃 스캔들'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의 지역구 야마구치현의 후원회 인사들이 그간 전세버스를 타고 집단으로 행사에 참석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아베 총리가 집권한 2013년 이후 초청객과 지출액도 크게 증가했다. 참석자는 집권 초기인 2014년 1만2000여명에서 올해 1만8200여명으로 늘었고, 지출액도 같은 시기 3005만엔(약 3억2500만원)에서 5518만엔으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아베 정권의 이런 행태에 공금을 사적으로 전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마이니치신문은 "공적 행사를 정치인이 이용했다는 것은 세금으로 선거운동을 한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제기되자 아베 총리는 지난 8일 "초청자 선정에 관여한 바 없다"고 했지만, 20일에는 말을 바꿔 "의견을 내기도 했다"며 초청자 선정에 관여했음을 인정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총리가 1000명, 부총리·관방장관·관방 부장관이 합쳐 1000명, 자민당 관계자들이 약 6000명을 추천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도 초청자 선정에 관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참석자 명단이 담긴 문서를 이미 파쇄한 것으로 확인돼 "아베 총리는 위기마다 문서 파쇄로 모면하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017년 아베 총리 부부가 관련된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 당시에도 재무성이 관련 공문서를 파쇄한 사실이 드러났다.

벚꽃 놀이 스캔들은 아베 총리에게 큰 타격이 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14~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49%로 지난 10월의 55%에서 크게 하락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일본 정부는 내년 벚꽃회를 취소하고 전반적 운영을 재검토하겠다고 13일 밝혔다.





[이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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