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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당장 손해나도 고객요구 들어주면 단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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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 모범상인의 ‘장사 기술’

서울시 청결-진열 등 귀감 8명 선정… ‘화술왕’ 진성자씨 고객응대법 공개

“시비 따지고 가르치려는 행동 금물”… 市, 상인노하우 공유할 강연 등 추진

동아일보

서울시가 선정한 ‘전통시장 모범상인’ 진성자 씨(왼쪽)가 고객에게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진 씨는 특유의 ‘대화의 기술’로 진정성을 전달해 모범상인으로 뽑혔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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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거 해먹으려나 봐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전통시장 유진상가에 있는 만호종합주방. 어머니뻘이 될 법한 상인의 애교 섞인 질문에 이곳을 찾은 30대 여성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그가 “갑자기 손님들이 온다고 해서 식도를 사러 왔는데…”라고 말하자 만호종합주방의 진성자 씨(61)는 친근한 말투로 부러움을 표하더니 ‘무슨 음식을 할 거냐’ ‘몇 명이 먹을 거냐’ 등을 재차 물었다. 그러다 진 씨는 식도 대여섯 개 중에서 하나를 골라 내밀었다. 여성은 “맞아요, 그거예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진 씨는 그의 발을 쓱 보더니 “많이 쌀쌀해졌는데 양말도 신지 않고. 추워요”라며 걱정해줬다. 그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처음으로 전통시장에서 귀감이 될 만한 상인 1명을 모범상인으로 선정했다. 올 5월에는 7명을 추가로 선정해 발표했다. 진 씨도 여기에 포함됐다. 전통시장 모범상인 선정은 시장 활성화 정책 중 하나로 주변 상인들의 추천을 받아 후보자를 정한 뒤 현장 조사, 시민 투표 등을 거쳐 정한다. 서울시에 등록된 전통시장 상인은 13만8000여 명. 모범상인 8명은 상품, 집객, 광고, 진열, 대화, 단골, 청결, 상인정신 등에서 도드라진 상재(商才)를 드러냈다. 진 씨는 ‘고객과의 대화’에서 탁월한 장사의 기술을 보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말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서 단골 확보 여부가 달라진다. 상인마다 말재간에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진 씨는 “상인의 대화 능력은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을 대할 때 갈린다”고 말했다. 고객이 실수로 제품에 문제점을 만든 뒤 찾아와 오히려 제품에 흠이 있다고 따질 때도 적지 않다. 진 씨는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공손한 자세로 고객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면 해당 고객은 반드시 다시 온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상인은 고객과 시시비비를 가리며 따지거나 제품에 대해 잘 모른다며 오히려 고객을 가르치려고 한다. 이런 행동은 금물이다”라고 했다.

그는 유진상가에서만 28년째 장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미숙했다. 어느 날 젊은 남성이 찾아와 최근 구입한 양은냄비에 구멍이 났다며 화를 냈다. 남성의 고함 소리에 주변 상인과 행인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보다는 양은냄비에 구멍이 난 이유를 제품을 파는 자신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날부터 상품 소개 책자를 외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외운 상품 책자가 상자 3개를 채울 정도다.

제품에 대해 많이 알게 되자 고객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이 생겼다. 비슷한 용도의 냄비라도 색상과 크기, 손잡이 등은 제각각이다. 제품 정보를 꿰뚫고 있으니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추천하기 쉽다. 몸에 밴 배려심도 진실성을 더했다. 진 씨는 고객이 비닐봉지 여러 개를 들었다면 커다란 비닐봉지를 주며 옮겨 담으라고 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고객에게는 아예 캐리어를 빌려주기도 한다. 그는 “되돌려 받지 못한 적은 없다”고 했다.

서울시는 전통시장의 모범상인들이 다른 상인들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도록 강연, 멘토링 등을 추진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장에서 익힌 ‘장사의 기술’을 공유하면 다른 상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모범상인들이 하나의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다면 전통시장 자체를 홍보하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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